“서울의 심장, 중구 쌍림동의 땅속에서 깨어난 1912년의 시간 – 잊힌 역사와 문화재 발굴의 이야기”
- 서울 HI
- 2일 전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일 전
목차
잊혀진 이름, 쌍림동에서 깨어나다
1912년, 서울의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대지와 밭이 말해주는 도시의 흔적
김씨, 이씨, 박씨 그리고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땅
문화재 발굴, 유적발굴의 진짜 의미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성공 사례 – 사라진 마을의 부활
유물발굴과 문화재 지표조사,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마무리 – 땅 아래 묻힌 역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다
1. 잊혀진 이름, 쌍림동에서 깨어나다
서울의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쌍림동’이라는 표식을 본 적이 있나요?
이제는 고층빌딩과 호텔, 오피스텔이 가득한 도심의 한복판이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논밭이 뒤섞인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912년의 쌍림동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아래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시절 쌍림동은 291필지, 총면적 78,380㎡.
그 안에 사람들의 땀, 전통, 그리고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2. 1912년, 서울의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912년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된 지 2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일제는 전국을 대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했고,
쌍림동 역시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땅의 주인을 기록하고, 필지를 구분하며, 세금을 매기기 위한 과정이었죠.
하지만 그 기록은 단순한 행정 데이터가 아닙니다.
그건 바로 “땅이 기억하는 역사”였습니다.
당시 쌍림동의 면적은 78,380㎡, 그 안에 291필지가 있었고,
그중 대부분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이자 생계의 터전이었습니다.

3. 대지와 밭이 말해주는 도시의 흔적
쌍림동의 땅 중 264필지, 41,372㎡가 대지였습니다.
즉, 사람이 살던 집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것이죠.
그리고 27필지, 37,008㎡는 밭이었습니다.
이 수치는 지금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대지와 밭이 함께 존재했다는 건,
그 당시 쌍림동이 ‘도심이면서도 농촌의 기능을 함께 가진 혼합지대’였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명동, 을지로, 충무로가 빌딩의 숲이라면
그 시절 쌍림동은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이었습니다.

4. 김씨, 이씨, 박씨 그리고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땅
이 마을의 땅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름이 보입니다.
1912년 쌍림동에는 김씨가 41필지, 이씨가 34필지, 박씨가 14필지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 세 성씨만으로도 마을 전체의 절반 가까운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셈이죠.
하지만 동시에, 한일병합 이후의 그림자도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무려 98필지가 일본인 소유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쌍림동은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먼저 드러난 곳 중 하나였습니다.

5. 문화재 발굴, 유적발굴의 진짜 의미
우리가 지금 ‘문화재발굴’ 혹은 ‘유적발굴’이라고 부르는 작업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캐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사람의 흔적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유물발굴작업은 땅속의 작은 파편에서
한 시대의 경제, 문화, 생활 구조를 복원합니다.
쌍림동의 경우처럼, 토지대장과 발굴조사가 결합되면
그 마을이 어떻게 변했고 누가 살았는지를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문화재 지표조사나 발굴조사 현장에서
이런 토지기록은 ‘지도 없는 지도’처럼 쓰입니다.
잊힌 시간의 좌표를 되찾는 나침반이 되는 셈이죠.
6.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성공 사례 – 사라진 마을의 부활
실제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에서는
쌍림동과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을지로 일대의 지표조사 중
조선 후기 공방터와 한옥 주거지가 발굴되었고,
그 아래층에서는 고려시대 토기편과 생활유구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이처럼 도시의 한 켜 아래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생활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발굴조사원들이 매일 땅을 파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흙을 다루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간을 복원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사람들입니다.

7. 유물발굴과 문화재 지표조사,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문화재 지표조사는 발굴조사의 첫걸음입니다.
도로 하나, 건물 하나를 짓기 전에
그곳에 문화재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일.
그게 바로 도시의 ‘양심’이자 ‘기억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쌍림동처럼 이미 변해버린 공간이라 해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면 다시 복원할 수 있습니다.
유적발굴단의 노력, 문화재발굴과정의 철저함,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이 더해질 때
서울의 역사는 계속 숨 쉴 수 있습니다.

8. 마무리 – 땅 아래 묻힌 역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다
우리는 지금 눈앞의 도시를 ‘완성된 공간’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서울은 여전히 ‘발굴 중인 도시’입니다.
쌍림동의 땅속에는 1912년의 시간,
그곳을 살던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이 잠들어 있습니다.
문화재발굴은 그 잠든 이야기를 깨워
다시 우리 곁으로 데려오는 일입니다.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잊지 않고 다시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서
유적발굴단의 조용한 삽질 소리가 들립니다.
그건 단지 흙을 파는 소리가 아니라,
잊혀진 이름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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