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마포구 염리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 서울 HI
- 8월 15일
- 2분 분량
목차
1912년, 염리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땅의 얼굴 – 논, 밭, 산, 그리고 연못
집과 무덤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
성씨와 토지 – 이씨, 김씨, 그리고 땅의 주인들
국유지, 동양척식주식회사, 그리고 마을 공동소유 땅의 비밀
염리동에서 읽는 일제강점기의 그림자
문화재지표조사로 복원하는 100년 전 염리동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이야기

1912년, 마포구 염리동.
지금은 고층 아파트와 카페, 그리고 골목마다 숨겨진 맛집이 가득한 동네지만, 113년 전 그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 염리동에 내려선다면, 흙길 위로 소가 끄는 수레가 지나가고, 들판에서는 사람들이 손으로 벼를 심으며 서로 안부를 묻는 장면을 마주했을 겁니다.
그 당시 염리동은 180필지, 총 238,569㎡의 땅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쓰임새를 하나씩 살펴보면, 단순한 지형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시대의 공기,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역사까지 보입니다.
1912년, 염리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그 해, 염리동의 논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1필지, 6,991㎡. 논이 적다는 건 당시 이곳이 벼농사 중심지가 아니었음을 의미합니다. 대신 밭이 68필지, 무려 156,089㎡를 차지했죠. 마을 사람들은 쌀보다는 채소나 잡곡, 그리고 다른 곡물을 재배하며 살았습니다.
이 밭들 사이로 집이 들어서 있었는데, 82필지의 대지가 총 49,061㎡에 달했습니다. 소규모 주거지가 밀집된 형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흙벽집이나 기와집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줄지어 있었겠죠.
땅의 얼굴 – 논, 밭, 산, 그리고 연못
당시 염리동의 지형에는 산도 있었습니다. 단 1필지, 15,927㎡. 산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마을의 생활 기반이었습니다.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고, 산길을 넘어 다른 마을로 장을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2필지, 4,343㎡의 연못(지소)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인공 연못과 달리, 당시 연못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핵심 자원지였습니다.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어른들이 가뭄 때 물을 길어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집과 무덤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
무덤, 즉 분묘지는 6필지, 총 6,155㎡였습니다. 지금은 도시 한복판이지만, 그 시절에는 마을 근처에 조상의 무덤이 자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사 때가 되면 가족들이 한데 모여 성묘를 하고, 조상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겠죠.
성씨와 토지 – 이씨, 김씨, 그리고 땅의 주인들
1912년 염리동 땅의 주인은 주로 이씨(49필지)와 김씨(21필지)였습니다. 특정 성씨가 많은 필지를 소유했다는 건, 그 집안이 오랫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렸음을 뜻합니다. 아마도 세대를 이어 땅을 지키며 농사를 지었을 겁니다.
국유지, 동양척식주식회사, 그리고 마을 공동소유 땅의 비밀
하지만 이 시기에는 토착민만이 땅을 소유한 건 아니었습니다. 국유지가 16필지 있었고, 더 눈에 띄는 건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의 21필지입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강점기 조선 땅을 수탈하던 대표적인 회사였습니다. 그들의 소유지가 있다는 건 이미 염리동이 일본 자본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음을 보여줍니다.
마을 공동소유 땅도 3필지 있었습니다. 이 땅은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장터, 공동 방앗간, 마을 회관 부지 등이었을 수 있습니다.
염리동에서 읽는 일제강점기의 그림자
이 자료를 보면 1912년 염리동은 이미 경제 구조가 변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점차 일본 자본과 행정체계의 영향 아래로 들어가고 있었죠.
토지 소유 구조가 바뀌면, 사람들의 삶도 변합니다. 농민은 소작농이 되고, 공동체는 해체되며, 마을의 풍경이 바뀝니다.
문화재지표조사로 복원하는 100년 전 염리동
이런 역사 자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문화재지표조사나 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건물 터, 무덤 위치, 농경지 흔적을 확인하면, 그 시절의 생활상을 더욱 생생하게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굴조사를 통해 옛 대지에서 기와 조각이나 생활 도구가 나온다면, 1912년 당시 염리동 주민의 생활 수준과 문화까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이야기
113년 전의 염리동을 기록하는 건,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토지 구조와 소유 변화를 이해하면, 지금의 도시 개발과 부동산 흐름까지도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알면 현재가 보입니다. 그리고 현재를 이해하면, 미래를 계획할 수 있습니다.
출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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