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마포구 성산동의 토지 이용 현황과 문화유산 가치
- 서울 HI
- 7월 24일
- 3분 분량
목차
성산동, 그 시간의 문을 열다
1912년의 성산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땅의 기록, 성산동의 토지 이용 현황
성산동 사람들의 삶과 성씨별 토지 소유
동양척식주식회사와 국유지, 그리고 식민지의 흔적
왜 지금, 100년 전 땅 이야기를 꺼내는가?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서울 지역 지표조사·시굴조사의 중요성과 절차
성공사례로 본 문화재 조사 의뢰의 가치
과거를 보존하는 당신의 선택
성산동, 그 시간의 문을 열다

한 장의 오래된 지도를 펼쳤다.
그 위에 적힌 숫자와 필지, 그리고 땅의 이름들.
그곳은 바로 1912년의 마포구 성산동이다.
우리가 아는 ‘홍대 앞’, ‘연남동 골목길’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지만, 바로 그곳의 뿌리다. 오늘날은 트렌디한 카페와 빌딩들이 즐비한 성산동, 그 속에 감춰진 과거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서울이 펼쳐진다.
1912년의 성산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12년, 지금의 성산동은 총 571필지, 1,660,352㎡의 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것은 밭, 무려 303필지에 달했고 면적으로는 740,120㎡였다. 논도 174필지, 788,413㎡로 상당히 넓었다.
이 수치를 보면 당시 성산동이 농업 중심의 마을이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65필지 52,747㎡의 대지 위에는 집들이 있었고, 8필지 20,267㎡의 분묘지가 존재했다.
산을 의미하는 임야도 6필지 39,378㎡, 잡종지는 15필지 19,424㎡로 기록되어 있다. 잡종지란, 쉽게 말해 다른 용도로 분류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땅을 의미한다.
성산동 사람들의 삶과 성씨별 토지 소유
이 당시 성산동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성씨별로 살펴보면 김씨가 134필지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했고, 이어 이씨 61필지, 최씨 60필지, 조씨 32필지 순이었다.
이외에도 안씨, 박씨, 정씨, 윤씨, 노씨, 홍씨, 지씨, 손씨 등 다양한 성씨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 데이터를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토지 이용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성과 마을 공동체의 형태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국유지, 그리고 식민지의 흔적
1912년은 일제 강점기 초기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존재다. 성산동에도 동척의 땅이 43필지 있었다.
동척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경영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으로, 토지를 수탈하고 일본인의 이주를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성산동의 땅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국유지도 33필지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일제가 지배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국유지로 편입한 결과였다.
왜 지금, 100년 전 땅 이야기를 꺼내는가?
이야기를 여기서 멈춘다면 단지 옛날 자료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다.
오늘날 서울 곳곳에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땅 밑의 역사들이 존재한다. 성산동처럼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살며 터전을 일군 곳이라면, 그 땅 아래에는 분명 문화유산의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재 지표조사’에 주목해야 한다.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지표조사는 특정 개발지역의 땅 위와 그 주변을 조사해, 문화재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주로 택지개발, 도로건설, 공공기관 이전, 건물 신축 등 크고 작은 개발이 예정된 구역에서 시행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역사자산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다.
특히 서울과 같은 역사도시에서는 시굴조사와 표본조사로 이어지며, 정밀한 발굴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서울 지역 지표조사·시굴조사의 중요성과 절차
서울에서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은 전문 조사기관이 이를 수행한다.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된다.
개발 예정지의 고지도, 문헌, 항공사진 등을 검토
현장조사 실시 – 유적 흔적이나 유물의 표면 노출 확인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 시굴(시험발굴) 여부 판단
필요시 정식 발굴로 진행
이 과정에서 문화재가 발견되면 보존 대책이 논의되며, 경우에 따라 개발계획이 조정되기도 한다.
성공사례로 본 문화재 조사 의뢰의 가치
성산동과 유사한 사례로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 개발지에서 진행된 문화재 지표조사가 있다. 당시 별다른 유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표조사 후 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생활유구가 확인되었다.
결국 해당 유적은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개발계획이 일부 조정되었고, 이 과정에서 관련 유물들이 수습되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처럼 철저한 조사는 문화재를 지켜내는 마지막 방어선이 된다.
과거를 보존하는 당신의 선택
만약 당신이 성산동이나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건축, 개발, 리모델링 등을 준비하고 있다면, 문화재 조사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건 단지 행정적 절차를 넘어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도시의 과거를 존중하고 지켜내는 책임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새롭게 짓기 전에, 그 땅에 어떤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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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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