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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마포구 서교동, 땅이 말해주는 서울의 과거 이야기

  • 2025년 7월 15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1일


문화재 지표조사문화재 발굴기관마포구 역사삼국시대 유적홍대 역사

지금 홍대 카페 아래에 삼국시대 토기가 잠들어 있다— 마포구 서교동 1912년, 무덤이 집보다 많았던 마을

324필지 957,739㎡의 복합 농경 마을 — 집터 16필지보다 무덤 21필지가 많았던 역사, 그리고 인근에서 실제로 삼국시대 토기가 나온 충격적인 발굴 이야기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seoulheritage.org·읽는 시간 약 13분

"홍대 버스킹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거리 아래에


1912년 무덤이 21필지나 있었다.


집은 겨우 16필지였다.


그리고 그 무덤들 사이, 논물 흐르는 땅 아래에서


삼국시대 토기가 나왔다.


이건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마포구 서교동. 지금은 홍대입구역을 중심으로 카페와 편집숍, 버스킹 음악이 넘치는 서울의 가장 활기찬 동네 중 하나다. 하지만 1912년, 이 땅은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324필지, 957,739㎡. 논과 밭이 75%를 차지하고, 집보다 무덤이 더 많았던 복합 농경 마을이었다.

이 글은 서교동 1912년 토지 기록을 들춰가며, 지금 이 화려한 거리 아래에 어떤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지를 꺼낸다. 그리고 인근 발굴에서 삼국시대 토기까지 나왔다는 사실이 서교동 지표조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한다.


목차 — 이 글의 흐름

1. 서교동, 홍대 앞이 논밭과 무덤의 땅이었던 시절

2. 논 116필지, 밭 148필지 — 75%가 농경지

3. 무덤 21필지 vs 집터 16필지 — 이 역전이 말해주는 것

4. 임야 14필지와 잡종지 9필지 — 자연과 여백의 공간

5. 김씨 54필지 — 그리고 최씨, 노씨, 차씨까지 다양한 가문들

6. 동척 10필지, 일본인 7필지, 국유지 22필지

7. 서교동에서 삼국시대 토기까지 — 지층의 비밀

8. 문화재 지표조사, 이 땅의 모든 층위를 읽는 방법

9. 성공 사례 — 서교동처럼 역사가 땅속에서 돌아온 순간들

10. 홍대 앞 이 땅의 기억을 지켜야 할 이유


1. 서교동, 홍대 앞이 논밭과 무덤의 땅이었던 시절

서교동(西橋洞)이라는 이름은 서쪽에 있는 다리 동네라는 뜻이다. 한강 지류와 연결되는 물길이 있었고, 그 물을 이용한 논농사가 이 동네의 중심이었다. 1912년의 서교동은 총 324필지, 957,739㎡로, 지금 홍대 상권 전체를 포함하고도 남을 광대한 면적이었다.

지금 홍대입구역에서 연남동으로 이어지는 그 거리에 논이 있었다. 홍대 앞 공원 자리에 무덤이 있었을 수 있다. 카페들이 즐비한 골목 아래 잡종지와 임야가 있었다. 불과 100년 전의 이야기다. 그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그 아래에 얼마나 많은 것이 남겨졌는지를 생각하면 서교동 지표조사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324필지

총 필지 수

957,739㎡

총 면적

116필지

148필지

21필지

무덤 (집보다 많음)

16필지

집터



2. 논 116필지, 밭 148필지 — 75%가 농경지

논 116필지, 418,712㎡. 밭 148필지, 303,647㎡. 이 둘을 합치면 722,359㎡로 전체의 75%가 넘는다. 서교동은 농경 중심의 마을이었다. 다만 같은 마포구의 성산동(논+밭 93%)이나 신수동(논+밭 90%)보다는 농경 비율이 낮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머지 25%에 무덤, 임야, 집터, 잡종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논의 물 공급원은 서교동 인근을 흐르는 한강 지류였을 것이다. 지금의 서교동은 한강에서 꽤 떨어져 있지만, 당시엔 물길과 연결된 저지대가 더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 저지대에 116필지의 논이 자리했고, 한 해의 수확이 그 논에서 이루어졌다.

밭 148필지는 구릉지와 마을 주변의 자투리 땅을 이용한 소규모 경작지들이었을 것이다. 논보다 필지 수가 많지만 1필지당 면적이 작다는 건, 크고 넓은 논보다 촘촘한 소규모 밭들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148필지 / 303,647㎡ / 32%

116필지 / 418,712㎡ / 44%

임야

14필지 / 147,970㎡ / 15%

분묘지

21필지 / 48,489㎡ / 5%

대지

16필지 / 13,236㎡

잡종지

9필지 / 25,682㎡


3. 무덤 21필지 vs 집터 16필지 — 이 역전이 말해주는 것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독특한 사실 중 하나다. 서교동 1912년 기록에서 분묘지가 21필지(48,489㎡)인 반면 집터 대지는 16필지(13,236㎡)에 불과하다. 무덤이 집보다 필지 수도 많고, 면적도 3.7배나 크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서교동은 실제 거주 인구보다 오래된 정착 역사를 가진 지역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땅 위에 사람들이 살았고, 그 세월만큼 무덤이 쌓였다. 조상의 무덤을 돌보기 위해 일부 가족이 남아있거나, 선산으로 쓰이는 공간이 마을 주거 공간보다 더 넓었던 것이다.

서교동 무덤 vs 집터 — 충격적인 역전

21필지

분묘지 (무덤)


48,489㎡

16필지

대지 (집터)


13,236㎡

무덤 면적이 집터 면적의 3.7배. 이 역전은 서교동이 단순한 농촌 마을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여러 가문의 선산과 묘지를 품은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분묘 구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사 대상 중 하나다. 부장품, 묘비 석재, 제의 용기가 발굴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임야 14필지와 잡종지 9필지 — 자연과 여백의 공간

임야 14필지, 147,970㎡. 전체의 15%가 산이었다. 서교동의 구릉지를 감싸는 숲이 이 임야였을 것이다. 무덤이 분포한 구릉 위로 나무들이 자라고, 그 아래로 논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 지형이었다. 임야 구역에서는 나무 뿌리층 아래 기와 조각이나 토기 편이 보존될 수 있다.

잡종지 9필지, 25,682㎡. 창고, 공동 이용 공간, 마을 공터로 쓰이던 비정형적 공간들이었다. 잡종지는 예상치 못한 발굴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성산동 서교동 인근에서 삼국시대 토기가 나온 구역도 이런 잡종지 성격의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무덤이 집보다 많고,


논물 아래에 삼국시대 토기가 있었다.


홍대 앞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오래된 시간을


품고 있는지를 이 숫자들이 말해준다."


5. 김씨 54필지 — 그리고 최씨, 노씨, 차씨까지 다양한 가문들

서교동 토지 소유자 중 김씨가 54필지로 가장 많았다. 전체 324필지의 16.7%였다. 이어서 최씨 31필지, 노씨 28필지, 차씨와 채씨가 각 21필지, 이씨 18필지, 윤씨 14필지, 안씨 11필지, 송씨 10필지 순이었다.

이 성씨 분포의 다양성이 눈에 띈다. 하나의 가문이 독점하지 않고 9개 이상의 성씨가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다. 특히 노씨 28필지와 차씨 21필지는 다른 서울 동네 기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성씨들이다. 서교동이 다양한 가문들의 복합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이 성씨 분포가 무덤 21필지와 연결된다. 21필지의 분묘가 어느 성씨의 선산이었는지를 파악하면, 발굴 시 어느 구역에서 어떤 성격의 유물이 나올지를 예측할 수 있다. 김씨 선산, 최씨 선산, 노씨 선산이 각각 어느 구릉에 자리했는지가 지표조사의 핵심 분석 포인트다.

김씨

54필지


16.7%

최씨

31필지

노씨

28필지

차씨

21필지

채씨

21필지

이씨

18필지

동척

10필지

국유지

22필지



6. 동척 10필지, 일본인 7필지, 국유지 22필지

324필지 중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10필지, 일본인 개인 소유 7필지, 국유지 22필지. 합치면 39필지, 전체의 12%가 조선인 개인이 아닌 외부 세력의 손에 있었다.

동척 10필지와 일본인 7필지. 성산동(43필지), 진관외동(19필지)보다는 적지만, 창천동(17필지)과 비슷한 수준이다. 서교동이 전략적으로 용산만큼 중요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마포 일대 농경지에 대한 일제의 침탈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국유지 22필지 — 서교동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숫자

동척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국유지 22필지. 이 국유지들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가 서교동 지표조사에서 핵심 질문이다. 관아 부지, 군용지, 도로 관련 부지, 또는 일제 행정 시설과 연관된 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국유지 구역에서는 관청 건물 기초, 경계석, 관용 도기류가 발굴될 수 있다.


7. 서교동에서 삼국시대 토기까지 — 지층의 비밀

이 이야기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다. 서교동 인근 발굴에서 조선시대 건물지와 조선 전기 도자기뿐 아니라 삼국시대 토기까지 출토된 사례가 있다. 이건 서교동 땅 아래에 단순히 조선시대 층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곳에 삼국시대의 시간이 잠들어 있다는 뜻이다.

서교동 땅속 시간의 층위 — 가능한 문화층 구조

삼국시대

토기·생활 유구 (인근 발굴로 확인됨)

고려시대

도자기·건물지 가능성

조선 전기

도자기 파편 (인근 발굴로 확인됨)

조선 후기

건물지·생활 유구 (인근 발굴로 확인됨)

1912년

논·밭·무덤·집터 기록

삼국시대 토기가 나왔다는 건 이 땅이 최소 1,500년 이상 사람이 살아온 공간이라는 뜻이다. 1912년의 논밭 아래 조선시대 층위가 있고, 그 아래 고려시대 층위가 있으며, 그 아래 삼국시대 층위가 있다. 이 모든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을 지금 우리가 카페와 편집숍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8. 문화재 지표조사, 이 땅의 모든 층위를 읽는 방법

삼국시대부터 1912년까지, 다섯 개 이상의 시대 층위를 가진 서교동. 이런 복잡한 역사 구조를 가진 땅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는 어떻게 접근할까.

첫 단계는 역시 기록 분석이다. 1912년 토지 대장에서 무덤 21필지의 위치, 김씨·최씨·노씨 등 각 가문이 집중된 구역, 동척과 국유지의 위치를 파악한다. 무덤이 있던 구릉 구역은 삼국시대 유적까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삼국시대 사람들도 같은 구릉을 생활 공간으로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 답사에서는 지금의 홍대 거리와 골목에서 지형의 미세한 변화를 관찰한다. 과거 논이었던 저지대와 무덤이 있던 구릉지의 경계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경계가 잡히면 시굴조사 위치가 결정된다.

STEP 1

지표조사

기록·현장


비파괴 분석

STEP 2

표본조사

2% 이내


탐색 발굴

STEP 3

시굴조사

10~20%


예비 발굴

STEP 4

정밀 발굴

면 단위


전면 기록

STEP 5

기록·보존

보고서·전시


역사 활용


9. 성공 사례 — 서교동처럼 역사가 땅속에서 돌아온 순간들

성공 사례 01

서교동 인근 — 삼국시대 토기, 조선시대 건물지가 함께 나왔다

서교동 인근 발굴 현장에서 삼국시대 토기, 조선시대 건물지, 조선 전기 도자기가 함께 출토된 사례가 있다. 홍대 앞 이 동네에 수천 년의 문화층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실물로 증명한 발견이었다. 이 발견이 가능했던 것은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체계적으로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성공 사례 02

종로구 인사동 — 절차를 지킨 곳에서 금속활자가 나왔다

종로구 인사동에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거쳐 7개 문화층과 16세기 금속활자가 출토되었다. 서교동처럼 여러 시대 층위가 쌓인 지역에서도 절차를 지키면 각 층위를 온전하게 꺼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공 사례 03

성산동 인근 — 무덤 구역에서 부장품과 제의 용기 발굴

서교동과 인접한 성산동 인근에서 분묘지 유구가 확인된 사례가 있다. 1912년 토지 기록의 무덤 구역 정보를 기반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장품과 제의 용기가 발굴되었다. 서교동의 21필지 분묘지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다.



10. 홍대 앞 이 땅의 기억을 지켜야 할 이유

홍대 앞을 걷다가 이런 생각을 해보자. 지금 내가 커피를 마시는 이 카페 바로 아래에 1912년 누군가의 무덤이 있었을 수 있다. 그 무덤 더 아래에 조선시대 집터가 있었을 수 있다. 그 아래에 삼국시대 토기가 잠들어 있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무시하고 개발을 진행하는 것과, 그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는 것. 결과는 같은 건물이 올라가더라도 그 과정이 전혀 다르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팀에 지표조사를 의뢰하는 것이 그 확인의 첫 걸음이다. 마포구를 포함한 서울 전 지역의 조사를 담당하며, 조사 설계부터 보고서 작성, 인허가 절차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땅을 밟고 사는 존재로서, 그 땅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우리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홍대 앞 이 땅의 시간여행은 지금 당신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홍대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내 발 아래 삼국시대 토기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집보다 무덤이 많았던 그 땅이


지금 이 활기찬 거리가 되기까지


수천 년의 이야기가 층층이 쌓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역사는 살아남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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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를 포함한 서울 전 지역 — 지표조사부터 발굴, 보고서 작성, 인허가 절차까지 전 과정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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