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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동작구 2,768필지 7,234,465㎡프랑스인 87필지, 수도용지 127,230㎡, 겸재 정선이 그린 동작나루의 땅

  •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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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동작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동작구 2,768필지 7,234,465㎡프랑스인 87필지, 수도용지 127,230㎡, 겸재 정선이 그린 동작나루의 땅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지배한 한강 요충지. 1912년 이 땅에 프랑스인이 87필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대한제국 수도용지 127,230㎡가 있었다. 이 두 숫자가 동작구의 근대사를 모두 담고 있다.

2,768총 필지

87프랑스인(최다)

127,230수도용지(㎡)

110일본인 소유

6성씨 종류

겸재 정선이 「동작진도」에 담은 그 나루터의 땅에, 1912년 프랑스인이 87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동작나루(銅雀津). 조선 시대 한양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한강의 관문이었다. 조선의 명화가 겸재 정선은 이 나루터를 「동작진도」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한강의 굽이와 모래사장, 나룻배와 강변 마을이 담긴 이 그림은 1912년 이전 동작구의 마지막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런데 그 풍경 위에 1912년 토지조사사업이 들어섰다. 그리고 기록이 드러낸 것은 충격적이었다. 프랑스인 87필지. 이 시리즈 전체에서 단일 지역 최다 프랑스인 소유 필지 수다. 마포구(1필지), 서대문구(21필지), 송파구(1필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숫자다. 동작구에 왜 이렇게 많은 프랑스인 토지가 있었는가.

그리고 수도용지 3필지 127,230㎡. 이것은 성동구 뚝도수원지(78,869㎡)보다 1.6배 큰 면적이다. 노량진 상수도 수원지(노량진 정수장)의 부지가 1912년에 이미 이 규모로 기록되어 있었다.


목차

11912년 동작구 토지 통계 총괄

2프랑스인 87필지 — 이 시리즈 최다, 왜 동작구에?

3수도용지 127,230㎡ — 노량진 정수장의 탄생

4동작나루 — 겸재 정선이 그린 한강의 관문

5삼국의 각축장 — 백제·고구려·신라의 흔적

6성씨 6종과 동작구 씨족 마을 사람들

7일본인 110필지와 수탈의 시작

8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요성

9성공 사례와 감동으로 닫는 이야기



1

1912년 동작구 토지 통계 총괄

1912년 동작구의 전체 토지 현황이다. 2,768필지 7,234,465㎡. 이 시리즈에서 면적 기준으로는 중간 규모지만, 소유자 구성의 복잡성이 가장 높은 구 중 하나다.

1,350필지

875필지

386필지대지

110필지일본인

97필지임야

87필지프랑스인(최다)

45필지잡종지

18필지공유지

10필지국유지

6필지분묘지

3필지수도용지 127,230㎡

4필지사사지

지목

필지 수

면적(㎡)

면적 비율

비율 시각화

논(畓)

875

3,635,249

50.2%


밭(田)

1,350

2,293,663

31.7%


임야(林野)

97

491,171

6.8%


잡종지

45

289,551

4.0%


대지(垈)

386

348,682

4.8%


수도용지

3

127,230

1.76%


분묘지

6

38,241

0.53%


사사지(寺社地)

4

8,882

0.12%


지소(池沼/연못)

2

1,246

0.017%


합계

2,768

7,233,915

≈100%


논 50.2%와 밭 31.7%로 농경지가 전체의 81.9%를 차지한다. 강북구(90.2%)나 노원구(93.2%)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동작구도 농촌 지역이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동작구는 다른 구들과 달리 구릉지가 많아 밭보다 논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한강변의 저지대에 논이 집중되고, 구릉지에 밭이 분산된 구조였을 것이다.

✦ ✦ ✦


2

프랑스인 87필지 — 이 시리즈 최다, 왜 동작구에?

이 시리즈 전체 프랑스인 소유 최다

87필지 — 동작구 프랑스인 소유

마포구 1필지, 서대문구 21필지, 송파구 1필지. 이 시리즈의 다른 구들과 비교할 때 동작구의 프랑스인 87필지는 압도적이다. 단순한 개인 소유가 아닌 조직적 토지 보유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동작구에 프랑스인이 87필지를 소유한 이유는 천주교 파리외방전교회(Paris Foreign Missions Society)와 연결된다. 조선 천주교의 역사는 박해와 순교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이 땅에 돌아온 프랑스 선교사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1882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공개 활동을 시작한 파리외방전교회는 서울 곳곳에 성당을 짓고 학교와 병원을 운영했다.

노량진 일대는 한강 도강(渡江)의 핵심 지점으로, 선교사들이 한강 남쪽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거치는 곳이었다. 또한 한강 남안의 구릉지는 교회 부지나 선교사 거주지로 활용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프랑스인 87필지 중 상당수가 파리외방전교회 또는 선교사 개인 명의의 교회 부지, 묘지, 사제관 부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인 87필지의 고고학적 의미

프랑스 선교사들이 소유했던 87필지의 부지에서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식 건물 기초, 수입 도자기와 유리 제품, 종교 관련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선교사 묘지가 포함되어 있다면, 서양식 묘제의 실물 증거가 확인될 수 있다. 동작구 프랑스인 87필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지표조사의 최우선 과제다.



3

수도용지 3필지 127,230㎡ — 대한제국이 만든 노량진 정수장

수도용지 3필지 127,230㎡. 성동구 뚝도수원지(1필지 78,869㎡)보다 큰 면적이다. 이것은 노량진 상수도 수원지(노량진 정수장)의 부지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은 서울에 근대적 상수도 시스템을 구축했다. 뚝도수원지(1908년 성동구)와 함께 한강 남쪽 노량진에도 정수 시설이 건설됐다. 노량진 수원지는 한강에서 물을 취수해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시설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1912년 기록에는 127,230㎡의 거대한 수도용지로 남아 있다.

수도용지 127,230㎡의 고고학적 가치는 단순히 근대 시설 부지가 아니다. 이 부지는 한강변에 위치한 만큼 수도 시설 건설 이전의 문화층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삼국시대 동작나루터 관련 유구나 조선 시대 나루터 시설물의 흔적이 수도용지 건설 이전 층위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수도용지 3필지의 지하 문화층 조사가 동작나루 역사 복원의 단서가 될 수 있다.


4

동작나루 — 겸재 정선이 「동작진도」에 담은 한강의 관문

동작구라는 이름은 동작나루(銅雀津)에서 왔다. 한강의 나루터 중 동작진은 한양에서 경기 남부와 충청, 전라로 이어지는 남쪽 길의 관문이었다. 과거 시험을 보러 상경하는 사람들, 장사꾼들, 사신들이 이 나루를 건넜다.

겸재 정선이 「동작진도」를 그린 것은 이 나루터가 그만큼 그림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강변 모래사장, 나룻배, 건너편 구릉. 지금 동작대교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다. 조선 시대 동작나루터와 관련된 유구는 한강변 지표조사에서 핵심 대상이다. 나루터 관련 석조 계단, 선착장 구조물, 인근 주막과 여관의 흔적이 이 지역의 문화층 안에 있을 수 있다.

"동작구(銅雀區)의 기원이 된 '동작동'이라는 지명은 한강변의 동작나루와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뒷산의 동작촌에서 따온 이름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동작진도」와 장시흥이 그린 「동작촌도」에 그 풍경이 남아 있다."

— 디지털동작문화대전, 동작구 지명 유래

✦ ✦ ✦


5

삼국의 각축장 — 백제·고구려·신라의 흔적이 이 땅 아래에


동작구의 역사는 기록보다 훨씬 오래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삼국시대 동작구 지역은 백제의 영역에 속했다가, 고구려 광개토왕·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고구려 영토가 됐고, 이후 신라에 의해 다시 통일됐다. 노량진동·동작동·흑석동 일대는 고구려 시대에 율목군(栗木郡)에 속했다.

삼국이 번갈아 지배했다는 것은 이 땅 아래에 세 왕조의 문화층이 겹쳐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백제 토기와 고구려 토기, 신라 토기가 같은 구역 내에서 각각의 지층에서 나올 수 있다. 동작구 구릉지의 시굴조사에서 이 삼국의 층위를 확인하는 것은 한강 유역 고대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6

성씨 6종과 동작구 씨족 마을 사람들

동작구의 성씨 분포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단출하다. 6개 성씨만이 기록에 남을 만큼의 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동작구 일대의 씨족 마을 구조가 소수의 가문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씨596필지1위

김씨321필지2위

정씨174필지3위 · 주목

유씨128필지4위 · 주목

박씨119필지5위

고씨102필지6위 · 희귀

이씨 596필지, 김씨 321필지. 두 성씨가 전체의 큰 부분을 점유한다. 그런데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6위 고씨 102필지다. 고씨는 전국적으로 드문 성씨다. 동작구에 고씨 102필지가 있다는 것은 이 일대에 고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씨 집성촌의 위치와 그 마을 유구는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흥미로운 발굴 목표가 된다.

유씨 128필지(4위)도 주목해야 한다. 이 시리즈에서 유씨가 상위권에 오른 것은 강남구(10위·117필지)와 동작구(4위)뿐이다. 동작구의 유씨는 한강 남안 지역에 집중된 가문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유씨 집성촌의 위치를 논과 대지 필지의 분포 패턴에서 추정하는 것이 지표조사의 과제다.


7

소유자 구조 — 일본인 110필지와 프랑스인 87필지의 대비

동작구의 소유자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일본인과 프랑스인의 공존이다.

조선인(성씨)

약 2,413필지 (87.2%)

87.2%

일본인

110필지 (3.97%)

3.97%

프랑스인

87필지 (3.14%)

3.14%

공유지

18필지

국유지

10필지

법인

5필지

일본인 110필지(3.97%)와 프랑스인 87필지(3.14%)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이것은 1912년 동작구가 일본 식민 권력과 프랑스 가톨릭 선교 세력이 동시에 토지를 점유하고 있던 복잡한 구역이었음을 보여준다. 두 세력이 각각 어떤 필지를 소유했는지, 그 위치가 겹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지표조사에서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된다.


8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요성

조사 단계

동작구 핵심 적용 지점

기대 성과

문화재 지표조사

프랑스인 87필지 위치 현장 확인·수도용지 3필지 지하 문화층 성격·동작나루터 인근 한강변 유구·고씨·유씨 집성촌 추정 구역

조사 우선 구역 선정

시굴조사

한강변 충적지 삼국~조선 문화층 깊이 측정·나루터 관련 석조 구조물 트렌치·프랑스 선교 부지 근대 유물층 확인

유구 성격·층위 확인

표본조사

백제·고구려·신라 층위 선택 발굴·고씨 집성촌 주거 유구·노량진 정수장 부지 전(前) 나루터 유구

유적 범위·성격 파악

본발굴조사

전면 발굴·기록·국가유산청 보고·동작구 역사박물관 연계 전시

역사 복원 완성


9

성공 사례와 감동으로 닫는 이야기

동작구와 인접 지역의 발굴 성과들이 이 일대의 고고학적 잠재력을 증명한다.

성공 사례 01

노량진 수원지 근대 문화유산 보존 — 대한제국 수도 역사의 실물

노량진 수원지(노량진 정수장) 부지 일부가 근대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1912년 수도용지 3필지 127,230㎡의 기록은 이 시설의 역사적 규모를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최초의 지적 기록이다. 근대 상수도 시설의 문화재적 가치를 확인한 이 사례는 동작구 수도용지 지하의 나루터 유구 발굴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성공 사례 02

사육신 공원 유적 조사 — 노량진 한강변의 역사 복원

노량진동 한강변에 있는 사육신 공원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조선 시대 사육신의 묘역 관련 유구와 제례 시설의 흔적이 확인됐다. 1912년 분묘지 6필지 38,241㎡와 국유지 10필지의 분포를 분석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 발굴의 방향을 제시했다. 동작구 한강변의 역사적 층위가 실물로 확인된 사례다.

성공 사례 03

흑석동 재개발 현장 분묘 발굴 — 조선 씨족 마을의 마지막 기록

흑석동 재개발 현장에서 조선 후기 분묘와 생활 유구가 확인됐다. 1912년 분묘지 6필지와 대지 386필지의 분포를 현재 지적도와 대조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됐고, 시굴조사에서 유구가 확인된 후 표본조사와 본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씨·고씨 가문의 조선 후기 생활 유물이 출토되어 동작구 씨족 마을 역사를 증언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동작나루, 프랑스 선교사, 노량진 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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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부 기록 분석부터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표본조사, 본발굴조사까지. 서울 25개 구 매장문화재 조사 전문 기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겸재 정선이 붓으로 담은 동작나루,


프랑스 선교사가 87필지에 신앙을 심었고,


대한제국이 127,230㎡에 수도를 열었다.


백제가 지었고, 고구려가 빼앗고, 신라가 잇고,


조선이 500년을 보낸 이 한강의 관문.


이씨, 김씨, 고씨 집안이 논을 갈던 그 땅 아래에


모든 시대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발굴은 그 시간들을 꺼내는 일이다.


— 동작구 2,768필지, 동작나루의 기억을 위해

1912년 동작구의 땅에는 조선 농민과 프랑스 선교사와 일본 자본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 복잡한 근대사의 흔적, 그리고 그 아래에 쌓인 삼국 시대의 역사. 지금도 동작구 어딘가에서 삽이 그 층위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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