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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관악구 2,106필지 6,007,316㎡사사지 3필지 기해박해 성지, 김씨 508필지 1위, 봉천(奉天) 하늘을 받드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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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1912 토지조사부 시리즈

서울특별시 관악구 전역 · 문화재 기초조사 데이터

1912년 관악구 2,106필지 6,007,316㎡사사지 3필지 기해박해 성지, 김씨 508필지 1위, 봉천(奉天) 하늘을 받드는 땅

1839년 순교한 세 명의 프랑스 신부가 가매장된 삼성산 성지가 1912년 사사지 3필지 4,300㎡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가 잉벌노(仍伐奴)라 부르고, 관악산이 하늘을 받드는 형세라 봉천(奉天)이라 이름 붙은 이 땅의 2,106필지 이야기다.

2,106총 필지

53.9%논 면적 비율

3사사지(순교 성지)

508김씨(1위)

42국유지 필지

1912년 관악구 토지조사부에 사사지 3필지 4,300㎡가 기록되어 있다. 그 3필지가 어디인지를 알면, 이 땅의 가장 깊은 역사가 보인다.

사사지(寺社地)는 사찰이나 신앙 시설 부지를 뜻하는 지목이다. 그런데 관악구의 사사지 3필지는 단순한 사찰 부지가 아니다. 삼성산(三聖山) 성지다. 1839년(헌종 5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세 명의 프랑스 신부들의 시신이 이 삼성산에 가매장된 곳이다. '세 성인이 잠든 산'이라는 이름, 삼성산이 바로 여기서 유래됐다.

1912년 이 순교 성지의 부지가 사사지 3필지 4,300㎡로 조선총독부 토지조사부에 기록됐다. 세 신부의 순교로부터 73년이 지난 뒤였다. 그 땅이 지목상 사사지로 분류된 것은, 역설적으로 그 공간이 이미 천주교 신성한 영역으로 자리잡아 있었음을 공식 기록이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김씨 508필지 1위. 강남구(이씨 1위), 노원구(이씨 1위), 동작구(이씨 1위)와 달리 관악구에서는 김씨가 최다 필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508필지라는 압도적 차이로.


목차

11912년 관악구 토지 통계 총괄

2사사지 3필지 4,300㎡ — 기해박해와 삼성산 순교 성지

3논 53.9% — 안양천·도림천이 만든 농경 평야

4봉천(奉天) — 하늘을 받드는 관악산 자락의 지명

5성씨 5종 — 김씨 1위와 강씨·백씨의 관악 씨족 사회

6고구려 잉벌노현 — 관악구의 가장 오래된 역사

7국유지 42필지와 관악산 자락의 공간

8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요성

9성공 사례와 감동으로 닫는 이야기



1

1912년 관악구 토지 통계 총괄

1912년 관악구의 전체 현황이다. 2,106필지 6,007,316㎡. 이 시리즈에서 가장 소규모 필지 수 중 하나다. 하지만 단 2,106필지 안에 담긴 역사적 밀도는 어느 구에도 지지 않는다.

1,116필지

802필지논(면적 53.9%)

117필지대지

55필지임야

42필지국유지

12필지분묘지

10필지일본인

6필지공유지

3필지사사지(순교 성지)

2필지법인

1필지지소(연못 92㎡)

지목

필지 수

면적(㎡)

면적 비율

비율 시각화

논(畓)

802

3,235,674

53.9%


밭(田)

1,116

2,164,717

36.0%


임야(林野)

55

402,015

6.7%


대지(垈)

117

191,541

3.2%


분묘지

12

8,975

0.15%


사사지(寺社地)

3

4,300

0.072%


지소(池沼/연못)

1

92

0.0015%


합계

2,106

6,007,314

≈100%


논 53.9%와 밭 36.0%. 두 지목이 전체 89.9%를 차지한다. 강북구(90.2%), 노원구(93.2%)와 유사한 수준으로 관악구도 압도적인 농경 지대였다. 그런데 대지가 117필지(3.2%)로 필지 비율 대비 면적 비율이 낮다. 이것은 관악구의 취락이 소규모이고 분산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관악산·삼성산이라는 험준한 지형이 인구 집중을 제한했고, 산자락 마을들이 작은 규모로 형성되어 있었다.

지소(池沼) 1필지 92㎡.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작은 연못이다. 단 92㎡의 소규모 연못이 1912년 관악구 토지조사부에 1필지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마을 공동 우물이나 소규모 관개용 수조였을 가능성이 높다.

✦ ✦ ✦


2

사사지 3필지 4,300㎡ — 기해박해와 삼성산 순교 성지

천주교 순교 성지 · 기해박해 1839년

3필지 4,300㎡

1912년 관악구 사사지 3필지 4,300㎡는 삼성산(三聖山) 순교 성지와 일치한다. 앵베르 주교·모방 신부·샤스탕 신부, 세 프랑스 신부의 시신이 가매장된 이 땅이 73년 뒤 토지조사부에 사사지로 공식 기록됐다. '세 성인의 산'이라는 이름은 이 순교에서 왔다.

1839년(헌종 5년), 조선 천주교 역사에서 두 번째로 큰 박해인 기해박해가 일어났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조선 교구장 앵베르(Imbert) 주교와 모방(Maubant), 샤스탕(Chastan) 신부 세 명이 9월 22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들의 주검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노고산을 지나 이곳 삼성산에 몰래 가매장됐다.

73년 뒤인 1912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사업이 이 땅을 측량했다. 사사지 3필지 4,300㎡. 지목은 사사지(寺社地)다. 사찰이나 신앙 시설 부지를 의미하는 이 지목이, 순교한 세 프랑스 신부의 가매장지에 붙여진 것이다. 천주교 박해를 자행한 조선 정부의 후계자 격인 조선총독부가, 바로 그 박해의 희생지를 사사지로 공식 인정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삼성산 성지의 고고학적 의미

세 신부의 시신은 훗날 서울 명동 성당 지하로 옮겨졌지만, 가매장 당시의 지하 흔적은 여전히 삼성산 성지 부지 아래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1912년 사사지 3필지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고, 그 지하의 층위를 조사하는 것이 관악구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과제 중 하나다. 이것은 단순한 문화재 조사를 넘어 한국 천주교사의 물적 증거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삼성산 성지는 기해박해 때 효수를 당한 세 명의 프랑스 신부들의 무덤이 있던 자리를 성역화 시킨 것으로 천주교 성지이다. 그들의 주검은 노고산을 거쳐 이곳 삼성산에 가매장되는데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역화 하였다."

— 서울시 정보소통광장, 관악산 둘레길 역사탐방 기록



3

논 53.9% — 안양천·도림천이 만든 관악의 농경 평야

논 802필지 3,235,674㎡, 면적 기준 53.9%. 이 수치는 강북구(52.1%)보다 높고 노원구(61.7%)보다는 낮다. 그런데 관악구의 논은 다른 구들의 논과 지형적 배경이 다르다.

관악구의 논이 가능했던 것은 안양천과 도림천 수계 덕분이다. 관악산에서 발원한 물이 도림천으로 흘러 안양천으로 합류하면서, 관악구 북부와 서부의 저지대에 비옥한 충적 평야를 만들었다. 지금의 신림동·봉천동 저지대 일대가 바로 이 논의 주요 분포 지역이었다. 관악산이라는 험준한 화강암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이 이 농경지를 지탱했다.

논 802필지 3,235,674㎡는 수리시설(水利施設)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도림천·안양천 변의 논농사를 위해 조선 시대부터 보(洑)와 수문이 설치됐을 것이다. 지소 1필지 92㎡도 이 수리 시스템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관악구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논 802필지의 분포와 수계를 함께 분석하면, 조선 시대 수리 시설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수리 시설 유구에서는 목재 수문, 석축 제방, 관련 유물이 출토될 수 있다.


4

봉천(奉天) — 하늘을 받드는 관악산 자락의 지명

봉천(奉天). 관악구 봉천동의 이름이다. 이 지명은 관악산이 험하고 높아 마치 하늘을 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서 붙여졌다. 관악산의 화강암 봉우리들이 하늘로 뾰족하게 솟은 형세를 보고 옛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관악산(冠岳山)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솟은 해발 632m의 화강암 산으로, 북한산·도봉산·수락산과 함께 서울 4대 명산 중 하나다. 1912년 임야 55필지 402,015㎡는 관악산·삼성산 자락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 임야 구역에는 관악산의 유서 깊은 사찰들(연주암, 관음사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1912년 사사지 3필지가 삼성산 성지와 연결되듯, 임야 55필지 안에도 사찰 관련 유구들이 분포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 ✦ ✦


5

성씨 5종 — 김씨 1위와 강씨·백씨의 관악 씨족 사회

관악구 성씨 분포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김씨가 508필지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다. 이씨가 1위를 차지한 강남구·노원구·동작구와 달리, 관악구는 김씨 지배 구역이었다. 둘째, 강씨 137필지(4위)와 백씨 114필지(5위)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김씨508필지1위

이씨392필지2위

최씨154필지3위

강씨137필지4위 · 주목

백씨114필지5위 · 주목

강씨 137필지가 4위다. 이 시리즈에서 강씨가 4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노원구 신림동 기존 포스트에서도 강씨가 2위). 관악구 일대에 강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seoulheritage.org의 신림동 기존 포스트에서도 강씨가 두드러졌는데, 이번 관악구 전체 데이터에서도 강씨 137필지가 확인된다. 신림동 지역이 강씨 집성촌의 중심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백씨 114필지도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상위권에 등장한다. 백씨는 전국적으로 드문 성씨다. 관악구에서 백씨가 114필지를 보유했다는 것은 관악구 일대에 백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백씨·강씨 집성촌의 위치는 1912년 대지 117필지와 논·밭 필지 분포의 패턴을 분석해 추정할 수 있다.

seoulheritage.org 기존 신림동·봉천동 포스트와의 연결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이미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1912년 기록을 별도 포스트로 발행했다. 신림동 포스트에서 이씨 172필지 1위, 강씨 131필지 2위가 확인됐다. 이번 관악구 전체 데이터에서는 김씨가 1위로 나타나, 봉천동 구역에서 김씨의 밀도가 높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두 포스트와 이번 전체 데이터를 종합하면 관악구 내 씨족 마을의 지역별 분포 패턴이 더욱 선명해진다.


6

고구려 잉벌노현 — 관악구의 가장 오래된 역사



관악구의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나온다. 관악구 봉천동·신림동 지역은 고구려 시대에 잉벌노(仍伐奴)로 불렸다. 신라 통일 이후 경덕왕(745~762) 때 곡양현(穀壤懸)으로 개명됐고, 고려 시대에는 금주(衿州)라 불렸다. 이 역사적 변천이 관악구의 땅 아래에 삼국 시대부터의 문화층이 겹쳐 있음을 의미한다.

잉벌노(仍伐奴)라는 고구려 지명은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지역이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 지대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관악산은 한강 남쪽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국이 이 산을 사이에 두고 세력 경계를 다퉜다. 관악산 구릉지의 시굴조사에서 삼국 시대 문화층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7

소유자 구조와 국유지 42필지

관악구 2,106필지의 소유자 구조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단순하고 조선인 중심적이다.

조선인(성씨)

약 2,046필지 (97.1%)

97.1%

국유지

42필지 (2.0%)

2.0%

일본인

10필지

공유지

6필지

법인

2필지

조선인 97.1%는 이 시리즈 최고 수준이다. 일본인 소유가 단 10필지(0.47%)로 극히 낮다. 이것은 관악구 일대가 1912년 일본 자본의 진입이 가장 적었던 지역임을 보여준다. 관악산이라는 지형적 장벽이 외부 자본의 진입을 억제했다. 국유지 42필지(2.0%)는 관악산·삼성산 일대의 산림 관련 국유지와 관공서 부지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8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필요성

조사 단계

관악구 핵심 적용 지점

기대 성과

문화재 지표조사

사사지 3필지 삼성산 성지 위치 정밀 확인·논 802필지 안양천·도림천 수리시설 분포·강씨·백씨 집성촌 추정 구역·국유지 42필지 관악산 내 위치 파악

조사 우선 구역 선정

시굴조사

삼성산 성지 지하 가매장 흔적 확인·고구려 잉벌노현 문화층 측정·관악산 사찰 관련 유구 트렌치·강씨·백씨 마을 터 건물지 확인

유구 성격·층위 확인

표본조사

기해박해 관련 지하 유구 선택 발굴·삼국 시대 층위 문화재 수습·수리시설 관련 목제 유구 발굴

유적 범위·성격 파악

본발굴조사

전면 발굴·기록·국가유산청 보고·삼성산 성지 전시관 연계 계획

역사 복원 완성


9

성공 사례와 감동으로 닫는 이야기

관악구와 인접 지역의 발굴 성과들이 이 일대의 고고학적 잠재력을 증명한다.

성공 사례 01

삼성산 순교 성지 성역화 — 1912년 사사지 기록이 확인한 역사

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순교지로, 현재 천주교 순례지로 성역화되어 있다. 1912년 토지조사부의 사사지 3필지 4,300㎡ 기록은 이 성지의 역사적 지위를 공식 문서로 뒷받침하는 최초의 지적 자료다. 이 기록을 근거로 삼성산 성지 지하의 가매장 흔적 조사가 천주교 역사 연구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공 사례 02

seoulheritage.org 신림동·봉천동 포스트 — 관악구 기초 연구의 선구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는 이미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각각의 1912년 토지조사부 분석 포스트를 발행했다. 이 연구는 관악구 내 동별 씨족 분포, 지목 구성, 문화재 잠재 구역을 처음으로 체계화했으며, 이번 관악구 전체 데이터와 결합해 더욱 정밀한 문화재 지표조사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성공 사례 03

관악구 낙성대 발굴 — 강감찬 장군과 고려 역사의 물적 확인

관악구 낙성대공원 일대에서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와 관련된 역사 유구 조사가 이루어졌다. 1912년 대지 117필지와 분묘지 12필지의 분포를 현재 지적도와 대조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조사 방향을 제시했다. 고구려 잉벌노현 이래 이어진 관악구의 역사 연속성이 고려 시대 유구에서도 확인된 사례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삼성산 순교 성지, 봉천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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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받드는 관악산 아래,


1839년 세 신부가 이 땅에 잠들었고,


1912년 사사지 3필지가 그 자리를 기록했다.


김씨 508필지가 논을 갈고,


강씨 137필지가 밭을 일구고,


백씨 114필지가 마을을 지켰다.


고구려가 잉벌노라 부르고,


조선이 봉천이라 이름 붙인 이 땅.


그 모든 기억이 지금도 흙 아래에 있다.


— 관악구 2,106필지, 봉천(奉天)의 기억을 위해

1912년 관악구의 사사지 3필지 4,300㎡. 단 세 필지의 기록이 한국 천주교 순교 역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 주변에서 김씨, 이씨, 강씨, 백씨 집안이 하늘을 받드는 산 아래에서 조용히 논을 갈았다. 그 모든 것이 관악구 6,007,316㎡의 땅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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