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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종로구 수송동, 땅 아래 묻힌 이야기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가 밝혀낸 공간의 기억

  • 2025년 11월 1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4일

문화재 지표조사 · 문화재 발굴조사 ·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역사 · 발굴조사 의뢰 · 독일인 소유 토지 · 유적발굴단


도심 한복판에서 포크레인이 땅을 파는 순간, 오래된 벽돌 하나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쉽게 잊히고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지금은 깔끔하고 반듯한 빌딩들이 줄지어 있는 이 동네가 1912년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155필지 90,020㎡. 그런데 이 전체가 대지(주거·상업용 토지)였다. 논도 밭도 임야도 단 한 필지도 없이. 그리고 그 안에 이씨 25필지·김씨 21필지 옆에 일본인 12필지, 독일인 1필지가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글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의 1912년 수송동 토지 기록을 바탕으로, 전통과 외세와 근대가 충돌하던 그 공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수송동의 땅은 지금도 서울의 심장 아래에서 조용히 말을 걸고 있다.


목차

1수송동의 땅이 들려준 경고

21912년 수송동의 풍경과 땅의 비밀

3성씨·국적·법인 소유로 본 수송동의 사회 구조

4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가 필요한 이유

5서울 도심 발굴조사 성공 사례

6종로구 수송동,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

7감동의 에필로그

155

총 필지 수

90,020㎡

총 면적

100%

전량 대지

12

일본인 소유

1

독일인 소유

25

이씨 필지


1. 수송동의 땅이 들려준 경고



서울에서 발굴조사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다 안다. 땅속에 묻힌 과거는 절대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언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가 외면했던 이야기를 건네며, 도시가 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을. 특히 종로구 수송동은 그런 동네다.

지금은 깔끔하고 반듯한 빌딩들이 줄지어 있지만 1912년 기록 속 수송동은 지금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땅은 지금도 서울의 심장 아래에서 "나를 잊지 마라" 하고 속삭이는 것 같다. 155필지 90,020㎡. 이 숫자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고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1912년 수송동의 풍경과 땅의 비밀



1912년 종로구 수송동은 155필지 총 90,020㎡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규모가 작아 보이지만 당시에는 꽤 촘촘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중심지였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전체 면적이 대지로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논도 밭도 임야도 잡종지도 단 한 필지도 없이, 오롯이 주거·상업용 토지로만 채워진 동네였다.

이 시리즈에서 함께 들여다본 신교동(82필지 100% 대지), 안국동(177필지 100% 대지), 을지로4가(310필지 97.5% 대지)에 이어 수송동도 100% 대지 구성을 기록한다. 하지만 수송동이 이 목록에서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국유지 3필지, 법인 소유 2필지, 일본인 12필지, 그리고 독일인 1필지. 전통·외세·근대가 가장 복잡하게 뒤섞인 구성을 보여주는 동네가 바로 수송동이기 때문이다.

독일인 1필지.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처음 등장하는 서양인 소유 토지다. 1912년 당시 종로구 한복판에 독일인이 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경성이 단순한 식민지 도시를 넘어 이미 다국적 인물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증거다.

이씨

25필지

전통 명문가 중심

김씨

21필지

조선인 대표 성씨

일본인

12필지

식민지 기반 형성

국유지

3필지

행정·공공 기능

법인 소유

2필지

근대적 단체·기관

독일인

1필지

시리즈 첫 서양인

수송동 토지 소유의 독특한 구성: 조선인 + 일본인 + 독일인 + 법인 + 국유지. 이 시리즈에서 국적 다양성이 가장 높은 동네로 기록된다. 독일인 1필지는 이 시리즈 55개 동네 전체에서 처음 등장하는 서양인 소유 사례다.


3. 성씨·국적·법인 소유로 본 수송동의 사회 구조



1912년 수송동의 토지 소유 구성은 당시 조선 사회의 복잡한 권력 구조를 한 장의 지도처럼 보여준다. 이씨 25필지, 김씨 21필지를 중심으로 전통 명문가 구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일본인 12필지가 식민지 기반을 조용히 다지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인 1필지. 당시 조선에 외교 또는 무역 목적으로 체류하던 서양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 한 필지가 수송동을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국제적인 구성을 가진 동네로 만든다.

법인 2필지의 존재도 주목할 만하다. 1912년에 법인이 토지를 소유했다는 것은 근대적 기관이나 단체가 이미 수송동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종교 기관, 교육 시설, 또는 상업 법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법인 소유지는 발굴조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건물지나 생활 유구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통이씨·김씨 중심의 조선 명문가 소유 구조 유지

외세일본인 12필지·독일인 1필지의 침투

근대법인 2필지·국유지 3필지의 등장

결론전통·외세·근대가 155필지 안에서 충돌하는 현장


4.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가 필요한 이유



수송동처럼 오래된 지역일수록 새로 건물을 짓기 전에 반드시 문화재 조사가 필요하다. 문화재 발굴, 유적 발굴, 유물 발굴 작업은 단순히 돌과 흙을 파내는 일이 아니다. 과거라는 거대한 책을 천천히 펼치는 작업이다.

1단계

지표조사

수송동처럼 100% 대지 구성의 지역에서는 건물 기단 흔적, 기와 파편, 생활 유물이 지표에서 바로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인·일본인 소유지 위치를 1912년 기록으로 사전 특정해 지표조사 우선 구역을 설정한다.

2단계

시굴조사

이씨·김씨 소유 구역과 일본인·독일인 소유 구역을 별도로 구분해 시굴한다.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의 건물 기초가 구역별로 선명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3단계

표본조사

법인 소유 2필지 구역을 집중 조사한다. 이 구역에서 근대적 건물의 기초나 종교·교육 시설 관련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4단계

발굴조사

전통 조선 생활층, 일제강점기 일본식 건물층, 서양식 건물 흔적이 각기 다른 층위로 나타날 수 있다. 수송동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다층적인 문화층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은 동네다.


5. 서울 도심 발굴조사 성공 사례

성공 사례 — 청계천·을지로 조선 후기 상업 유구 발굴

서울 도심 발굴 중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발굴된 조선 후기 상업 유구다. 건물 기초, 벽돌, 도자기 파편, 화폐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며 한양 상권의 실체가 새롭게 밝혀졌다. 종로 일대에서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그대로 묻힌 채 발견되어 당시 생활사의 중요한 증거가 된 적도 있다. 수송동에서도 독일인 소유 필지가 있던 구역에서 서양식 건물 기초 흔적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서울 근현대사 연구에서 전혀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참고)

이처럼 지표조사 단계에서 발견된 유적이 도시계획을 완전히 바꾼 사례가 반복된다. '조사 먼저, 공사 나중'이 수송동에서 특히 더 중요한 이유다.


6. 종로구 수송동,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수송동은 지금도 여전히 개발 압력이 강한 지역이다. 그런데 땅 아래엔 1912년 기록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통과 외세와 근대가 충돌하던 그 공간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두었는지는 발굴이 이루어져야만 알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속도에 밀려 과거가 지워지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 발굴, 유적 발굴, 유물 발굴 작업을 통해 기록을 남기면 비록 형태는 사라지더라도 그 의미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재 발굴조사가 도시를 위한 마지막 안전망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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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감동의 에필로그



서울 도심의 땅을 바라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잊은 기록을, 땅은 결코 잊지 않는다." 수송동의 155필지 90,020㎡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삶, 권력의 흐름, 시대의 상처, 그리고 미래를 향한 메시지가 담긴 공간이다.

이씨·김씨의 필지 옆에 일본인 12필지, 독일인 1필지가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그 시절. 전통과 외세와 근대가 가장 복잡하게 뒤섞이던 종로구 한복판. 그 공간이 지금 수송동의 빌딩 아래에서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을 이해하고 싶다면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땅 아래의 깊이를 보아야 한다.

우리가 잊은 기록을, 땅은 결코 잊지 않는다. 땅은 늘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묻어둔 이야기를 다시 세상 위로 올려줄 사람을.

1912년 수송동의 155필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씨·김씨의 삶, 일본인 12필지의 그림자, 독일인 1필지의 비밀이


종로 한복판 그 땅 아래에서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발굴조사원, 유적발굴단, 문화재발굴 전문가들은


서울의 기억을 지키는 마지막 수호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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