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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강서구 공항동에는 비행기가 없었다?!

  • 2025년 6월 22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비행기가 뜨는 그 땅,100년 전엔 벼가 자라던 논밭이었다.

1912년 강서구 공항동 — 604필지, 226만㎡. 김포공항이 들어서기 전, 이 광활한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목차

1.서울 속 시골, 1912년 공항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2.논과 밭 — 활주로가 들어서기 전 이 땅의 풍경

3.대지와 잡종지 — 마을을 이루던 공간들

4.김씨·이씨·최씨 — 공항동을 일군 사람들

5.국유지 17필지의 비밀 — 김포공항의 씨앗

6.논밭에서 활주로까지 — 100년의 변화

7.문화재 지표조사 — 활주로 아래 잠든 역사를 찾아서

8.마무리 — 땅이 기억하는 것들


1. 서울 속 시골, 1912년 공항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서울 강서구 공항동. 이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김포공항과 활주로, 항공산업을 떠올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분주한 하늘의 관문 중 하나인 이곳이, 113년 전에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총 필지 수

604필지

대규모 농촌 공동체

총 면적

2,260,000㎡

여의도 면적의 약 78%

밭 (면적 1위)

1,110,000㎡

324필지, 전체의 약 49%

900,000㎡

178필지, 두 번째 규모

1912년 공항동의 총 면적은 226만 제곱미터, 604필지. 여의도 면적의 78%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다. 그리고 그 땅 위에 비행기가 아닌 벼가 자라고, 활주로가 아닌 논두렁이 마을을 가로질렀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팀이 분석한 1912년 토지조사부 기록을 따라, 지금 이 비행장이 한때 어떤 삶의 공간이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자.


2. 논과 밭 — 활주로가 들어서기 전 이 땅의 풍경

324필지

1,110,000㎡

178필지

900,000㎡

대지

70필지

110,000㎡

잡종지

49,861㎡



공항동에서 가장 넓은 땅은 밭이었다. 324필지, 약 111만 제곱미터.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다. 콩, 보리, 채소, 곡식이 계절마다 교대로 이 땅을 가득 채웠다. 그 다음이 논이었다. 178필지, 약 90만 제곱미터. 밭과 논을 합치면 약 201만 제곱미터, 공항동 전체의 89%가 농경지였다.

지금의 김포공항 활주로 아래에 벼가 자라고 있었다는 상상, 가능한가. 봄이면 모내기 소리가 이 평야를 가득 채우고, 가을이면 황금빛 이삭이 끝없이 펼쳐졌을 것이다. 지금 비행기 바퀴가 닿는 그 콘크리트 아래 어딘가에, 그 논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3. 대지와 잡종지 — 마을을 이루던 공간들

604필지 중 집이 지어진 대지는 70필지, 약 11만 제곱미터였다. 전체의 5%에도 못 미친다. 226만 제곱미터의 땅에서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공간은 그만큼 작았다. 넓은 들판 한가운데 드문드문 집들이 모여 있는 풍경. 지금의 아파트 단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 배치였다.

잡종지는 49,861㎡였다. 창고, 공동 우물터, 마을 길, 소를 매어두던 공간 등 마을을 운영하기 위한 실용적인 공유지들이었다. 지금의 도시계획에서 '공공부지'를 확보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개념이다. 임야는 17필지, 64,000㎡. 마을 뒤편의 야트막한 산에서 땔감을 구하고, 산나물을 뜯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던 공간이었다. 이 임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는 것도 문화재 지표조사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4. 김씨·이씨·최씨 — 공항동을 일군 사람들

김씨

213필지

이씨

161필지

최씨

다수

정씨

다수

박씨

다수

임씨 외

다수



공항동 토지의 주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김씨의 213필지와 이씨의 161필지다. 이 두 성씨만 합쳐도 전체 604필지의 62%에 가깝다. 하지만 공항동의 진짜 흥미로운 점은 그 뒤에 있다. 최씨, 정씨, 박씨, 임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고르게 분포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이는 단일 씨족이 지배하는 집성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여러 가문이 각자의 경제적 이유, 혹은 혼인 관계를 통해 이 넓은 들판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226만 제곱미터라는 거대한 땅은 한 가문이 독점하기에는 너무 넓었고, 그 여백이 다양한 성씨들을 불러들였다. 공항동은 처음부터 열린 공동체였다.


5. 국유지 17필지의 비밀 — 김포공항의 씨앗

역사적 맥락

1912년 공항동에 존재했던 국유지 17필지는 조선총독부 관할 토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1939년 일제는 이 지역을 군사 목적의 비행장으로 전용했고, 이것이 오늘날 김포국제공항의 전신이 되었다. 1912년의 국유지가 1939년 비행장으로 이어졌다면, 그 땅 위에 살던 조선 농민들은 27년 만에 삶의 터전을 강제로 잃은 셈이다.

공항동에는 17필지의 국유지가 있었다. 1912년은 이미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조선총독부 통치가 시작된 지 2년째였다. 이 17필지는 행정적·군사적 목적으로 관리되던 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7년 후인 1939년, 이 지역은 비행장으로 변모한다.

단 17필지의 국유지가 결국 226만 제곱미터 전체를 삼켜버린 셈이다. 1912년 공항동에서 논을 일구던 김씨 213필지, 이씨 161필지의 사람들은 그로부터 27년 후 자신들의 땅을 내놓아야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종종 이처럼 조용하게 시작된다.


6. 논밭에서 활주로까지 — 100년의 변화

1912

1912년 — 농촌 공동체의 절정

604필지, 226만㎡. 밭과 논이 89%를 차지하는 광활한 농경지. 김씨·이씨 중심의 다성씨 공동체가 이 땅을 일군다.

1939

1939년 — 비행장으로의 전환

일제가 군사 목적의 비행장을 건설하며 농경지는 활주로로 바뀐다.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는다.

현재

현재 — 김포국제공항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이 자리한다. 1912년 논밭의 흔적은 활주로와 터미널 아래 잠들어 있다.



1912년에서 지금까지 불과 113년이 흘렀다. 인류 역사의 스케일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다. 그 짧은 시간에 공항동은 논밭에서 비행장으로, 농촌에서 항공 도시로 변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발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논이 사라진 이야기이고, 누군가의 집이 무너진 이야기이며, 한 공동체의 삶이 통째로 지워진 이야기다.

그 지워진 이야기들이 지금도 땅 아래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활주로 아래 퇴적된 농경 문화의 층위, 김씨 집안이 경작하던 밭의 흔적, 마을 공동 우물의 자리. 이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문화재 발굴조사의 사명이다.


7. 문화재 지표조사 — 활주로 아래 잠든 역사를 찾아서



공항동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다른 동네들과 다른 차원의 문화재 조사 과제를 안고 있다. 농경지가 89%였던 지역이 비행장으로 전환되었다는 건, 개발의 충격이 매우 광범위하게 그리고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이 경우 지표에 노출된 흔적은 거의 없을 수 있지만, 오히려 지하 깊은 곳에 1912년 이전의 농경 문화 층위가 교란 없이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강서구는 백제와 고구려가 교차하던 한강 하류 지역으로, 공항동 일대에서는 삼국시대 유적이 출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항 인근 개발이나 공사가 계획된다면 문화재 지표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공항동처럼 대규모 인프라가 들어선 지역은 경계부 및 미개발지 조사가 특히 중요하다. 강서구 관할 조사는 seoulheritage.org 또는 국가유산청 협업포털(e-minwon.go.kr)에서 의뢰 가능.


8. 마무리 — 땅이 기억하는 것들



1912년 공항동의 김씨 213필지, 이씨 161필지.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씨앗을 심고, 물을 대고, 수확을 기다렸다. 봄이면 논에 물을 채우고, 여름이면 뙤약볕 아래 밭을 일구고, 가을이면 마을 전체가 수확의 기쁨으로 들썩였을 것이다. 그 삶이 1939년 비행장 건설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 우리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며 설레는 그 자리가, 한때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지워진 자리라는 사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이 땅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방법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묻지 않을 뿐이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는 그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강서구 관할 문화재 문의 → 강서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김씨 어른이 벼를 심던 그 논.1939년, 활주로가 그 위를 덮었다.2025년, 비행기가 그 위를 날아오른다.그 아래에서, 땅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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