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은평구 증산동으로 시간 여행 떠나볼래?”
- 서울 HI
- 6월 28일
- 2분 분량
목차
“그땐 그랬지” 1912년 증산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논밭이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 증산동
집은 몇 채였을까? 100년 전 증산동의 주거 풍경
증산동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성씨로 본 마을의 구성
낯선 이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1912년 증산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마무리: 그때 그 시절의 숨결을 느끼며
“100년 전 증산동으로 시간 여행 떠나볼래?”
지금의 서울 은평구 증산동은 고층 아파트와 상가, 북적이는 골목이 공존하는 동네죠. 하지만 100년 전, 그러니까 1912년의 증산동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쯤 생각해본 적 있지 않나요?
“내가 사는 동네, 옛날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늘은 여러분을 1912년 증산동으로 데려가 보려 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땅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증산동을 새롭게 느껴보는 시간이 될 거예요.

1. “그땐 그랬지” 1912년 증산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1912년,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가 교차하던 시기.
증산동은 지금처럼 번화한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전체 면적은 약 439,449㎡, 총 156필지로 구성된 조용한 마을이었죠.
당시 이 땅들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자연과 밀접했는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도시화되기 전, 증산동은 그야말로 ‘땅이 주인’이던 시절이었어요.
2. 논밭이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 증산동
그 당시 증산동의 주인은 ‘논’이었습니다.
전체 땅의 절반 이상, 283,581㎡가 논이었죠.
총 46필지에 달하는 이 논들은 마을의 생명을 책임졌습니다.
벼를 심고, 물을 대고, 수확을 기다리며 계절을 살아가는 삶.
한눈에 봐도 증산동은 ‘농촌’ 그 자체였습니다.
밭도 빼놓을 수 없죠.
84필지, 136,268㎡의 밭에서는 다양한 작물이 자라났을 겁니다.
채소, 콩, 보리, 그리고 아마도 약초 같은 특산물도 있었겠죠.
모두가 땅을 일구고, 흙을 밟으며 살던 시절.
지금의 시멘트 바닥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3. 집은 몇 채였을까? 100년 전 증산동의 주거 풍경
논밭 이야기만 하고 끝낼 순 없죠.
그럼 그 땅들 사이에 사람들이 살던 집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답은 26필지, 19,600㎡.
지금으로 치면 몇 동의 주택이 있었던 셈인데, 그 면적을 감안하면 꽤나 여유로운 삶이었을지도 몰라요.
좁은 빌라와 고층 아파트 대신, 텃밭을 끼고 있는 한옥들이 어깨를 나란히 했겠죠.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마당에는 아이들이 뛰놀았을 겁니다.
4. 증산동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성씨로 본 마을의 구성
당시 증산동에는 누가 살았을까요?
소유한 땅의 필지를 보면 성씨별 분포가 보입니다.
가장 많은 필지를 가진 건 나씨. 무려 32필지를 소유했어요.
그 뒤를 천씨(22필지), 이씨(20필지), 김씨(15필지)가 이었죠.
이 작은 마을에도 뿌리 깊은 가문이 있었고, 그들끼리의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었겠죠.
성씨만 봐도 그 마을이 얼마나 공동체 중심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이름 모를 마을 어르신, 그분들도 모두 이런 성씨의 후손일 수 있겠죠?
5. 낯선 이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그리고 여기서 눈에 띄는 존재.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 줄여서 ‘동척’입니다.
1912년, 증산동에도 이들의 땅이 있었습니다. 무려 28필지나요.
동척은 일본이 조선을 경제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만든 회사였어요.
농민들에게 강제로 땅을 빼앗아 자본가에게 넘기고, 마을 구조를 바꿔버렸죠.
증산동도 이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의 삶 속에 들어온 타인의 소유권.
그것은 땅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균열까지 의미했습니다.
6. 1912년 증산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지금 우리가 걷는 증산동 거리,
그 밑에는 이 모든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논밭에서 시작된 마을,
성씨로 뭉친 공동체,
그리고 외세의 간섭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
100년 전 증산동은,
우리에게 ‘뿌리’가 무엇인지,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잊혀진 시간 속으로 발을 디뎌볼 수 있죠.
7. 마무리: 그때 그 시절의 숨결을 느끼며
이제 증산동엔 논도, 밭도, 나무 울타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땅 위엔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이곳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시간여행지가 될지도 모르죠.
지금 우리가 기록하고, 이해하고, 보존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출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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