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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노트

공개·회원 1명

땅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시굴조사 vs 발굴조사, 그 차이점은? 🏺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 — 시굴조사부터 정밀발굴까지, 그들의 이야기


목차

1부. 오전 7시, 서울 한복판 흙바닥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2부. 시굴조사 팀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움직이는가

3부. 트렌치를 파는 사람들 — 시굴조사의 실제 작업 과정

4부. 아무것도 안 나와도 모든 것을 기록한다

5부. 뭔가 나왔다 — 시굴에서 정밀발굴로 넘어가는 순간

6부. 정밀발굴 현장의 하루 — 붓 하나로 역사를 꺼내는 사람들

7부. 발굴이 끝난 후 더 오래 걸리는 일들

8부. 두 조사의 차이를 현장에서 체감하면

9부. 이 일을 하는 이유 — 발굴조사의 진짜 의미

10부. 마무리 —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역사를 구하는 직업




1부. 오전 7시, 서울 한복판 흙바닥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오전 7시. 서울 도심 어딘가의 재개발 현장.

주변 카페에서는 아직 문을 열기 전인 시간에, 흙바닥으로 둘러싸인 사각형 구역 안에 이미 몇 사람이 나와 있다. 한 손에는 아직 뜨거운 커피, 다른 손에는 측량 도구. 발굴 현장 고고학자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 속 고고학자의 이미지는 외국 어딘가에서 모험을 하는 모습이지만, 실제 한국의 발굴 현장은 훨씬 일상적인 장소에 있다. 서울 도심의 재건축 현장, 도로 확장 공사장, 아파트 신축 부지.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그 땅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먼저 들어간다.

매장유산국비발굴단은 전국 각지에서 행하여지는 각종 국책사업, 도로 등의 사회기반시설 확충 및 민간주택, 아파트 건설부지 조성 등의 공사에 앞서 지표조사를 비롯한 표본, 시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매장유산의 훼손을 사전에 방지하고 개발과 보존을 조화롭게 수행한다.

그 "수행"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를 오늘 이야기한다.


2부. 시굴조사 팀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움직이는가



시굴조사를 하러 현장에 나오는 팀은 단순하지 않다. 역할이 명확하게 나뉜 전문가들의 집단이다.

발굴조사는 고고학자가 주관하여 유적의 성격을 파악해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지질학, 고생물학, 보존처리학자의 도움도 필요하다.

시굴 현장에서 가장 앞에 서는 사람은 책임조사원이다. 조사의 방향을 결정하고, 어디에 트렌치를 설치할지를 판단하며, 팀 전체를 이끈다. 조사원들은 실제 굴착을 감독하고 유물 수습과 기록을 담당한다. 보조 조사원들은 실측과 사진 촬영, 도면 작성 등을 맡는다.

현장에는 굴착기 기사도 있다. 문화층 이전까지의 현대 흙층을 굴착기로 걷어내는 작업은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유물이 있을 수 있는 층에 가까워지면 굴착기를 멈추고 수작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타이밍을 고고학자와 굴착기 기사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결정한다.

현장 인부와 특수 인부로 나뉘는데, 현장 인부는 말 그대로 현장에서 삽질을 하고 특수 인부는 유물 수습이나 지형토층 작업, 실측 작업, 접합 작업 등을 담당한다.

이 팀 전체가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날이 시굴조사의 하루다.


3부. 트렌치를 파는 사람들 — 시굴조사의 실제 작업 과정

오전 브리핑이 끝나면 작업이 시작된다.

시굴조사는 선행된 지표 및 표본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적의 분포범위와 성격 등을 파악하기 위해 유적 전면에 일정 단위의 방안과 좌표를 설정한 후, 너비 1에서 2미터 정도의 도랑인 트렌치를 설치하여 유적의 분포 범위 및 빈도, 성격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도면에 미리 표시된 위치에 줄을 팽팽하게 당겨 기준선을 잡는다. 그 선을 따라 좁고 긴 구덩이를 판다. 폭은 1에서 2미터, 길이는 지형에 따라 다르다. 이 구덩이가 바로 트렌치다.

트렌치를 파는 작업이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흙의 색깔이 바뀌는 순간마다 손을 멈추고 확인해야 한다.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은 다른 시대의 문화층에 진입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은빛이 도는 흙층에서는 유기물 흔적이 있을 수 있고, 회색빛 점토층에서는 건물터 흔적이 있을 수 있다.

여름에는 땀으로 다 배출되어 화장실도 안 가게 된다. 겨울에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흙과 씨름한다. 날씨에 상관없이 현장은 돌아간다. 비가 오면 우비를 걸치고, 폭염이면 그늘 없는 흙바닥에서 작업한다.

이것이 시굴조사 현장의 실제 하루다. 낭만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트렌치 벽면에 드러나는 지층의 단면을 처음 보는 순간만큼은 어떤 직업도 줄 수 없는 감각이 있다.


4부. 아무것도 안 나와도 모든 것을 기록한다



시굴조사에서 유물이 나오지 않는 날도 많다. 오히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작업은 계속된다.

유물이 없어도 지층의 단면은 기록한다. 어느 깊이까지 현대 교란층이 내려왔는지, 어느 깊이부터 원래 자연 지층이 시작되는지, 문화층으로 볼 수 있는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두 도면에 그리고 사진으로 찍는다.

이 기록이 나중에 정말 중요해진다. 시굴 결과에서 "아무것도 없었다"는 결론 자체가 이후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시굴조사 결과 국가유산이 없을 경우에도 국가유산청의 조치통보가 있은 후에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그 조치 통보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현장 기록들이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없었던 것과 같다. 고고학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아무것도 없는 흙층의 단면 사진 한 장이 사업자의 공사 재개를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가 된다.


5부. 뭔가 나왔다 — 시굴에서 정밀발굴로 넘어가는 순간

현장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트렌치를 파던 중 흙 속에서 뭔가 이질적인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다.

기와 조각 하나, 자기 파편 하나. 그것이 기계적으로 파던 굴착기를 멈추게 하는 신호다. 책임조사원이 내려가 확인한다. 유물인지, 아닌지. 유물이라면 어느 시대의 것인지. 이 판단 하나가 현장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시굴조사 결과 국가유산이 확인될 경우에는 정밀발굴조사로 전환될 수 있다. 이 전환이 결정되면 조사기관은 즉시 국가유산청에 발굴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조사 유형이 시굴조사에서 정밀발굴조사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전환의 순간은 두 가지 의미가 겹치는 지점이다. 사업자에게는 공사 일정이 길어지는 시작점이고, 고고학자에게는 진짜 작업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수백 년 전 누군가의 생활 흔적이 지금 이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6부. 정밀발굴 현장의 하루 — 붓 하나로 역사를 꺼내는 사람들



정밀발굴조사는 시굴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시굴이 "어디에 뭐가 있나"를 탐색하는 과정이라면, 정밀발굴은 "있는 것을 전부 꺼낸다"가 아니라 "있는 것을 전부 이해한다"를 목표로 한다.

유물이 나오면 꺼내기 전에 먼저 기록한다. 발견된 위치를 좌표로 기록하고, 유물의 방향과 기울기를 기록하고, 주변 흙의 색깔과 성분을 기록한다. 사진을 찍고, 도면에 그린다. 그런 다음에 조심스럽게 수습한다.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학술자료들을 얻을 수 있지만, 발굴은 유적의 현재 모습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발굴을 하지 않고 원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 원칙이 발굴 현장의 모든 작업 속도를 결정한다. 빠르게 파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파괴되기 전에 모든 정보를 담아내는 것이 목표다.

하루에 8에서 9시간 근무하는 게 기본이지만 현장이 급하면 야근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요한 유물이 나왔거나 기상 조건이 바뀌기 전에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해가 질 때까지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7부. 발굴이 끝난 후 더 오래 걸리는 일들



현장 발굴이 완료됐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발굴 이후가 더 오래 걸린다.

수습된 유물들은 세척하고 건조한 뒤 일련번호를 붙여서 목록을 만든다. 접합 가능한 조각들을 맞춰보고, 복원한다. 유물의 재질과 제작 기법을 분석한다. 동반 출토된 씨앗이나 동물 뼈 같은 자연유물은 분석 전문가에게 보낸다.

현장에서의 발굴조사가 끝나면 유물의 복원과 실측, 사진촬영 등을 시행하고 분석하여 그 결과를 정리함으로써 고고학적 기초자료로 활용될 학술보고서를 발간한다. 보고서에는 유적의 자연환경과 입지, 역사적 배경, 유구 및 유물의 발굴상태, 고찰 등 발굴 과정의 모든 상황이 정리·기록된다.

이 보고서를 발굴 완료 후 2년 이내에 국가유산청에 제출해야 한다. 보고서는 단순한 행정 서류가 아니다. 이 현장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긴 학술 문서다. 수십 년, 수백 년 뒤의 연구자들이 이 보고서를 보며 우리 시대의 발굴 현장을 이해하게 된다.


8부. 두 조사의 차이를 현장에서 체감하면

시굴조사와 정밀발굴조사의 차이를 텍스트로 설명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은 다르다.

시굴 현장은 넓고 빠르다. 굴착기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도면을 들고 다닌다. 상대적으로 넓은 지역을 짧은 시간 안에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속도감이 있다. 좁은 트렌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마치 체계적인 탐색 작전처럼 보인다.

정밀발굴 현장은 좁고 느리다. 굴착기는 이미 역할을 마쳤고, 사람들이 구역별로 나뉘어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집중하고 있다. 한 사람이 오전 내내 같은 자리에서 붓으로 흙을 걷어내고 있는 광경도 낯설지 않다. 그 사람이 찾아내는 것이 천 년 전 누군가가 쓰던 물건일 수도 있다.

두 조사를 이어주는 것은 기록이다. 시굴에서 만든 기록이 정밀발굴의 방향을 결정하고, 정밀발굴에서 만든 기록이 보고서가 되고, 그 보고서가 역사의 일부가 된다.


9부. 이 일을 하는 이유 — 발굴조사의 진짜 의미

발굴 고고학자에게 이 일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어떤 사람은 땅속에서 뭔가 나오는 순간의 긴장감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으로 만든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한국에서 건설 공사가 계속되는 한 이 직업은 계속 필요하다. 그 현실적인 필요와 역사적인 사명이 겹쳐 있는 직업이다.

발굴조사는 발굴 동기에 따라 학술 정보를 얻기 위한 학술발굴조사와 유적이 파괴될 상황에 처한 경우에 시행하는 구제발굴조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발굴은 구제발굴, 즉 개발 공사로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기기 위한 발굴이다.

한양도성 안팎의 땅을 파다가 조선시대 건물터가 나오는 것, 재건축 아파트 부지에서 삼국시대 토기가 나오는 것. 이 발견들은 발굴조사가 없었다면 콘크리트에 영원히 덮혔을 것들이다. 적어도 기록으로는 남겼다. 그 기록이 언젠가 역사책이 되고, 박물관 전시가 되고, 교과서가 된다.


10부. 마무리 —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역사를 구하는 직업

오전 7시에 시작한 하루가 해 질 무렵 마무리된다.

붓과 트로웰을 씻고, 그날 수습된 유물에 번호표를 붙이고, 도면과 사진을 정리한다. 특별한 것이 나온 날도 있고, 평범한 흙층만 확인한 날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날이든 그날의 기록은 남는다.

시굴조사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정밀발굴은 그 가능성을 실체로 만든다. 두 과정이 모여 하나의 유적지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 일은 화려하지 않다. 흙바닥에서, 태양 아래서, 혹은 빗속에서 조용히 진행된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안에 수천 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어딘가에서 고고학자들은 흙을 걷어내며 역사를 꺼내고 있다.

그것이 시굴조사이고, 정밀발굴조사이고, 발굴 현장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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