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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성북구 장위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노루가 살던 산자락, 왕자의 별서가 있던 자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성북구 편 (국유지 특별편) 1912년 성북구 장위동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노루가 살던 산자락, 왕자의 별서가 있던 자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3필지임야 2필지밭 1필지 병자호란의 볼모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그 왕자는,이 산자락에 별서를 짓고 폭포 곁에서 붓을 들었다. AI 브리핑 요약 1912년 성북구 장위동의 국유지는 총 3필지, 4,786㎡였습니다. 임야가 2필지 3,973㎡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밭이 1필지 813㎡ 있었습니다. 장위동(長位洞)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에 있는 장위산(獐位山)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노루 장(獐)' 자를 쓴 이 산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이어지며, 지금은 '길 장(長)' 자로 바뀌어 장위동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의 동북쪽 끝자락에 자리했던 이 마을은, 우이천을 경계로 한적한 농촌 마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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