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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서대문구 신공덕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큰더기 마을에서 새로 갈라져 나온 자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국유지 특별편 1912년 신공덕동 국유지는 몇 필지였을까? 큰더기 마을에서 새로 갈라져 나온 자리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국유지 8필지밭 5필지분묘지 1필지대지 2필지 본래 하나였던 공덕리에서 사람들이 새로 마을을 이루자,이 자리는 '새로운 공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AI 브리핑 요약 1912년 신공덕동의 국유지는 총 8필지, 11,533㎡였습니다. 밭이 5필지 5,153㎡로 가장 많았고, 분묘지가 1필지 5,586㎡로 면적이 가장 넓었으며, 대지도 2필지 793㎡ 확인됩니다. 신공덕동(新孔德洞)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새로운 공덕'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리즈가 앞서 다룬 공덕동에서 갈라져 나온 마을로,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했던 신창내계와 공덕리계의 흥례동, 신동이라는 자연부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덕동의 유래가 우리말 '큰더기(높은 언덕)'에서 왔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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