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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성북구 하월곡동으로의 시간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 2025년 6월 14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9일

창덕궁이 이 땅을 소유했다.1912년 하월곡동의 놀라운 비밀.

1912년 성북구 하월곡동 — 91필지, 671,295㎡. 창덕궁 45필지·동척 16필지가 공존한 땅. 왕실과 식민지, 박씨 가문이 얽힌 마을의 기억


목차

1.하월곡동, 과거로의 시간 여행

2.논밭 사이, 삶의 흔적들

3.이름 따라 땅 따라 — 성씨들의 터전

4.시대의 그림자 — 동양척식주식회사 16필지

5.왕실의 흔적 — 창덕궁 소유지 45필지의 비밀

6.세 권력의 땅 — 왕실·동척·민간이 공존하다

7.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

8.문화재 지표조사 — 왕실 소유지를 발굴하다

9.마무리 — 이 땅 아래 숨겨진 이야기


1. 하월곡동, 과거로의 시간 여행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성북구 하월곡동. 지금은 아파트와 상점, 카페들이 즐비한 평범한 주택가다. 그런데 1912년 지적도를 펼쳐보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발을 딛고 걷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아래에는 100여 년 전 선조들의 흔적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총 필지 수

91필지

소규모이지만 특별한 구성

총 면적

671,295㎡

서울 외곽 풍요로운 농경지

밭 (면적 1위)

347,958㎡

29필지, 전체의 약 52%

241,908㎡

39필지, 두 번째 규모

1912년 하월곡동의 전체 면적은 671,295㎡, 91필지. 규모는 중간 수준이지만, 그 구성이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특별하다. 왕실 소유지가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것, 그리고 동척의 흔적까지 얽혀 있다는 것. 이 91필지의 기록 속에 조선 왕실과 일제 식민지, 그리고 박씨를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의 삶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


2. 논밭 사이, 삶의 흔적들

29필지

347,958㎡ · 52%

39필지

241,908㎡ · 36%

임야·기타

23필지

81,429㎡ · 12%



1912년 하월곡동의 중심은 논과 밭이었다. 밭이 29필지, 347,958㎡로 전체의 52%를 차지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밭의 필지 수(29필지)보다 논의 필지 수(39필지)가 더 많다는 것이다. 작은 논들이 더 촘촘하게 나뉘어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논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보다 세밀하게 분배되었음을 시사한다.

논 39필지, 241,908㎡. 이 논에서 벼가 자라고, 계절마다 물빛이 달라지며 하월곡동의 풍경을 채웠다. 밭에서는 온갖 농작물이 무성했다. 서울 외곽에서 풍요로움을 자랑했던 하월곡동은 당시 성북 지역의 식량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풍요로운 땅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3. 이름 따라 땅 따라 — 성씨들의 터전

박씨

17필지

전씨

4필지

이씨

2필지

임씨

2필지

홍씨

2필지

김씨

소수

방·조씨

소수

91필지 중 개인 소유지를 살펴보면 박씨가 17필지로 단연 압도적이다. 전씨 4필지, 이씨·임씨·홍씨가 각각 2필지, 김씨·방씨·조씨가 소수의 필지를 소유했다. 박씨가 개인 소유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건, 하월곡동이 박씨 집안 중심의 마을이었다는 뜻이다.

박씨 가문의 17필지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상상해보자. 결혼과 출생, 장례를 서로 도우며 함께한 그 온정. 전씨네 집과 이씨네 밭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박씨 어른이 마을 대소사를 이끌던 그 풍경. 하지만 91필지 중 실제 개인이 소유한 땅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해야 그 진짜 이야기가 보인다. 나머지 필지들의 주인이 놀랍기 때문이다.


4. 시대의 그림자 — 동양척식주식회사 16필지



하월곡동의 밭과 논 사이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름이 16필지에 새겨져 있었다. 91필지 중 18%에 가까운 땅이 동척 소유였다. 이것은 단지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조선 농민들의 땅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하월곡동의 논밭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 맥락

동양척식주식회사가 하월곡동에 소유한 16필지는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동네들 중 적지 않은 비율이다. 하월곡동처럼 왕실 소유지(창덕궁 45필지)와 동척 소유지(16필지)가 같은 마을 안에 공존한다는 건, 이 땅이 조선 왕조의 쇠퇴와 일제 식민지 수탈이 동시에 진행되던 역사적 전환점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주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시대를 견뎠을까. 창덕궁 소유지에서 소작을 하거나 동척의 밭을 빌려 경작하던 하월곡동 사람들. 박씨 17필지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그 땅을 지켰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묵직해진다.


5. 왕실의 흔적 — 창덕궁 소유지 45필지의 비밀

이 시리즈 최초 등장 — 조선 왕실 소유지

창덕궁 45필지

전체 91필지의 49.5% — 하월곡동 절반이 왕실 땅이었다


나라 전체의 식량 창고 역할을 했던 왕실 직할 농지

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수치가 여기 있다. 창덕궁이 하월곡동 91필지 중 45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체의 49.5%. 하월곡동 땅의 절반이 왕실 소유였던 것이다. 이건 이 시리즈 어느 동네에서도 본 적 없는 항목이다.

창덕궁 소유지라는 건 이곳이 왕실의 식량과 재정에 기여하던 중요한 농지였다는 뜻이다. 조선 왕실은 전국 곳곳에 '궁방전(宮房田)'이라 불리는 직할 농지를 운영했는데, 하월곡동의 45필지가 바로 그 흔적이다. 왕이 먹을 쌀이 이 논에서 자랐을 수 있다. 왕실의 손이 닿은 땅 위에 지금 아파트가 서 있고, 그 아래 어딘가에 궁방전의 흔적이 잠들어 있을 수 있다.


6. 세 권력의 땅 — 왕실·동척·민간이 공존하다

창덕궁

45필지

왕실 직할 농지

동양척식

16필지

식민 수탈 기관

박씨 외

30필지

민간 개인 소유

91필지를 세 주체로 나눠보면 하월곡동이 얼마나 복잡한 역사적 교차점에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창덕궁 45필지, 동척 16필지, 나머지 개인 소유 30필지. 조선 왕조의 마지막 흔적과 일제 식민지의 수탈 구조,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땅을 지키려던 박씨 가문이 한 마을 안에 공존했다.

그 묘한 공존이 만들어낸 긴장과 삶. 창덕궁 소유지에서 소작을 하며 왕실에 세를 내고, 동척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그 사이에서 박씨 어른이 마을의 중심을 잡아가던 하월곡동의 하루. 지금 우리가 카페를 드나들고 편의점을 오가는 그 땅이 한때 이 세 권력이 교차하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온다.


7.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남긴다. 지금의 하월곡동은 화려한 아파트와 상점들이 즐비한 현대 도시다. 하지만 이 아래에는 여전히 1912년의 논과 밭, 창덕궁 소유지의 흔적, 동척의 그림자, 그리고 박씨 가문이 이루었던 삶의 터전이 숨 쉬고 있다.

삶이 힘들고 지친다면,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창덕궁 소유지와 동척의 압박 속에서도 17필지를 지키며 마을을 이끌던 박씨 가문의 의지. 그 의지 위에 지금의 우리가 서 있다. 성북구 하월곡동을 지나다가 발밑을 내려다본다면, 잠시 멈추어 이 땅 아래 숨겨진 역사를 한 번쯤 떠올려보길 바란다.


8. 문화재 지표조사 — 왕실 소유지를 발굴하다



창덕궁 소유지 45필지가 있었던 하월곡동은 문화재 지표조사의 관점에서 이 시리즈의 어느 동네보다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왕실 직할 농지였다는 건, 단순한 농업 유물 외에 왕실 관련 건축물, 왕실 생활 용품, 관리 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조선 궁방전 관련 유적이 발굴된 사례는 전국에 여럿 있으며, 하월곡동도 그 가능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동척 16필지의 위치를 특정하고 그 경계를 추적하는 것도 근대 식민지 역사 연구의 중요한 과제다.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창덕궁 소유지와 동척 소유지의 경계, 그리고 박씨 가문의 집터를 추적하면, 하월곡동의 역사가 훨씬 구체적으로 복원될 수 있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창덕궁 소유 왕실 농지가 45필지였던 지역은 왕실 관련 유물 출토 가능성이 있어 정밀 조사 가치가 높다. seoulheritage.org 또는 e-minwon.go.kr에서 성북구 지역 의뢰 가능.


9. 마무리 — 이 땅 아래 숨겨진 이야기



창덕궁이 소유한 45필지, 동척의 16필지, 박씨 가문의 17필지. 이 세 숫자가 겹쳐진 91필지의 하월곡동. 왕실의 식량 창고였고, 식민지 수탈의 현장이었으며, 그 사이에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지금도 하월곡동 땅 아래 새겨져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도 분명 선조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 시간은 지나도 땅은 늘 그 자리에 남아 그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다. 발밑을 내려다보는 그 순간이,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성북구 관할 문화재 문의 → 성북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하월곡동, 창덕궁의 벼가 자라던 논.동척의 그림자 아래서도 박씨 가문이 땅을 지켰다.그 땅 위에 지금 당신이 걷고 있다.발밑에 왕실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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