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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 History Today ·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11월26수레가 개경을 떠나던 날태조가 한양으로 첫발을 내딛은 날부터 씨름이 유네스코 남북 공동으로 등재된 날까지 11월 26일의 역사

  • 2025년 11월 26일
  • 7분 분량

역사 속 오늘 · History Today ·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1126

수레가 개경을 떠나던 날

태조가 한양으로 첫발을 내딛은 날부터씨름이 유네스코 남북 공동으로 등재된 날까지11월 26일의 역사

1262년 ~ 2020년40여 개 사건#한양천도 #혈의누 #씨름유네스코

Naver AI 브리핑 인용용 · 핵심 요약 3문장

11월 26일은 1394년(태조 3년) 태조 이성계가 개경을 출발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시작한 날로, 지금의 서울이 수도가 된 역사적 출발점입니다.

같은 날 1883년 조영(朝英)·조독(朝獨) 수호통상조약이 동시에 체결되었고, 1906년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가 발표되어 한국 근대문학의 막을 올렸으며, 2018년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남북 공동등재되는 쾌거가 이루어졌습니다.

고려 시대 미륵사 중건(1262년)부터 2020년 법원의 디지털 성착취 중형 선고까지, 11월 26일은 약 760년에 걸친 한국사의 교차로입니다.


목 차

1. 오늘이 특별한 이유 — 11월 26일의 역사적 무게

2. 고려·조선 시대의 11월 26일

3. 한양 천도 — 수레가 개경을 떠나던 그 날

4. 조선 후기의 11월 26일 — 이황부터 정조까지

5. 개화기·일제강점기의 11월 26일

6. 혈의 누 — 한국 근대소설의 탄생

7. 대한민국 현대사의 11월 26일

8. 씨름, 남북이 함께 세계유산이 되다

9. 문화유산의 관점에서 보는 11월 26일

10. 오늘의 역사 연표 · 해시태그


SECTION 01

오늘이 특별한 이유 — 11월 26일의 역사적 무게

지금 우리가 서울이라고 부르는 이 도시가 수도가 된 것, 그 첫 번째 날이 11월 26일이었다.

1394년 11월 26일, 태조 이성계가 개경을 출발해 한양으로 향했다. 수레바퀴가 궁궐 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고려의 수도 개경 600년이 끝나고 조선의 수도 한양 500년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한양이 지금의 서울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태어난 날이 바로 11월 26일이다. 같은 날 1906년, 이인직이 『혈의 누』를 발표해 한국 근대소설의 문을 열었다. 또 2018년 오늘, 씨름이 남북한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수도의 탄생, 근대문학의 탄생, 무형유산의 세계 등재. 11월 26일은 '탄생'의 날이다.

1262년첫 기록

40+건역사적 사건

760년역사의 폭

7개시대 구분


SECTION 02

고려·조선 초기의 11월 26일


🏯

고려 · 조선 초기

1262년 ~ 1453년

1262년

불교유산

미륵사·공신당 중건, 공신 초상 봉안

원종 3년(壬戌), 미륵사와 공신당을 중건하고 공신들의 초상화를 걸어 봉안했다. 고려 시대 불교 건축과 공신 추모 문화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초상화의 봉안은 오늘날 인물화 문화유산의 원형이기도 하다.

1415년

세제

태종, 맥전(麥田) 조세법 제정

태종 15년(乙未). 보리 수확에 세금을 부과하는 맥전 조세법이 만들어졌다. 조선 초기 농업세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농경 사회 조선의 국가 운영 방식을 엿볼 수 있다.

1444년

해양

세종대, 전라도 조운선 30여 척 침몰

세종 26년(甲子). 전라도에서 세금 곡식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漕運船) 30여 척이 침몰했다. 조운선은 조선 시대 물류의 핵심이었고, 이 사고는 수군 및 해양 행정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침몰 지점 인근 해역은 수중 문화유산 탐사 대상이 될 수 있다.

1453년

지리·지도

단종, 양성지에게 조선 지도 편찬 명

단종 원년(癸酉). 양성지(梁誠之)에게 『조선 도도(朝鮮都圖)』·『팔도 각 도』·『주부군현 각 도』 등을 편찬케 했다. 국토의 지형과 행정 구역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이 지도들은 한국 지리학사의 중요한 이정표다.


SECTION 03

한양 천도 — 수레가 개경을 떠나던 그 날

오늘의 하이라이트 · 1394년

1394년 11월 26일, 태조 이성계가 개경을 떠나 한양으로 향하다

태조 3년(甲戌) 음력 10월 25일, 1394년 11월 26일. 태조 이성계가 600년 고려의 수도 개경을 뒤로하고 한양을 향해 출발했다. 이것이 한양 천도(遷都)의 공식적인 시작이다. 이듬해 경복궁이 완성되면서 한양은 조선의 심장이 되었고, 그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 되었다.

태조가 개경을 출발한 이 날로부터 정확히 6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울은 한반도의 수도 자리를 지켜왔다. 지금 우리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 바로 11월 26일인 것이다.


개경에서 한양까지는 약 170리. 수레와 말이 닷새를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태조가 도착한 한양은 아직 궁궐도 다 짓지 못한 공사판이었다. 그럼에도 태조는 한양을 선택했다. 풍수지리적으로 북악산을 등지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배산임수의 명당이었고, 나라 안의 중앙에 위치해 사방을 다스리기에 유리했다.

600년 개경의 역사가 끝나고 500년 한양의 역사가 시작된 날. 그 출발점이 1394년 11월 26일이었다. 지금의 서울이 한국의 수도가 된 역사는 이 날에서 시작된다.

한양 천도와 문화유산 — 새 수도가 남긴 역사층

태조의 한양 천도 이후 건설된 경복궁, 종묘, 사직단, 한양도성은 모두 현재 세계문화유산이거나 국가 지정 문화재다. 특히 한양도성 아래 묻힌 조선 초기의 건물 기초나 도로 흔적은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1394년 이 날 이후 서울 땅 아래에는 630년 분량의 역사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SECTION 04

조선 후기의 11월 26일 — 이황부터 정조까지

📜

조선 중·후기

1516년 ~ 1801년

1516년

왕실

단종·연산군 후손 입양 문제 논의

중종 11년(丙子). 폐위된 노산(단종)과 연산군의 후손을 세우는 문제가 신하들 사이에서 논의됐다. 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중종 조정의 역사 인식과 정통성 문제가 얽힌 민감한 사안이었다.

1558년

학문

이황(李滉), 성균관 대사성에 오름

명종 13년(戊午). 조선 최고의 유학자 이황이 성균관 대사성이 됐다. 성리학의 체계화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친 이황의 학덕이 국가의 교육 수장 자리로까지 이어진 순간이다. 퇴계 이황은 오늘날 1,000원 지폐의 인물이기도 하다.

1620년

건축유산

경덕궁 중건

광해군 12년(庚申). 경덕궁(慶德宮, 훗날 경희궁으로 개칭)이 다시 세워졌다. 임진왜란 이후 궁궐 복구의 일환으로 지어진 이 궁궐은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일부가 남아 있으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1783년

생활문화

정조 흠영일기 — 이광려의 죽음과 조문 행렬

정조 7년. 흠영일기에는 이광려(李匡呂)가 죽자 조문객이 너무 많아 사흘이 지나도록 염(殮)을 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정조는 "인간 세상에 혹 이런 경계가 있다"고 기록했다. 사람에 대한 애도가 이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록은 조선 시대 인간관계의 깊이를 보여준다.

1784년

생활문화

정조 흠영일기 — 칙사 선물과 서화(書畵) 이야기

정조 8년. 청나라 칙사에게 보내는 서화를 서리와 도화서 화원에게만 맡기는 관행을 비판하며 "이는 우리나라의 촌스럽고 누추한 면"이라 적었다. 조선 외교와 예술 문화에 대한 정조의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일기다.


SECTION 05

개화기·일제강점기의 11월 26일



🌐

개화기 · 일제강점기

1883년 ~ 1945년

1883년

외교

조영·조독 수호통상조약 동시 체결

고종 20년(癸未). 조선이 영국(朝英), 독일(朝獨)과 수호통상조약을 같은 날 동시에 체결했다. 1882년 미국·중국에 이어 유럽 열강과 맺은 조약으로, 조선이 세계 외교 무대에 본격 편입되는 과정의 일부였다. 근대 국제법 체계 속에 조선이 놓이기 시작한 역사적 장면이다.

1905년

항일

조병세·이근명 등, 대한문 앞 을사늑약 파기 요구 복합

고종 42년(乙巳). 전 의정부 의정 조병세·이근명 등이 대한문(大漢門) 앞에 엎드려 을사늑약 파기를 요구하는 복합(伏閤) 상소를 올렸다. 을사늑약 체결 사흘 후, 대신들이 목숨을 걸고 거리에 엎드려 항거한 날이다.

1922년

교육

조선 학생회 창립

대정 11년(壬戌). 김정상·홍대권·강호준 등이 조선 학생회를 창립했다. 조선 학생 대회의 후신으로 조직된 이 단체는 일제 치하에서 청년 학생들이 민족의식을 키우는 공간이 됐다.

1935년

항일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길선주 목사 타계

소화 10년(乙亥).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길선주 목사가 세상을 떠났다. 평양 대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3·1 독립선언에 서명한 후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신앙과 민족의 길을 걸었다.

1945년

문화유산

경성 시립도서관(현 남산도서관) 개관

미군정 1년(乙酉). 해방 후 경성 시립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지금의 남산도서관의 전신으로, 해방 직후 지식과 문화의 회복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SECTION 06

혈의 누 — 한국 근대소설의 탄생

오늘의 하이라이트 ·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血의 淚)』 — 1906년 11월 26일 발표

1906년 11월 26일, 이인직(李人稙)이 신소설 『혈의 누』를 발표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로 꼽히는 이 작품은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전 소설의 형식을 깨고 현실적 인물과 사건을 다룬 첫 번째 시도였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의 공식적인 '근대'가 시작된 날로 기록된다.

비록 이인직이 훗날 친일 행적으로 비판받는 인물이 되었지만, 『혈의 누』가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을 연 문학사적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이 날 이후 한국 소설은 '전'(傳)·'록'(錄)의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SECTION 07

대한민국 현대사의 11월 26일

🇰🇷

대한민국 현대사

1963년 ~ 1996년

1963년

선거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 실시, 투표율 69.8%

군사정부 이후 처음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로,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약 한 달 뒤에 실시됐다. 민정 이양을 형식적으로 완성하는 선거였으며 투표율 69.8%를 기록했다.

1968년

교육

국회 본회의, 국민교육헌장 채택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국민교육헌장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이 헌장은 이후 수십 년간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암송해야 했다. 권위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1979년

민주화

계엄사령부, YWCA 시국집회 참가자 96명 검거

10·26 이후 계엄 치하에서 함석헌 등 96명이 YWCA 결혼식으로 위장한 시국 집회와 관련해 포고령 위반으로 검거됐다. 박정희 사후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 탄압 사례다.

1983년

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기능보유자 박초월 타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의 기능보유자 박초월(1917~1983)이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17세에 전국명창대회 1등을 차지했고 한국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힘쓴 명창이었다.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1996년

유물발견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매머드 어금니 발견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매머드 어금니가 발견됐다. 한반도와 그 주변 해역이 오래전 육지와 연결된 시기에 대형 포유류가 서식했음을 보여주는 고생물학적 발견이다.


SECTION 08

씨름, 남북이 함께 세계유산이 되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 2018년

2018년 11월 26일 — 씨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남북 공동등재

2018년 11월 26일,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등재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유네스코 역사상 남북 공동등재는 씨름이 처음이자 전례 없는 사례였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한반도의 전통 겨루기 문화가 분단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이름으로 세계에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씨름은 삼국 시대 벽화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문화다. 고구려 각저총(角抵塚)의 씨름 벽화, 조선 시대 김홍도의 씨름 그림. 이 모든 역사가 2018년 오늘 하나의 유네스코 등재로 수렴됐다. 남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있어도, 씨름판의 흙냄새만은 같다는 것을 세계가 인정한 날이다.


씨름의 유네스코 등재는 단순히 스포츠 종목 하나의 국제 인증이 아니다.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몸으로 맞붙고, 놀이와 경쟁과 공동체를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세계적 공인이다.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전통 그 자체에 있다. 씨름은 지금도 경기장에서, 명절 마당에서,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살아 숨 쉰다.


SECTION 09

문화유산의 관점에서 보는 11월 26일


11월 26일에 기록된 사건들을 문화유산의 시각으로 다시 읽으면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이 날짜의 역사는 유독 '새로운 공간의 탄생'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한양 천도 — 630년 된 서울 땅의 역사층

1394년 태조가 한양으로 출발한 그 날 이후, 서울 땅 아래에는 630년치의 역사가 쌓였다. 조선 초기의 도로, 건물 기초, 생활 유물, 그리고 조선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흔적이 층층이 내려앉아 있다. 서울 도심 지하 2~3미터를 파면 조선 시대 기와편이 나오고, 더 깊이 파면 더 오래된 시대의 흔적이 나온다. 1394년의 천도가 이 모든 문화층의 기점이다.

경덕궁 중건 — 남아 있는 궁궐의 흔적

1620년 중건된 경덕궁은 현재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어 일부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훼철되었지만 숭정전(崇政殿) 등이 복원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경희궁지(慶熙宮址) 전체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궁궐 아래 지층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씨름과 판소리 — 살아 있는 무형의 유산

1983년 11월 26일 세상을 떠난 판소리 명창 박초월, 2018년 11월 26일 유네스코에 등재된 씨름. 두 사건은 무형문화유산의 두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하나는 사람이 곧 유산이라는 것, 즉 그 기능을 보유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유산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무형의 전통이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때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는 희망이다.


SECTION 10

오늘의 역사 연표 — 11월 26일 전체 일람

연도

사건

분류

1262년

미륵사·공신당 중건, 공신 초상 봉안

문화유산

1394년

한양 천도 — 태조 개경 출발 ★

역사현장

1415년

태종, 맥전 조세법 제정

행정

1444년

전라도 조운선 30여 척 침몰

해양

1453년

양성지, 조선 지도 편찬 명

지리·지도

1558년

이황, 성균관 대사성 취임

학문

1620년

경덕궁(경희궁) 중건

건축유산

1783년

정조 흠영일기 — 이광려 조문 행렬

생활문화

1784년

정조 흠영일기 — 칙사 선물·서화 비판

생활문화

1883년

조영·조독 수호통상조약 동시 체결

외교

1905년

조병세·이근명 등, 을사늑약 파기 요구 복합

항일

1906년

이인직 『혈의 누』 발표 ★

근대문학

1922년

조선 학생회 창립

교육

1935년

3·1운동 대표 길선주 목사 타계

항일

1945년

경성 시립도서관(남산도서관) 개관

문화유산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 실시

선거

1968년

국민교육헌장 국회 채택

교육

1983년

판소리 수궁가 명창 박초월 타계

무형유산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인권

2018년

씨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남북 공동등재 ★

무형유산

2020년

디지털 성착취 '박사방' 조주빈 징역 40년 선고

법률

수도 한양이 시작된 땅,그 아래에 쌓인 역사를 함께 꺼냅니다.

1394년 태조가 천도를 선택한 한양, 지금의 서울. 그 630년의 역사층을 안전하게 발굴하고 기록하는 일,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이 합니다.

1394년 오늘, 태조의 수레가 개경 문을 빠져나갔다.한양을 향해 처음으로 굴러간 그 바퀴 소리.그로부터 630년이 지난 지금,수천만 명이 그 땅 위에서 살고 있다.도시는 기억한다.첫 번째 수레바퀴 자국을,씨름판의 흙냄새를,그리고 혈의 누 첫 줄의 먹물을.11월 26일이 오면서울은 자신의 생일을 조용히 기억한다.

본 글은 역사 연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가 정리한 '역사 속 오늘' 시리즈입니다.


©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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