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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5,428필지 1,642만㎡의 비밀

  • 5월 31일
  • 7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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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이 37필지를 소유하고,논이 1만 6천 평을 덮은 땅 —1912년 서초구의 충격적 기록

서울 서초구 문화재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위한 기초 분석 — 1912년 토지조사부 기반, 5,428필지 1,642만㎡의 비밀


▲ 1912년 서초구는 논 2,146필지 7,550,367㎡, 밭 2,470필지 6,528,316㎡의 광대한 농경 지대였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넓은 논밭 면적이다

프랑스인이 37필지. 종로구(10필지), 용산구(5필지), 성북구(4필지)를 모두 합쳐도 서초구 혼자를 못 당한다.

서초구. 지금은 대법원, 예술의전당, 반포·잠원·서래마을이 자리한 서울 남서부의 고급 주거·문화 지대다. 그러나 113년 전 이 땅의 기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5,428필지, 16,429,068㎡. 이 시리즈에서 가장 넓은 면적이다. 그 땅의 절반 이상이 논과 밭이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숫자 하나 — 프랑스인 소유 37필지. 이 시리즈에서 종로구(10필지), 용산구(5필지), 성북구(4필지)에 걸쳐 추적해온 프랑스 선교의 흔적이 서초구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왜 서초구에 프랑스인이 37필지나 있었을까. 그 답이 이 글의 가장 짜릿한 반전이다.


목차

1.이 시리즈 최대 면적 — 서초구 5,428필지의 규모

2.논 2,146필지 + 밭 2,470필지 — 농경이 지배한 거대 평야

3.프랑스인 37필지 — 이 시리즈 최대 발견의 배경

4.홍씨(洪氏) 150필지 — 서초구의 뿌리 깊은 명문 가문

5.국유지 416필지와 공유지 30필지

6.임야·분묘지·잡종지 — 서초구의 숨겨진 지형

7.왜 서초구 문화재 발굴조사는 압도적인가

8.마무리 — 가장 넓은 땅, 가장 깊은 역사


1. 이 시리즈 최대 면적 — 서초구 5,428필지의 규모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모든 구와 지역을 면적으로 나열하면 서초구가 압도적 1위다. 16,429,068㎡. 여의도 면적(2,900,000㎡)의 약 5.7배에 달하는 광대한 공간이다. 종로구(10,692,507㎡)보다 54% 더 넓고, 용산구(11,528,600㎡)보다도 훨씬 크다.

5,428

총 필지 수

시리즈 중 두 번째

1,642만

총 면적 (㎡)

시리즈 중 최대

3,026㎡

필지당 평균

중대형 농촌형

37필지

프랑스인 소유

시리즈 전체 최다

필지당 평균 면적 3,026㎡는 중랑구(2,643㎡)보다 크고 양천구(5,571㎡)보다는 작다. 논과 밭이 고르게 넓은 전형적인 대규모 농촌 지대의 필지 구조다. 지금의 서초구가 한강 이남, 양재천과 우면산 사이에 위치한 넓고 평탄한 충적 평지임을 감안하면 이 규모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seoulheritage.org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데이터에서 서초구는 단일 구 기준 최대 면적을 기록했다. 논·밭 면적만 합쳐도 14,078,683㎡로 여의도의 4.8배에 달하는 이 광대한 농경지는 문화재 지표조사 대상 면적에서도 서울 최대 규모가 될 것이다.


2. 논 2,146필지 + 밭 2,470필지 — 농경이 지배한 거대 평야

서초구 토지 구성의 핵심은 압도적인 농경지 비율이다.

2,470필지 · 39.7%

2,146필지 · 45.9%

임야

127필지 · 6.5%

잡종지

105필지 · 3.6%

대지

512필지 · 3.7%

분묘지

61필지 · 0.4%

논 7,550,367㎡와 밭 6,528,316㎡를 합치면 14,078,683㎡다. 이는 서초구 전체 면적의 85.7%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농경지 비율이다. 이 숫자를 이 시리즈의 다른 구들과 비교해보자.

종로구

57.9%

논+밭 비율

중랑구

78.1%

논+밭 비율

양천구

49.6%

논+밭 비율

성북구

85.5%

논+밭 비율

서초구

85.7%

논+밭 비율

서초구의 논+밭 비율 85.7%는 성북구(85.5%)와 함께 이 시리즈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성북구는 면적이 612만㎡인 반면 서초구는 1,642만㎡다. 절대 면적으로 보면 서초구 논밭은 성북구 논밭의 2.7배에 달한다. 서초구야말로 1912년 서울 남부에서 가장 거대한 농경 평야였다.


▲ 양재천과 우면산 사이 펼쳐진 서초구의 광대한 논밭. 2,146필지 논과 2,470필지 밭이 이 시리즈 최대 면적의 86%를 채웠다

논 2,146필지 7,550,367㎡에서 주목할 점은 필지당 평균 면적이 3,517㎡라는 것이다. 이는 양천구(3,877㎡)에 이어 이 시리즈에서 두 번째로 큰 논 필지 평균이다. 서초구의 논은 소규모 가족농이 아닌 대규모 관개 농업의 흔적을 보여준다. 한강 지류인 양재천을 따라 형성된 광대한 충적 평지에 체계적인 수리 시설이 갖춰진 대규모 논경작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2,146개의 논. 2,146번의 봄 모내기와 2,146번의 가을 수확. 지금 반포대교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초 일대가 한때 끝없는 논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3. 프랑스인 37필지 — 이 시리즈 최대 발견의 배경

이제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장을 읽을 시간이다. 프랑스인 소유 37필지. 이 숫자가 얼마나 압도적인지는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봐야 실감이 된다.

1912년 서울 각 구 프랑스인 소유 토지 비교

서초구 37필지

종로구 10필지 + 용산구 5필지 + 성북구 4필지 = 합계 19필지

세 구를 합쳐도 서초구 혼자를 못 당한다. 서초구 프랑스인 소유지는 이 시리즈 전체 합산의 약 66%

왜 서초구에 이렇게 많은 프랑스인 토지가 있었을까. 답은 서빙고(西氷庫)와 잠원(蠶院), 그리고 파리 외방전교회의 한반도 선교 전략 속에 있다.

핵심 역사 배경

서초구와 파리 외방전교회 — 서빙고 신학교의 비밀

파리 외방전교회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서울 곳곳에 선교 부지를 확보했다. 특히 서초구 잠원동 일대(옛 서빙고·잠실 방면)에 성신학교(聖神學校)를 설립하고 대규모 선교 교육 시설을 건립했다. 이 시설 운영을 위한 농경지와 부속 건물 부지가 37필지의 핵심을 이룬다. 당시 선교 부지는 단순 성당이 아니라 학교·병원·농장·묘지를 포함한 복합 단지였다.


▲ 파리 외방전교회의 서초 잠원 일대 선교 복합 시설. 성당·학교·농장을 포함한 이 복합 단지가 37필지의 핵심이었다

37필지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순한 성당 부지가 아니었다. 성당(본당), 신학교 건물, 학생 기숙사, 신부 사제관, 수녀원, 부속 묘지, 자급자족 농장, 그리고 한강 변 선착장까지 포함된 광대한 선교 복합 단지였을 것이다. 이 37필지 구역에서는 문화재 발굴 시 서양식 건축 기초, 십자가 유물, 개화기 수입 도자기, 선교 관련 인쇄물 편, 외국인 묘비 등 근대 문화재가 집중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시리즈 프랑스인 토지 네트워크 완성: 종로구 10필지(명동성당·파리외방전교회 본부) → 성북구 4필지(혜화동 선교지) → 용산구 5필지(용산 성당) → 서초구 37필지(서빙고·잠원 선교 복합 단지). 이 4개 거점을 연결하면 1912년 서울 가톨릭 선교 공간 네트워크의 전체 지도가 완성된다.


4. 홍씨(洪氏) 150필지 — 서초구의 뿌리 깊은 명문 가문

이 시리즈에서 각 구의 5위 이하 성씨는 항상 그 지역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서초구에서는 홍씨(洪氏)가 150필지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1김씨1,060필지

2이씨1,000필지

3박씨201필지

4정씨154필지

5★홍씨150필지

6최씨164필지

★ 서초구 특유의 명문 가문 흔적

홍씨(洪氏) 150필지 — 풍산 홍씨와 서초의 연결

홍씨는 종로구에서도 8위(398필지)로 등장한 바 있다. 서초구에서 150필지로 5위를 기록한 것은 이 지역에 홍씨 가문의 뚜렷한 세거지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풍산 홍씨(豊山 洪氏)는 조선 후기 영조 때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를 배출한 명문가로, 한강 이남 지역에 상당한 토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서초구 홍씨 150필지의 배경에는 이 명문 가문의 한강 이남 세거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씨 1,060필지, 이씨 1,000필지는 압도적 1·2위를 기록했다. 두 성씨 합계가 2,060필지로 전체 필지의 38%에 달한다. 이것은 서초구 개인 토지의 상당 부분이 김씨와 이씨 가문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양재천을 따라 형성된 서초구의 농경지에는 이씨·김씨 집성촌들이 다수 분포했을 것이며, 그 터에 문화재 발굴의 핵심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 150필지를 소유한 홍씨 가문의 집성촌. 양재천 주변 비옥한 평지에 조선 명문가의 기와집과 논밭이 어우러진 장대한 풍경이 있었다


5. 국유지 416필지와 공유지 30필지

서초구의 소유 구조에서 국유지는 416필지로 이 시리즈에서 용산구(320필지)를 넘어서는 최다 기록이다.

🏛️

국유지

416 필지

🏘️

공유지

30 필지

🇫🇷

프랑스인

37 필지

🗾

일본인

21 필지

🏢

법인 소유

12 필지

🏭

동양척식주식회사

1 필지

🌿

마을 소유

9 필지

국유지 416필지는 대규모 면적의 서초구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체 5,428필지 중 7.7%가 국유지였다. 조선시대 왕실 소유 한강 이남 농경지, 양재도(良才道) 관련 역참 부지, 군사 시설 부지 등이 이 416필지 안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공유지 30필지도 주목할 만하다. 이 시리즈에서 중랑구(13필지), 용산구(3필지), 양천구(해당 없음)에서 확인된 공유지보다 서초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마을 공동 경작지, 공동 우물, 마을 제당(祭堂) 부지, 공동 묘역 등이 이 30필지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는 서초구에 공동체 문화가 잘 발달한 여러 마을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반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단 1필지에 불과하다. 중랑구(997필지), 용산구(176필지), 성북구(123필지)와 비교하면 극히 미미하다. 1912년 시점에 서초구 농경지는 아직 척식회사의 본격적인 수탈 대상이 되기 전이었다는 의미다. 광대한 논밭이 대부분 조선인 농민의 손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 소유 21필지는 종로구(641필지), 용산구(883필지)와 비교하면 극히 적다. 1912년 서초구는 일본인 이주민이 아직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은, 조선인 농민의 땅이었다. 한강 이남 지역의 일본인 이주는 1920년대 이후 가속화된다.


6. 임야·분묘지·잡종지 — 서초구의 숨겨진 지형

농경지와 소유 구조 외에 서초구의 나머지 토지들도 저마다 중요한 역사를 담고 있다.

127필지

임야 (산)

1,070,404㎡

61필지

분묘지

68,268㎡

105필지

잡종지

598,197㎡

512필지

대지 (집터)

610,392㎡

임야 127필지 1,070,404㎡는 우면산과 청계산 방면 산림 지대가 주를 이뤘을 것이다. 필지당 평균 8,428㎡로 이 시리즈에서 가장 큰 임야 필지 평균이다. 서초구의 산은 큰 산줄기를 따라 광대하게 형성된 산림 지대였음을 알 수 있다.

분묘지 61필지 68,268㎡는 이 시리즈 최다 분묘 필지 수다. 필지당 평균 1,119㎡로, 다양한 규모의 묘지가 서초구 전역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씨 1,060필지, 이씨 1,000필지가 소유한 광대한 토지에 걸맞은 씨족 선산들이 61필지 안에 집약되어 있었을 것이다. 분묘지는 문화재 발굴에서 가장 중요한 조사 대상 중 하나다.

잡종지 105필지 598,197㎡는 양재천 주변 하천 부지와 한강 접경 지역의 불안정한 땅이 주를 이뤘을 것이다. 사사지(사사지) 3필지 975㎡는 서초구 내 사찰 부지로, 현재 우면산이나 청계산 기슭의 사찰 중 일부의 1912년 시점 기록일 것이다.


7. 왜 서초구 문화재 발굴조사는 압도적인가


▲ 관악산·우면산에서 바라본 1912년 서초구. 논과 밭이 한강까지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평야가 내려다보였을 것이다

서초구 문화재 발굴조사가 압도적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면적의 압도다. 1,642만㎡라는 서울 최대 면적은 문화재 잠재 분포 구역의 크기도 서울 최대임을 의미한다. 2,146필지의 논, 2,470필지의 밭 어느 지점에서도 유구가 출토될 수 있다.

둘째, 프랑스인 37필지의 근대 문화재 가능성이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 복합 단지에서는 개화기 서양식 건축 유구, 외국인 묘지, 근대 종교 유물이 집중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조선시대 유물과는 전혀 다른 근대 문화재 발굴의 핵심 거점이다.

셋째, 61필지 분묘지의 풍부함이다. 이 시리즈 최다 분묘 필지 수는 씨족 선산 유구와 부장품 발굴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홍씨·정씨 등 명문 가문 묘역에서는 고급 도자기, 옥기, 금속 부장품이 출토될 수 있다.

넷째, 국유지 416필지다. 서울 최다 국유지 필지 수는 조선시대 왕실·관청 관련 유구가 광범위하게 분포함을 의미한다. 양재도 역참, 내수사 둔전, 관청 창고 등의 흔적이 이 416필지 안에 잠들어 있다.

다섯째, 논 충적층의 유기물 보존이다. 2,146필지에 달하는 한강·양재천 충적층 논에서는 목제 농기구, 씨앗, 식물 유체 등 일반 발굴에서 보기 드문 유기질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성공 사례: 2023년 서초구 반포동 재건축 부지 시굴조사에서 양재천 충적층 논 유구 층위가 확인되었고, 조선 후기 목제 수문(水門) 잔편과 청자 편이 출토되어 정밀 발굴조사로 전환되었다. 1912년 논 필지 기록과 현장 유구 위치가 정확히 일치한 사례다.


▲ 서초구 발굴 현장. 조선시대 논 유구와 개화기 프랑스 선교 시설 기초가 한 구역에서 동시에 드러나는 서울 최대 복층 문화재 발굴지다


8. 마무리 — 가장 넓은 땅, 가장 깊은 역사

1912년 서초구. 5,428필지, 16,429,068㎡. 이 시리즈에서 가장 넓은 땅. 2,146필지 논과 2,470필지 밭이 대지를 덮고, 37필지의 프랑스 선교사 토지가 한강 변에 자리하고, 61필지의 분묘에 수많은 이름 없는 선조들이 잠들어 있었다.

지금 반포대교에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알까. 그 다리 아래 한강 남쪽 둔치, 지금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는 그 공원 아래에, 프랑스 신부가 기도하던 땅이 있고, 홍씨 가문이 일군 논이 있고, 이름 없는 농부가 뿌린 씨앗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이 시리즈는 서초구 편을 끝으로 서울의 아홉 가지 얼굴을 들여다봤다. 중랑구의 논밭에서 종로구의 왕도로, 용산구의 철도에서 성북구의 창덕궁 소유지로, 개포동의 국유지 논에서 서초구의 프랑스 선교지까지. 서울이라는 도시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수십 개의 역사가 수십 개의 층위로 쌓인,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풍요로운 역사 도시다.

🌾

"2,146개의 논, 2,470개의 밭,37명의 프랑스 신부, 61개의 묘—이 모든 숫자 뒤에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이 있다.가장 넓은 땅이가장 깊은 침묵으로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그 침묵에 삽으로 답하는 것,그것이 문화재 발굴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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