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암사동, 너는 과연 100년 전의 암사동을 상상해본 적 있어?
- 서울 HI
- 5월 24일
- 3분 분량
목차
프롤로그 - 강동구 암사동, 1912년의 비밀스런 초대
드넓은 논에서 만나는 풍요의 이야기
사람 사는 공간, 49필지의 집터
역사와 함께 숨 쉬는 암사동의 작은 무덤들
신비로운 숲의 이야기, 암사동의 산과 임야
마을을 가득 채운 밭과 사람들의 삶
암사동 성씨의 이야기 - 땅에서 엿보는 사람들의 흔적
국가가 관리한 15필지의 국유지, 그 숨겨진 역사
암사동의 발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화유산의 가치
에필로그 - 과거에서 미래로, 암사동의 시간여행
강동구 암사동, 너는 과연 100년 전의 암사동을 상상해본 적 있어?
오늘 내가 초대할 곳은 바로 지금의 강동구 암사동이 아닌, 1912년의 암사동이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 중 하나인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알고 있지?
그 유적지가 위치한 암사동의 1912년은 과연 어땠을까.
드라마보다 더 흥미롭고, 영화보다 더 현실감 넘치는 과거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자!

먼저 1912년 암사동을 숫자로 보면 653필지에 면적은 무려 2,532,077㎡나 되었대.
이 넓은 땅에는 논과 밭, 산, 집, 그리고 조상들의 무덤까지 다양한 모습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지.
드넓은 논에서 만나는 풍요의 이야기
1912년 암사동을 가득 채운 논은 무려 171필지, 총 623,123㎡였어.
이 논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
봄이면 사람들은 물을 대고, 여름이면 초록빛 벼가 자라나며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수확의 기쁨을 선물했지.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바뀐 곳도 많지만, 1912년의 암사동 논은 풍요와 생명의 상징이었어.
어쩌면 이 논에서 벼를 심던 사람들의 흔적이 아직 암사동 땅 속에 잠들어 있을지도 몰라.
사람 사는 공간, 49필지의 집터
사람들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집은 총 49필지, 79,230㎡였어.
지금처럼 높이 솟은 아파트나 빌라는 없었지만, 마을 곳곳에 초가지붕과 기와집이 어우러져 있었겠지?
여기서는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웃고 울기도 했을 거야.
지금 우리가 생활하는 아파트의 작은 방처럼, 그 시대에도 집은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했겠지.
역사와 함께 숨 쉬는 암사동의 작은 무덤들
무덤이 많지는 않았지만, 암사동에는 11필지의 무덤이 있었고, 그 면적은 6,033㎡였어.
이 무덤들은 단순히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던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야.
1912년에도 조상들에 대한 존경과 예의가 그대로 담겨 있었겠지.
신비로운 숲의 이야기, 암사동의 산과 임야
암사동에는 36필지, 405,777㎡의 임야가 있었어.
숲은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땔감과 목재를 제공하는 중요한 자원이었지.
숲 속에서는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어른들은 나무를 하고 약초를 캐기도 했을 거야.
지금의 암사동에 숲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이야기 속 숲은 여전히 그리움과 향수를 자극하는 장소로 남아있어.
마을을 가득 채운 밭과 사람들의 삶
암사동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했던 건 바로 386필지, 1,417,913㎡의 밭이었어.
이 밭들은 다양한 작물을 키우며 암사동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했지.
옥수수와 콩, 무와 배추가 자라났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수고가 이 땅을 가득 채웠을 거야.
암사동 성씨의 이야기 - 땅에서 엿보는 사람들의 흔적
1912년 암사동을 살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던 성씨는 바로 ‘이씨’였어.
이씨는 194필지나 되는 땅을 소유했고, 그 뒤를 이어 김씨가 101필지, 양씨가 93필지의 땅을 가지고 있었지.
이 땅들은 각 집안의 역사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지금 암사동을 걷다 보면 그때의 성씨들이 심은 나무나 세운 집터가 아직도 숨어있을지 몰라.
국가가 관리한 15필지의 국유지, 그 숨겨진 역사
암사동에는 국가가 관리한 15필지의 국유지가 있었어.
국유지는 보통 마을의 공동체를 위해 사용되거나, 관리가 어려운 땅들이었지.
어쩌면 암사동 선사유적지로 발굴된 곳도 과거 국유지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어.
이 국유지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유적으로 나타났을지 궁금하지 않아?
암사동의 발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화유산의 가치
이제 암사동은 단순한 주거지역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특히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서, 서울의 문화유적 발굴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암사동을 탐험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찾고 싶은 사람들은 문화유적 시굴조사나 표본조사, 발굴조사 같은 해시태그로 이곳을 다시 바라보면 좋을 거야.
에필로그 - 과거에서 미래로, 암사동의 시간여행
과거를 이해하면 현재가 달라 보이고, 현재를 잘 살피면 더 좋은 미래를 그릴 수 있어.
암사동의 1912년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야.
다음엔 직접 암사동을 방문해서 그 땅에 깃든 이야기를 더 깊이 만나보는 건 어때?
과거를 걷는 것은 늘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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