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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서울 전체 편 — 소유 기록 총람1912년 서울의 땅은누구의 것이었을까? 123,251필지 대장에 남은 주인들의 기록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 7월 13일
  • 8분 분량

1912년 토지조사 기록 시리즈 · 서울 전체 편 — 소유 기록 총람

1912년 서울의 땅은누구의 것이었을까?

123,251필지 대장에 남은 주인들의 기록

문화유산 시굴조사 · 표본조사 · 지표조사 · 발굴조사를 위한 기초조사

123,251필지

총면적 277,227,048㎡

국유지 7,883필지

일본인+동척 9,708필지

소유 국적 9개국


AI 요약 브리핑

1912년 서울 전체에는 123,251필지, 총 277,227,048㎡의 토지가 12개 지목으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소유 기록을 보면 김씨 21,112필지, 이씨 19,730필지가 최상위였고, 국유지 7,883필지(6.4%), 일본인 5,904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 3,804필지, 창덕궁 188필지가 뒤를 이었으며, 미국·프랑스·중국·독일·영국·러시아·덴마크·그리스 등 외국인 소유 토지가 총 6,627필지에 달했습니다. 서울의 땅주인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총람은 문화유산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핵심 기초자료가 됩니다.


목차

  1. 12만 개의 이름이 적힌 책

  2. 다시 펼치는 1912년 서울 — 12지목 전체 현황

  3. 김씨 2만, 이씨 2만 — 성씨 순위표와 숫자의 함정

  4. 국유지 7,883필지 — 이 시리즈가 걸어온 길의 뿌리

  5. 일본인 5,904필지와 동양척식 3,804필지 — 대장의 그림자

  6. 아홉 나라의 이름 — 그리스인의 2필지까지

  7. 창덕궁 188필지 — 왕실과 마을과 공동체의 몫

  8. 숫자로 보는 소유의 지도 — 표와 그래프

  9. 문화유산 조사 4단계, 왜 이 기록이 출발점인가요?

  10. 발굴이 역사를 바꾼 세 가지 장면

  11. 자주 묻는 질문


1. 12만 개의 이름이 적힌 책

1912년, 서울의 모든 땅에는 주인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정확히 123,251번.

토지조사사업의 대장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책입니다. 한쪽 면에는 땅의 얼굴, 즉 논인지 밭인지 집터인지를 적는 지목란이 있고, 다른 쪽 면에는 사람의 얼굴, 즉 이 땅이 누구의 것인지를 적는 소유자란이 있죠.

이 시리즈는 앞서 서울 전체 편에서 첫 번째 얼굴을 읽었습니다. 123,251필지, 277,227,048㎡, 12개의 지목. 오늘은 그 대장을 뒤집어 두 번째 얼굴을 읽습니다. 12만 번 넘게 찍힌 도장들. 그 인주 자국의 주인들입니다.

거기에는 예상 가능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김씨 2만 필지, 이씨 2만 필지.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는 이름들도 있습니다. 창덕궁, 동양척식주식회사, 프랑스인, 러시아인, 그리고 단 2필지의 주인이었던 그리스인까지.

1912년의 서울은 이미 세계가 드나드는 도시였고, 동시에 나라를 잃은 지 2년째의 도시였습니다. 그 빛과 그림자가 소유자란에 고스란히 찍혀 있습니다.

"지목란이 땅의 생김새를 말한다면, 소유자란은 시대의 생김새를 말합니다. 123,251개의 도장 자국은 1912년 서울의 가장 정직한 초상화입니다."



2. 다시 펼치는 1912년 서울 — 12지목 전체 현황

전체 규모는 얼마나 되었나요?

1912년 서울에는 총 123,251필지, 277,227,048㎡의 토지가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약 8,390만 평. 여의도공원 1,200개를 이어 붙인 크기입니다.

지목은 12종. 밭이 45,294필지 110,860,013㎡로 전체 면적의 40.0%를 차지해 1위, 논이 25,326필지 97,936,707㎡로 35.3%를 차지해 2위입니다. 농지 둘을 합치면 서울 땅의 4분의 3이 논밭이었다는 뜻이죠. 대지 47,185필지(8.9%), 잡종지 1,535필지(8.0%), 임야 2,333필지(5.5%)가 뒤를 잇고, 철도용지·분묘지·사사지·수도용지·지소·도로, 그리고 단 1필지의 공원이 나머지를 채웁니다.

📌 데이터 검증 노트 ① — 논 면적 표기

원자료의 논 면적은 '9,793,6701㎡'로 쉼표 위치가 어긋난 형태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12개 지목의 필지 수 합계가 총계 123,251필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점을 확인한 뒤, 총면적 277,227,048㎡에서 나머지 11개 지목의 면적을 뺀 역산값 97,936,707㎡를 논 면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원문의 숫자열(97,936,701)과는 6㎡ 차이가 있으며, 이는 평(坪)→㎡ 환산 반올림 누적에 따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목

필지 수

면적(㎡)

면적 비율

밭(전)

45,294

110,860,013

40.0%

논(답)

25,326

97,936,707

35.3%

대지

47,185

24,755,593

8.9%

잡종지

1,535

22,120,291

8.0%

임야

2,333

15,346,611

5.5%

철도용지

17

2,663,770

1.0%

분묘지

1,133

2,588,616

0.9%

사사지

124

417,839

0.15%

수도용지

15

256,186

0.09%

지소

94

234,371

0.08%

도로

194

36,033

0.01%

공원

1

11,018

0.004%

합계

123,251

277,227,048

100%

※ 12개 지목의 필지 수 합계는 원자료 총계 123,251필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논 면적은 데이터 검증 노트 ①의 역산 기준입니다.



3. 김씨 2만, 이씨 2만 — 성씨 순위표와 숫자의 함정

어떤 성씨가 가장 많은 땅을 가졌나요?

소유자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은 역시 김씨입니다. 21,112필지. 서울 전체 필지 여섯 개 중 하나에 김씨의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2위는 이씨 19,730필지. 3위는 박씨로, 원자료의 표기를 검증해 6,540필지로 정리했습니다.

📌 데이터 검증 노트 ② — 박씨 필지 수

원자료에는 박씨가 '65,540필지'로 기재되어 있으나, 이 값을 적용하면 성씨 소유 합계만으로 서울 전체 필지 수(123,251필지)를 초과해 산술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김씨(21,112)·이씨(19,730)에 이어지는 순위 구조와 전체 정합성을 고려할 때 '6,540필지'의 오기(숫자 5 중복)로 판단해 정정했습니다. 정정값 적용 시 명시된 성씨·기관·외국인 소유 합계는 99,245필지로, 잔여 약 24,006필지가 그 밖의 성씨들의 몫이 되어 자연스럽게 정합합니다. 아울러 원자료의 '최시'는 '최씨'의, 3번·25번 문항의 '192년'은 '1912년'의 오탈자로 보고 바로잡았습니다. 유씨(1,910필지)는 원자료의 내림차순 나열에서 위치가 어긋나 있으나 수치는 원문대로 두었습니다.

최씨 5,190필지, 조씨 3,567필지, 정씨 3,302필지, 윤씨 2,779필지, 한씨 2,527필지, 임씨 2,021필지, 강씨 1,996필지가 그 뒤를 잇고, 유씨 1,910필지, 홍씨 1,703필지, 전씨 1,666필지, 신씨 1,610필지, 안씨 1,496필지, 오씨 1,459필지, 고씨 1,006필지까지 천 필지 이상의 성씨가 열일곱에 이릅니다.

한국인의 성씨 분포 그대로입니다. 김·이·박·최·정. 오늘날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쓰는 다섯 개의 성이, 백 년 전 서울의 땅문서에서도 같은 순서로 줄을 서 있습니다. 대장은 통계청보다 먼저 존재한 인구조사였던 셈이죠.

◆ ◆ ◆


4. 국유지 7,883필지 — 이 시리즈가 걸어온 길의 뿌리

국유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1912년 서울에는 국유지 7,883필지가 있었습니다. 전체 필지의 6.4%. 개인이 아닌 나라의 이름으로 도장이 찍힌 땅들입니다.

이 시리즈의 뿌리

7,883필지

1912년 서울 전체 국유지 · 전체 필지의 6.4%


본 시리즈가 동네별로 추적해 온 바로 그 땅들의 총합

낯익은 숫자죠. 이 시리즈가 가양동에서 27필지를, 번동에서 10필지를, 강일동에서 7필지를, 개포동에서 18필지를 세어 온 그 국유지들이 모두 이 7,883필지 안에 들어 있습니다. 동네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던 나라 땅들. 관아 터였고, 역둔토였고, 향교였고, 강변의 모래벌이었던 땅들의 총합이 여기 있습니다.

국유지가 발굴조사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관영 시설, 왕실 재산, 공공 농지의 계보를 잇는 땅이기에 건물지와 제의 유구, 옛 도로와 수리 시설이 확인될 확률이 높은 최우선 조사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7,883개의 단서. 이 시리즈는 그 단서들을 한 동네씩 읽어 가는 중입니다.



5. 일본인 5,904필지와 동양척식 3,804필지 — 대장의 그림자

일본인 소유의 토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1912년 서울에는 일본인 소유 토지가 5,904필지 있었습니다. 여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3,804필지를 더하면 9,708필지. 서울 전체 필지의 7.9%입니다.

국권을 잃은 지 겨우 2년. 그런데 일본인과 동척의 몫을 합치면 이미 국유지 7,883필지를 넘어섭니다. 나라의 땅보다 침탈자의 땅이 더 많아진 서울. 이 역전이야말로 1912년 대장이 기록한 가장 서늘한 숫자입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설립된 국책 회사로, 토지 매수와 일본인 이민 알선을 통해 조선의 농지를 잠식해 간 식민 지배의 첨병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동네별 기록에서도 동척은 반복해서 나타났죠. 신당동에서 102필지, 공릉동에서 93필지, 망우동에서 47필지. 그 조각들이 모여 3,804필지라는 총합이 됩니다.

이 숫자들을 굳이 기록하고 다시 읽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대장의 그림자까지 온전히 읽어야 그 시대의 초상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 ◆ ◆


6. 아홉 나라의 이름 — 그리스인의 2필지까지

어떤 나라 사람들이 서울 땅을 가지고 있었나요?

1912년 서울의 대장에는 아홉 나라 국적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일본인 5,904필지를 제외하고도, 중국인 363필지, 프랑스인 186필지, 미국인 124필지, 독일인 27필지, 영국인 13필지, 러시아인 5필지, 덴마크인 3필지, 그리고 그리스인 2필지.

개항 이후 30여 년, 서울에 들어온 세계의 흔적들입니다. 프랑스인의 필지들 뒤에는 명동성당을 세운 천주교 선교회가, 미국인의 필지들 뒤에는 학교와 병원을 세운 개신교 선교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인 363필지는 임오군란 이후 형성된 화교 상권의 기록이고, 러시아인과 독일인의 필지들은 공사관과 상사들이 남긴 자취겠죠.

그리고 그리스인 2필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뜻밖의 이름입니다. 에게해에서 온 누군가가 극동의 도시 서울에 두 뙈기 땅의 주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대장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1912년의 서울이 이미 아홉 나라의 이름이 공존하는 국제 도시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7. 창덕궁 188필지 — 왕실과 마을과 공동체의 몫

창덕궁 소유의 토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대장에는 창덕궁의 이름으로 등록된 토지가 188필지 있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뒤 이왕가로 격하된 조선 왕실의 재산이 창덕궁이라는 이름 아래 정리된 것입니다. 오백 년 왕조의 유산이 대장 위에서는 188개의 필지 번호로 남았습니다.

공동체의 몫도 있었습니다. 마을 소유의 토지 304필지. 동네 사람들이 함께 쓰던 동답과 동산, 서낭당 터와 마을 숲이었을 땅들입니다. 공유지 143필지와 법인 소유 682필지도 근대적 소유 형태의 등장을 보여 주죠.

개인도 국가도 아닌 이 땅들은 발굴조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왕실 소유지에서는 궁방과 능원 관련 시설이, 마을 소유지에서는 제당과 공동 우물 같은 민속 유구가 확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장의 소유자란은 그 자체로 유구의 예고편인 셈입니다.

◆ ◆ ◆


8. 숫자로 보는 소유의 지도 — 표와 그래프

소유 구분

필지 수

비고

김씨

21,112

성씨 1위

이씨

19,730

성씨 2위

국유지

7,883

전체의 6.4% · 본 시리즈 추적 대상

박씨

6,540

검증 노트 ② 정정값

일본인

5,904

전체의 4.8%

최씨

5,190

성씨 4위

동양척식주식회사

3,804

전체의 3.1%

조씨·정씨·윤씨 등

각 3,567~1,006

천 필지 이상 성씨 17개

법인

682

근대적 소유 형태

중국인

363

화교 상권

마을 소유

304

동답·동산 등 공동체 재산

창덕궁

188

구 왕실 재산

프랑스인

186

선교회 계통 추정

공유지

143

미국인

124

선교·교육 계통 추정

독일·영국·러시아·덴마크·그리스인

27 / 13 / 5 / 3 / 2

합계 50필지

※ 소유 구분은 원자료에 필지 수만 기재되어 있어 면적 통계는 제외했습니다. 박씨 필지 수와 오탈자 정정 내역은 3장의 데이터 검증 노트 ②를 참고하세요.

주요 소유 구분 필지 수 비교 (김씨 = 100% 기준)

김씨21,112필지

이씨19,730필지

국유지7,883필지

박씨(정정값)6,540필지

일본인5,904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3,804필지

외국인 기타 8개국723필지

창덕궁188필지

🏆 시리즈 기록 노트 — 서울 전체 편

이 총람으로 시리즈의 동네별 기록들이 하나의 지도 위에 놓입니다. 국유지 7,883필지는 본 시리즈가 추적해 온 모든 동네 국유지의 모집단이며, 동양척식 3,804필지는 신당동(102필지)·공릉동(93필지)·망우동(47필지) 등 동네별 동척 기록의 총합입니다. 일본인+동척 9,708필지가 국유지를 앞선 역전 구도, 그리고 시리즈에서 처음 확인되는 그리스인 2필지·덴마크인 3필지 등 9개국 소유 구도는 서울 전체 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록입니다.

◆ ◆ ◆


9. 문화유산 조사 4단계, 왜 이 기록이 출발점인가요?

조사는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우리나라의 매장유산 조사는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과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에 따라 네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째, 지표조사. 땅을 파지 않고 문헌과 지형, 지표의 흔적으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판단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에서는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둘째, 표본조사. 대상지의 일부를 표본으로 삼아 시험 확인합니다. 셋째, 시굴조사. 좁고 긴 트렌치를 넣어 유구의 존재와 분포 범위를 확인합니다. 넷째, 발굴조사. 유구가 확인된 구역을 층위별로 정밀하게 조사하고 기록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소유 기록이 왜 조사에 중요한가요?

지목이 땅의 쓰임을 알려 준다면, 소유는 땅의 계보를 알려 줍니다. 국유지라면 관영 시설의 유구를, 창덕궁 소유지라면 왕실 관련 시설을, 마을 소유지라면 제당과 공동 시설을, 사사지와 선교회 계통 토지라면 종교 유구를 예상할 수 있죠. 백 년 전 도장 하나가 오늘의 트렌치 위치를 결정하는 단서가 됩니다.



10. 발굴이 역사를 바꾼 세 가지 장면

기록에서 출발한 조사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서울은 이미 세 번 증명했습니다.

첫 번째, 동대문운동장. 낡은 경기장을 헐어 공원을 만들려던 자리에서 조선의 군사 훈련 기관 하도감 터와 성곽 유구가 통째로 드러났습니다. 설계가 전면 수정되었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유적을 품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두 번째, 송파구 풍납동.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조사가 한성백제 왕성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교과서의 백제사가 다시 쓰였고, 풍납토성은 한국 고대사 연구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종로 인사동. 2021년 호텔 신축 부지의 발굴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항아리째 출토되었습니다. 세종 시대 인쇄 기술의 실물이 무더기로 확인된, 세계 인쇄사가 주목한 발견이었습니다.

세 곳 모두 123,251필지 가운데 한 조각이었습니다. 남은 12만여 필지 어디에서 네 번째 장면이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장면 역시 오래된 장부 한 줄을 읽는 데서 시작되리라는 것입니다.



11. 자주 묻는 질문

Q. 1912년 서울의 전체 토지 규모는 얼마였나요?

총 123,251필지, 277,227,048㎡였습니다. 12개 지목 가운데 밭(40.0%)과 논(35.3%)이 전체 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했습니다.

Q. 어떤 성씨가 가장 많은 땅을 소유했나요?

김씨가 21,112필지로 1위, 이씨가 19,730필지로 2위였습니다. 박씨는 원자료 검증 결과 6,540필지로 정리했으며, 천 필지 이상을 소유한 성씨가 열일곱에 이릅니다.

Q. 1912년 서울의 국유지는 얼마나 있었나요?

7,883필지로 전체의 6.4%였습니다. 본 시리즈가 동네별로 추적해 온 국유지들의 총합에 해당합니다.

Q. 일본인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일본인 5,904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 3,804필지로 합계 9,708필지(전체의 7.9%)였습니다. 국권 상실 2년 만에 국유지(7,883필지)를 넘어선 규모입니다.

Q. 이 자료는 문화유산 조사에 어떻게 활용되나요?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에 따른 지표조사·표본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문헌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소유 기록은 관영 시설, 왕실 재산, 종교 시설, 공동체 유구 등 지하 유구의 성격을 예측하는 핵심 단서가 됩니다.


한 줄 결론. 1912년 서울 123,251필지 277,227,048㎡의 소유자란에는 김씨 21,112필지부터 그리스인 2필지까지 아홉 나라의 이름이 찍혀 있었으며, 국유지 7,883필지와 그것을 넘어선 일본인·동척 9,708필지가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기록한 대장이었습니다.

자료 기준 : 1912년 토지조사 기록(서울 전체 지목·소유 현황)


분석 대상 : 1912년 서울 전역


분석 항목 : 필지 수, 지목, 면적, 소유 구분(성씨·국유·기관·외국인 등)


관련 법령 :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법률 제20742호), 국가유산청고시 제2026-2호


유의 사항 : 논 면적은 총면적 정합 기준 97,936,707㎡로 역산 정리했으며(원문 쉼표 오기), 박씨 필지 수는 산술 정합성에 따라 6,540필지로 정정했습니다. 세부 근거는 본문 데이터 검증 노트 ①·②에 명시했습니다.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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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 번의 도장이 찍히는 동안


서울은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김씨의 논 곁에 이씨의 밭,


그 곁에 나라의 땅,


그리고 어느새 그 나라의 땅보다


커져 버린 남의 나라 이름들.



대장은 울지 않습니다.


다만 적을 뿐입니다.


울음도 분노도 없이 적힌 숫자가


백 년 뒤에 이토록 크게 우는 것을,


그때의 서기는 알았을까요.



이제 우리가 그 책장을 넘깁니다.


한 필지씩, 한 동네씩,


찍힌 도장마다 이름을 불러 주면서.



기록된 것은 언젠가 읽히고,


읽힌 것은 끝내 기억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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