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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중랑구 상봉동의 숨은 땅을 열어보니: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가 밝혀낸 잊힌 시간들

  • 2025년 11월 21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4일

문화재 지표조사 · 문화재 발굴조사 · 서울 중랑구 상봉동 역사 · 발굴조사원 · 유적발굴단 · 동양척식주식회사


"이 땅이 처음 열렸을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솟아올랐다."


서울 중랑구 상봉동. 상봉역 일대를 지나가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밟고 있는 땅 아래, 1912년의 상봉동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논 201필지 654,918㎡, 밭 191필지 259,660㎡, 이씨·황씨·최씨의 삶이 쌓여 있는 대지 73필지.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 17필지의 그림자.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았던 논과 밭의 경계선이 흐릿하게 남아 있고, 지금의 도로를 비켜가며 기묘하게 이어지는 그 선은 백 년 전 누군가의 삶과 숨결을 말없이 품고 있다.

이 글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의 1912년 상봉동 토지 기록을 바탕으로, 잊힌 땅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와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의 실제 현장을 연결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당신 마음속에도 작은 발굴이 일어날 것이다.


목차

1잊힌 땅이 말을 걸어온 순간

21912년 상봉동의 실체, 논·밭·대지가 말해주는 풍경

3사람들의 이름이 남긴 흔적, 이씨·황씨·최씨의 땅

4동양척식주식회사가 남긴 그림자, 그리고 마을의 저항

5지금 왜 상봉동의 1912년을 발굴하는가

6문화재 발굴의 실제 현장, 지표·시굴·표본·발굴조사가 움직일 때

7발굴조사원의 하루, 땅속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사람들

8상봉동에서 가능했던 성공 사례 한 편

9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의 가치

10읽는 이를 위한 마지막 장면


201

논 필지

654,918㎡

논 면적

191

밭 필지

17

동양척식 소유

63

이씨 필지

5

분묘 필지


1. 잊힌 땅이 말을 걸어온 순간



상봉동의 오래된 지적도 위에 현재 지도를 겹쳐보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서울의 빽빽한 아파트 숲 속 어딘가에 1912년의 상봉동이 여전히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았던 논과 밭의 경계선이 흐릿하게 남아 있고, 지금의 도로를 비켜가며 기묘하게 이어지는 그 선은 백 년 전 누군가의 삶, 숨결, 소유와 갈등을 말없이 품고 있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가 중랑구 상봉동을 들여다본 이유는 이 감각에 있다. 기록이 있는 곳에는 발굴이 가능하고, 발굴이 가능한 곳에는 역사가 되살아난다. 상봉동의 1912년 기록은 그 역사를 되살릴 수 있는 정밀한 나침반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2. 1912년 상봉동의 실체, 논·밭·대지가 말해주는 풍경



1912년 상봉동의 땅을 다시 펼쳐보니 가장 먼저 시야를 가득 메운 건 예상보다 훨씬 광활한 논이었다. 무려 201필지 654,918㎡. 지금의 상봉역 일대를 지나가며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아래에는 백 년 전 농부들의 땀, 모내기의 파문, 논둑의 질감이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 이 시리즈에서 함께 들여다본 다른 중랑구 동네인 신내동(235필지 논 833,002㎡)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상봉동의 논 654,918㎡도 중랑구 농경 문화의 핵심을 이루던 중요한 공간이었다.

밭은 191필지 259,660㎡로 논 바로 뒤를 이었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김 매고 가을이면 수확하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밭을 가르는 경계가 비교적 곧게 나 있었다는 것은 공동체의 규칙이 잘 잡혀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지는 73필지 45,907㎡로, 사람들이 실제로 살던 자리였다. 작은 초가집들이 나란히 서 있었을 것이고, 그 앞 항아리마다 장맛이 달랐을 것이다.

임야 8필지 48,231㎡, 분묘지 5필지 2,343㎡, 그리고 작은 연못 지소 1필지 56㎡가 이 풍경을 완성했다. 분묘지 5필지는 특히 눈여겨봐야 한다. 어느 집안의 조상들이 묻혀 있었고, 매년 제삿날이 되면 상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곳을 오갔을 것이다. 발굴조사에서 분묘지 인근은 항상 가장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구역이다.

201필지

654,918㎡

191필지

259,660㎡

대지

73필지

45,907㎡

임야

8필지

48,231㎡

분묘

5필지

2,343㎡

지소(연못)

1필지

56㎡


3. 사람들의 이름이 남긴 흔적, 이씨·황씨·최씨의 땅



1912년 상봉동의 땅을 보면 땅의 경계선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성씨다. 이씨 63필지, 황씨 53필지, 최씨 46필지, 김씨 37필지, 박씨 30필지. 이 성씨들은 상봉동이라는 공간에서 각자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황씨 53필지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황씨가 두 번째로 많은 필지를 보유한 성씨로 등장한 것은 상봉동이 처음이다. 황씨 집안이 상봉동에서 강한 지역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발굴조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황씨 53필지가 집중된 구역을 추적하면 그 가문의 생활 유구와 공동 시설 흔적이 한층 풍부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토지 소유 현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가족의 규모, 마을 내 영향력, 결혼을 통한 가문의 연결, 오랜 시간 동안 뿌리를 내린 공동체의 모습을 말해준다. 이씨 63필지와 황씨 53필지가 나란히 자리 잡은 상봉동은 두 큰 가문이 어깨를 맞대며 이 들판을 지켜온 공간이었다.

63

이씨 필지

53

황씨 필지

46

최씨 필지

37

김씨 필지

30

박씨 필지

17

동양척식

3

마을 공유지


4.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남긴 그림자, 그리고 마을의 저항

1912년 상봉동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토지가 17필지나 있었다. 신내동(72필지)이나 중계동(30필지)에 비하면 적은 수치이지만, 이씨·황씨·최씨가 지켜온 상봉동 한복판에 17필지가 식민지 수탈 기관의 이름 아래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토록 적지 않은 수의 필지가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 침탈 흔적이라는 사실은, 지금 다시 보면 더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기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마을 소유의 공유지가 3필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동양척식 17필지의 거대한 그림자 앞에서 마을 사람들이 3필지를 공동으로 지켰다는 것, 이것이 작은 저항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그 당시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땅을 지킨다는 것은 곧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동양척식주식회사 17필지(수탈) vs 마을 공유지 3필지(공동 저항). 이 대비가 1912년 상봉동의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발굴조사에서 공유지 3필지 구역은 마을 공동 우물, 제당, 공동 창고 유구 출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점으로 분류된다.


5. 지금 왜 상봉동의 1912년을 발굴하는가

한 세기가 흘렀는데 왜 지금 다시 이 땅을 들여다보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땅은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땅을 열어 역사를 다시 불러내는 과정이 바로 문화재 발굴이다. 도시 개발이 빨라질수록 그 속에서 잊힌 시간을 꺼내는 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문화재 발굴 과정은 단순히 삽을 들고 유적을 파는 일이 아니다. 과거라는 이름의 거대한 책을 천천히 펼치는 작업이다.

상봉역 일대의 개발 압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새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바뀌고, 지반이 파헤쳐지는 모든 순간마다 1912년의 기록이 발굴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이 된다. 논 201필지가 있던 구역에서는 수계 관련 유구가, 대지 73필지 구역에서는 생활 유구가, 분묘지 5필지 주변에서는 장례 관련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각각 달라진다. 이것이 1912년 기록이 단순한 역사 자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발굴 지도가 되는 이유다.


6. 문화재 발굴의 실제 현장, 지표·시굴·표본·발굴조사가 움직일 때



서울의 발굴 현장에서 가장 먼저 진행되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다. 지표조사는 말 그대로 땅의 표면을 훑으며 과거의 흔적이 있는지를 탐색한다. 그다음 시굴조사, 좁은 면적을 먼저 파서 유물 발굴 가능성을 확인한다. 필요하면 표본조사로 더 깊고 정밀한 탐사가 들어간다. 최종적으로 발굴조사, 즉 유적발굴단이 본격적으로 땅을 여는 단계가 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문화재발굴조사 장비들이다. 토양을 밀리미터 단위로 긁어내는 도구, 층위를 기록하는 장비, 유물 발굴 작업을 위한 미세 도구들까지. 발굴조사원들은 이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며 땅속 숨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상봉동처럼 논·밭·대지·분묘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지역에서는 각 구역마다 다른 장비와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7. 발굴조사원의 하루, 땅속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사람들

"발굴조사원들은 흔히 '과거의 번역가'라고 불린다. 땅은 항상 말을 하지만, 그 말을 읽어내는 사람은 따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하루는 단순히 삽질로 시작하지 않는다. 어떤 층위에서 흙의 색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위치에서 조그마한 토기 조각이 나왔는지, 그 조각이 어떤 시대의 흔적인지. 모든 것이 기록되고, 사진으로 남겨지고, 데이터로 정리된다. 이들이 없었다면 1912년 상봉동의 모습은 영원히 땅속에 묻혀 있었을 것이다.

발굴의 절정은 발견의 순간이 아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흙을 오랫동안 인내하며 지켜보는 시간들이 있었기에 발견의 순간이 더 강렬해진다. 상봉동의 분묘지 5필지 구역을 조사하는 발굴조사원은 특히 더 조심스러운 손길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조상이 잠들어 있었던 그 자리에서, 과거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읽어내는 것이 발굴조사원의 진짜 역할이기 때문이다.


8. 상봉동에서 가능했던 성공 사례 한 편

성공 사례 —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땅에서 역사를 찾다

상봉동 특정 구역에서 진행된 한 유물 발굴 작업이 있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어 보였고 단순한 정지 작업으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지표조사 도중 아주 작은 기와 조각 하나가 나왔고, 그 조각이 단서가 되어 시굴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 주거지의 흔적이 발견됐다. 결국 발굴조사까지 이어졌고,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기와·토기·생활 구덩이 흔적 등이 확인됐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조각이 하나의 역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순간이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참고)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작은 단서 하나가 전체 발굴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그 단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은 1912년 토지 기록 같은 역사 자료에서 길러진다. 상봉동의 기록이 다음 발굴의 첫 번째 단서가 될 것이다.


9.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의 가치



서울은 오래된 도시다. 그런데도 서울의 땅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깊다. 도시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발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빠른 변화 속에서 사라지는 과거를 붙잡아두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화재 발굴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였는지, 지금 누구인지, 앞으로 누구일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상봉동의 1912년 기록이 우리에게 주는 것도 바로 이 나침반이다. 이씨·황씨·최씨의 삶이 쌓인 땅, 동양척식의 그림자 속에서도 마을 공유지 3필지를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 분묘지 5필지에 잠들어 있는 누군가의 시간. 이 모든 것을 꺼내 세상에 돌려주는 일이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가 하는 일이다.


10. 읽는 이를 위한 마지막 장면



지금 당신이 걷는 길 아래에도, 아무도 모르던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그 이야기를 깨우는 사람들이 있고, 그 깨움의 순간을 지켜보는 당신이 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는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고, 역사를 지키고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상봉동의 기록이 알려주는 것은 단 하나다. 우리가 걷는 이 도시가 결코 우연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 이씨 63필지, 황씨 53필지, 마을 공유지 3필지. 그 모든 이름과 숫자들이 지금 이 순간 상봉역 앞 골목 아래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땅은 절대 잊지 않는다. 우리가 귀 기울이는 한, 상봉동의 시간은 계속 살아 있다.

당신이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그 마음속에도 작은 발굴이 일어난 것이다.



문화재 발굴은 단순히 땅을 파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파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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