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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종로구 서대문로2가, 땅이 말해주는 제국의 그림자와 서울의 기억

목차


  1. 도시의 심장부, 땅속에 숨은 이야기

  2. 1912년 서대문로2가 – 169필지의 기록

  3. 외국인 토지의 그림자, 제국주의의 발자국

  4. 문화재발굴로 드러난 서울의 진짜 얼굴

  5.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현재

  6. 발굴조사원의 하루 – 땀으로 새긴 역사

  7.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성공사례

  8.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

  9. 마무리 – 땅이 전하는 감동의 메시지





“이 땅 아래에는, 우리가 잊은 서울이 있다.”


사람들은 종로를 ‘서울의 중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이 중심의 땅속에는 누구도 몰랐던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서울의 땅을 파면 흙이 아니라 ‘기억’이 나온다.

그 기억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문화재발굴과 유적발굴을 통해 잃어버린 서울의 시간을 복원하는 유적발굴단이다.





1. 도시의 심장부, 땅속에 숨은 이야기



오늘 우리가 걷는 서대문로2가의 인도 아래에는 100년 전 제국주의의 흔적과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1912년, 서울의 도심은 겉으론 근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속으로는 외세의 손길이 깊게 뻗어 있었다.


이 지역을 조사한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종로구 서대문로2가에는 169필지, 총 245,068㎡의 대지가 존재했다.

지금은 번화한 빌딩 숲이지만, 그 시절 이 땅은 나라를 잃은 백성의 한숨과 외국 세력의 욕망이 교차하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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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12년 서대문로2가 – 169필지의 기록



당시 이 지역은 모든 땅이 ‘대지’로 분류되어 있었다.

즉, 논이나 밭이 아닌 건물과 사람이 오가는 완전한 도시 형태였던 것이다.

국유지는 6필지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은 개인 소유였다.

그중에서도 이씨 26필지, 김씨 24필지, 박씨 14필지 등 전통 명문가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낯선 이름들이 보였다.

바로 독일인 4필지, 미국인 2필지, 영국인 1필지, 일본인 22필지, 중국인 6필지, 프랑스인 2필지였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서울이 식민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던 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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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국인 토지의 그림자, 제국주의의 발자국



1912년은 나라를 잃은 지 2년째였다.

서대문로2가 일대는 행정, 종교, 교육기관이 밀집한 중심지로, 외국 공관과 선교 시설이 빠르게 들어서던 곳이었다.

그 속에서 외국인들의 토지 소유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지배의 상징’이었다.


이 지역의 토지대장은 한 장의 역사서였다.

외국인 이름 아래 적힌 필지 번호는, 제국주의가 서울 한복판까지 들어왔다는 증거였다.

유물발굴작업을 통해 이 일대에서 발견된 근대식 벽돌 구조물과 일본식 배수시설은 그 시기의 건축문화를 생생히 증언한다.

벽돌 하나, 기둥 하나에도 시대의 긴장감이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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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화재발굴로 드러난 서울의 진짜 얼굴



문화재발굴조사장비의 정밀함은 눈부시다.

GPS 기반의 측량기, 드론 항공스캔, 3D 스캐너까지 동원되어, 눈으로 볼 수 없는 과거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한 발자국씩 흙을 걷어낼 때마다, 과거의 서울이 되살아난다.


발굴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비가 오면 토사가 무너질까 걱정되고, 여름엔 열기 속에서 숨이 막힌다.

하지만 발굴조사원들의 손끝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유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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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의 현재



지금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는 단순한 땅파기가 아니다.

‘땅속의 역사’를 지표조사–시굴조사–정밀발굴조사 단계로 과학적으로 진행한다.

지표조사는 땅 위에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탐지하는 첫 걸음이다.

시굴조사는 일부 구역을 파서 유구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밀발굴은 본격적인 복원의 시작이다.


이 모든 과정은 과거의 흔적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세심한 절차로 이루어진다.

서울은 전국에서도 가장 복잡한 지층을 가진 도시지만, 그만큼 문화재발굴과정의 기술이 가장 발전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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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굴조사원의 하루 – 땀으로 새긴 역사



서울의 유적발굴단은 이른 새벽부터 움직인다.

현장 도착, 측량, 시굴라인 설정, 토양 분석, 유물 분류.

그 하루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그들은 매일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손끝으로 천 년 전의 흙을 만지고, 그 안에서 사람의 체온을 느낀다.

누군가의 주춧돌, 누군가의 도자기 파편이 그들의 손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다.


그 중 한 조사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유물을 발견하는 순간, 그건 단순한 흙덩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에요. 그걸 우리가 다시 세상에 꺼내주는 거죠.”

이 한마디가 모든 발굴의 의미를 설명한다.





7.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성공사례



서울 종로구 사직동, 충정로, 삼청동 등지의 발굴조사에서는 조선시대 관청터, 고가 건축 유구, 일제강점기 벽돌 구조물 등 수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중 서대문로2가 일대의 발굴은 근대기 외국인 소유지 구조를 복원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 조사는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되어,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도 현대 도시 계획에 반영한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 되었다.





8.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



서울은 오래된 도시이자, 여전히 ‘변화 중인 도시’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빌딩이 들어서도, 그 아래에는 언제나 과거의 숨결이 흐른다.

우리가 발굴을 하는 이유는, 과거를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래를 더 단단히 세우기 위해서다.


유물발굴은 과거의 이야기를 복원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문화적 기반을 세우는 작업이다.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다.







9. 마무리 – 땅이 전하는 감동의 메시지



한 번쯤은 걸음을 멈추고 발밑을 바라보자.

그 아래에는 우리가 잊은 시간, 누군가의 눈물, 그리고 서울의 심장이 있다.

문화재발굴조사는 과거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하는 귀중한 일이다.

그 땅이 기억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의 중심에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가 있다.

서울의 땅이 전하는 감동,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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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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