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종로구 당주동,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문화재 발굴의 의미
- 서울 HI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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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울 한복판, 1912년 당주동의 첫인상
2. 171필지 37,570㎡, 땅이 품은 기록
3. 국유지 단 1필지의 의미 – 국가의 흔적을 찾아서
4. 김씨, 이씨, 박씨, 최씨… 성씨별 땅 소유와 마을의 모습
5. 일본인·중국인·프랑스인, 외국인의 발자취
6.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밝혀주는 생활상
7. 성공 사례로 보는 서울 발굴 이야기
8.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당주동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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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당주동.
1912년의 기록 속에서 이곳은 단순한 주소가 아니라, 171필지 37,570㎡의 땅으로 살아 숨 쉬던 공간이었습니다.
당시의 당주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마다 장사꾼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가던 생생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땅과 문서, 그리고 발굴 조사에서 남겨진 흔적들이 당시를 대신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바로 이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땅은 말이 없지만, 그 속에 기록된 흔적은 오히려 책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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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 당주동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국유지는 단 1필지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개인 소유로, 그 주인들의 성씨를 들여다보면 당시 사람들의 사회적 기반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김씨가 37필지를, 이씨가 26필지를, 박씨와 최씨가 각각 11필지를 지키고 있었죠. 이렇게 성씨별 분포만 보더라도 당시 당주동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었는지, 어떤 집안이 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지가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끄는 부분은 외국인의 존재입니다. 일본인이 4필지, 중국인이 1필지, 그리고 프랑스인이 1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기록은 20세기 초 서울이 이미 국제적인 교류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오늘날 종로 일대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모습은, 어쩌면 100년 전부터 이어져온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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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문화재 발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화재 지표조사란, 개발이나 건축 공사 이전에 그 땅 속에 묻혀 있을지 모를 역사적 유산을 확인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만약 지금 당주동 한복판에서 대규모 공사를 진행한다면, 반드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먼저 시행될 것입니다. 1912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땅의 소유자와 그 분포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문헌 지표조사’의 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땅을 소유한 집안의 배경, 외국인의 소유 현황, 국유지의 존재 여부 모두는 땅 위에 살아간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서울에서는 실제로 이런 발굴 조사를 통해 놀라운 성과들이 밝혀진 적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종로구 공평동에서는 조선 시대 상업 활동의 흔적이 발굴되었고, 그곳에서 나온 기와, 도자기, 생활 도구들은 오늘날 전시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또 광화문 인근에서는 근대기 건물의 기초가 드러나, 서울이 어떻게 전통과 근대 문화를 동시에 품고 변화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당주동 역시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과 도로가 들어선 지역이지만, 땅을 파고 들어가면 분명히 당시 사람들의 흔적, 생활 도구, 건물의 흔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없다면 이 모든 것은 콘크리트 아래에 영영 묻혀 사라지고 말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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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런 작업이 중요한 걸까요? 바로 우리의 정체성과 도시의 역사적 흐름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당주동에서 김씨와 이씨가 함께 지켜낸 터전, 일본인과 프랑스인이 남긴 소유 흔적, 국유지 단 1필지의 의미는 단순히 땅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넘어서 당시 서울이 어떤 도시였는지를 생생하게 알려줍니다.
이런 점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닙니다. 이는 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숨겨진 목소리’를 듣는 과정입니다. 그 속에는 역사를 지키려는 의지와 미래 세대에게 남겨야 할 소중한 기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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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하지만 서울은 그 답을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로, 광화문, 그리고 당주동은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공간입니다. 발굴 조사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유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그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도시가 걸어온 발자취를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1912년의 당주동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품고 있던 이야기, 너희는 잘 듣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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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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