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은평구 신사동의 진짜 모습을 아시나요?
- 서울 HI
- 5월 16일
- 3분 분량
지금의 신사동을 걷다 보면 아파트 단지와 카페, 그리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스며든 골목길이 공존하는 풍경이 익숙합니다.
하지만 100여 년 전인 1912년, 이 땅에는 어떤 삶이 펼쳐지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시절 신사동의 이야기를, 땅의 기록을 통해 되짚어봅니다.
이곳엔 논과 밭, 무덤과 대지,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까지 있었죠.
지금부터 1912년 은평구 신사동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목차
1912년 신사동으로의 초대 – ‘땅’으로 읽는 마을의 역사
생명을 키우던 논과 밭 – 신사동의 농경지
삶의 자리, ‘집’이 있었던 땅
조용한 기억, 무덤의 땅
조선의 국유지와 식민지 기업의 그림자
신사동에 뿌리내린 성씨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침투
에필로그 – 오늘의 신사동과 이어지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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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2년 신사동으로의 초대 – ‘땅’으로 읽는 마을의 역사
1912년 은평구 신사동은 298필지, 총 534,742㎡ 규모의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개발된 도시가 아닌, 논과 밭이 주를 이루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죠.
하지만 그 땅 위에는 단순한 경작지 이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터전이 있었고, 기억이 있었고,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었죠.
2. 생명을 키우던 논과 밭 – 신사동의 농경지
1912년 당시 신사동은 농경지가 매우 넓었습니다.
논은 82필지에 걸쳐 283,687㎡, 밭은 161필지 215,607㎡에 달했죠.
이 수치는 단순한 면적이 아닙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땅에 기대어 살았고, 계절 따라 씨를 뿌리고 수확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흔적입니다.
신사동의 땅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자연과 사람이 맞닿아 있었던 그 시절, 땅은 마을 사람들의 삶이자 생명이었습니다.
3. 삶의 자리, ‘집’이 있었던 땅
1912년 신사동에는 52필지 32,142㎡의 대지가 있었습니다.
이 땅 위에는 흙집이 있었고, 작은 담장과 우물이 있었겠죠.
도시화된 지금의 주택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당시의 집은 가족의 울타리이자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따뜻한 밥 냄새가 풍기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던, 소박하지만 정겨운 삶의 흔적들.
4. 조용한 기억, 무덤의 땅
신사동에는 3필지 3,305㎡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전통 묘지들처럼, 이 무덤들은 누군가의 조상이 묻힌 공간이었죠.
이 무덤들에는 이름 없이 살아간 이들의 기억이 담겨 있었고,
한 세대의 끝자락에서 다음 세대를 지켜보던 조용한 시선이 숨어 있었을 겁니다.
5. 조선의 국유지와 식민지 기업의 그림자
흥미로운 점은, 1912년 신사동에는 15필지의 국유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국유지는 주로 군사용지, 도로, 하천 등의 공공 용도로 사용되었죠.
그런데 그와 함께, 또 하나의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
이 회사는 일본 제국이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 토지 수탈 기관이었죠.
신사동에서는 무려 23필지를 이 회사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당시 식민 통치의 실체가 생활 속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기록입니다.
6. 신사동에 뿌리내린 성씨들
1912년의 신사동은 성씨 분포도 흥미롭습니다.
김씨가 82필지를 소유하며 가장 많았고, 이어 장씨 36필지, 이씨 35필지, 박씨 17필지, 천씨 12필지, 윤씨 10필지 순이었죠.
이처럼 특정 성씨가 마을 전체에 깊게 뿌리내린 모습은 ‘촌락 공동체’의 전통적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각 성씨마다 문중 중심의 생활, 제사와 모임, 공동의 밭농사 등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날에도 골목 어귀에서 ‘김씨 고택’, ‘이씨 제실’ 등을 만날 수 있는 건 그 흔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7.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침투
신사동에 23필지나 소유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존재는 단순한 부동산 소유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들은 토지를 헐값에 수탈해 일본인 이주민에게 매각하거나, 조선인을 소작농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사동 역시 그 예외가 아니었죠.
이들 필지 중 일부는 훗날 도시 개발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의 터전이 흔들렸습니다.
이 기록은 은평 신사동 역시 식민지배의 영향을 받은 지역임을, 땅의 소유권을 통해 입증하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8. 에필로그 – 오늘의 신사동과 이어지는 기억
지금 신사동을 걷다 보면, 과거의 모습은 찾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땅은 기억합니다.
논과 밭, 대지와 무덤, 그리고 국유지와 척식회사까지.
1912년의 땅을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상처와 꿈이 얽혀 있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당신이 오늘 지나친 골목길 하나가, 100년 전 누군가의 논일 수도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자리가, 김씨 문중의 대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기억 위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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