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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구로구 온수동으로 시간여행: 서울 구로구 땅 이야기”

  • 2025년 6월 20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온수역 그 골목,100년 전엔 논두렁이 이어지던 길이었다.

1912년 구로구 온수동 — 102필지, 230,655㎡. 서울의 창고였던 이 땅에 살았던 유씨·김씨·박씨 가문의 이야기


목차

1.온수동, 100년 전 그곳은 어땠을까

2.논밭으로 뒤덮인 동네 — 온수동의 풍경

3.집은 드물고 땅은 넓었다 — 대지와 인구 이야기

4.산이라기엔 작은 임야, 자연 그대로의 모습

5.성씨로 보는 마을 지도 — 누가 어디에 살았을까

6.도시화의 시작 전, 온수동의 마지막 농촌 풍경

7.문화유산 조사 — 과거를 밝히는 열쇠

8.마무리 — 땅에서 피어난 이야기, 문화유산으로 남다



1. 온수동, 100년 전 그곳은 어땠을까



내가 사는 동네가 100년 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온수역 근처를 걷다 보면 지하철 출구와 편의점, 아파트 단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딱 113년 전, 구로구 온수동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서울 외곽의 조용한 농촌 마을, 논두렁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계절마다 들판의 색이 바뀌던 그 동네.

총 필지 수

102필지

소규모 농촌 공동체

총 면적

230,655㎡

축구장 약 32개 규모

논 (면적 1위)

129,041㎡

43필지, 전체의 약 56%

80,611㎡

45필지, 두 번째 규모

1912년 온수동의 전체 면적은 230,655㎡, 102필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동네들 중 가장 작은 규모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다. 102필지라는 단출한 숫자 속에 유씨, 김씨, 박씨, 이씨, 최씨 가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팀이 분석한 토지조사부 기록을 따라 그 동네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2. 논밭으로 뒤덮인 동네 — 온수동의 풍경

43필지

129,041㎡ · 56%

45필지

80,611㎡ · 35%

대지

11필지

12,783㎡ · 5%

임야

3필지

8,218㎡ · 4%



온수동의 주인은 논이었다. 43필지, 129,041㎡. 전체 면적의 56%가 논이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논 비율이 높은 동네는 이 시리즈에서 처음이다. 대부분의 다른 동네들은 밭이 더 넓었는데, 온수동은 논이 압도적이었다. 그만큼 이 지역이 벼농사에 적합한 지형이었다는 뜻이고, 쌀이 이 마을 경제의 중심이었다는 의미다.

밭은 45필지, 80,611㎡. 필지 수로는 논보다 많지만 면적은 훨씬 작다. 감자, 고구마, 콩, 옥수수.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밭이 논 사이사이를 채웠다. 논과 밭을 합치면 209,652㎡, 전체의 91%. 온수동은 농사가 전부이던 동네였다.

온수동이 '서울의 창고'였다는 표현, 왜 나왔을까?

전체의 91%가 논밭이었다는 건 이 동네가 서울 시내에 식량을 공급하는 생산 기지였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곡식을 키우는 땅이 훨씬 더 중요했던 시절, 온수동은 도시가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3. 집은 드물고 땅은 넓었다 — 대지와 인구 이야기

102필지 중 집터인 대지는 단 11필지, 12,783㎡. 전체의 5%에도 못 미친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단 하나. 온수동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살기 위해 키우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집보다 밭이 훨씬 더 많았던 그 시절, 온수동 사람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집 안이 아닌 들판에서 보냈을 것이다.

11필지의 집터 위에 지어진 집들은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흙담으로 둘러싸인 마당, 아궁이에 올려진 솥, 장독대에 가득한 된장 항아리. 그 11채의 집이 온수동 공동체 전체를 품었다. 지금 온수역 근처 어딘가의 지층 속에 그 집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건 온수동 사람들이 남긴 가장 개인적인 역사 유적이다.


4. 산이라기엔 작은 임야, 자연 그대로의 모습



온수동엔 임야도 있었다. 3필지, 8,218㎡. 산이라 부르기엔 작고, 숲이라 부르기엔 아담한 크기다. 하지만 이 작은 숲이 마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공간이었는지는 상상해보면 알 수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을 구하는 곳,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 봄이면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나던 곳.

도시가 개발되기 전, 서울은 이처럼 작고 고요한 자연의 조각들을 품고 있었다. 지금 온수동에서 이 임야가 어디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 어떤 나무들이 자랐는지, 그 숲이 지금의 어떤 공간과 이어지는지를 추적하는 것도 문화재 지표조사의 중요한 과제다. 자연도 문화유산이다.


5. 성씨로 보는 마을 지도 — 누가 어디에 살았을까

유씨

18필지

김씨

13필지

박씨

13필지

이씨

13필지

최씨

12필지

온수동 토지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씨들의 균형이다. 유씨가 18필지로 가장 많지만, 김씨·박씨·이씨가 모두 13필지로 나란히 뒤를 잇고, 최씨도 12필지다. 이 정도면 거의 차이가 없다. 어느 한 가문이 독점하지 않고, 다섯 성씨가 고르게 이 작은 마을을 나눠 살았다.

유씨네는 마을 어귀에, 김씨네는 논 옆에, 박씨네는 그 너머에, 이씨네와 최씨네는 밭과 밭 사이에. 그들은 품앗이를 하며 서로의 논을 함께 일구었을 것이다. 명절이면 같이 제사를 지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달려갔을 그 마을. 102필지의 작은 온수동이 얼마나 따뜻한 공동체였는지, 그 성씨 분포에서 읽힌다.


6. 도시화의 시작 전, 온수동의 마지막 농촌 풍경



온수동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도시화된 지역 중 하나다. 지하철 7호선 온수역을 중심으로 고층 아파트와 대형 마트, 도로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런데 불과 한 세기 전, 이곳은 논이 56%를 차지하는 농촌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온수동은 얼마나 달라졌고, 그 변화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묻혔을까.

도시화는 단순히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이 아니다. 누군가의 논이 사라지고, 누군가의 집터가 콘크리트로 덮이고, 수백 년간 이어진 마을의 기억이 지층 속으로 잠기는 과정이다. 그 잠긴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문화재 지표조사의 역할이다.


7. 문화유산 조사 — 과거를 밝히는 열쇠



온수동처럼 논이 전체의 56%를 차지하고, 102필지 중 집이 11필지에 불과했던 동네는 문화재 매장 관점에서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농경지 비율이 높으면 생활 유물이 집중될 수 있는 집터 주변이 상대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만큼 11필지의 집터 위치를 특정해 정밀 조사하는 것의 가치가 크다. 그 좁은 공간에 온수동 공동체의 모든 생활 흔적이 집중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는 건물을 짓기 전에 땅속 문화유산을 확인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온수동 근처에서 공사나 개발이 계획된다면, 문화재 지표조사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소규모 건축의 경우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사이트에서 구로구 지역 기록과 의뢰 절차를 확인할 수 있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논 비율이 높은 지역은 농경 문화 층위가 두터울 수 있으며, 집터 11필지 주변은 특히 정밀 조사 가치가 높다. seoulheritage.org 또는 e-minwon.go.kr에서 의뢰 가능.


8. 마무리 — 땅에서 피어난 이야기, 문화유산으로 남다



한 장의 지도와 몇 줄의 기록. 거기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다. 유씨 18필지, 김씨·박씨·이씨 각 13필지, 최씨 12필지. 이름만 다른 다섯 가문이 품앗이하며 살던 온수동의 그 겨울, 그 여름이 지금도 지층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 어느 논두렁, 어느 집터, 어느 작은 임야 하나도 모두 서울의 뿌리가 되었고, 지금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의 유산은 박물관 안에만 있지 않다. 온수역 출구를 나와 걷는 그 평범한 길 위에, 발 아래 지층 속에,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곳에 살아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보는 이유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도시의 뿌리를 알아야, 미래를 더 잘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구로구 관할 문화재 문의 → 구로구청 문화관광과

"1912년, 유씨 어른이 논두렁을 걷던 그 길.지금 당신이 온수역에서 나와 걷는 그 길과 같다.땅은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우리가 묻지 않을 뿐이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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