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가리봉동, 100년 전 그 땅의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 서울 HI
- 7월 22일
- 3분 분량
가리봉동, 100년 전 그 땅의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1912년, 구로구 가리봉동. 지금은 고층 아파트와 공장들로 빼곡한 도심 한복판이지만, 100여 년 전엔 온통 넓은 논밭과 연못, 임야가 펼쳐진 ‘자연의 땅’이었습니다.
이 넓은 땅 위에 사람들은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작은 마을 안에 깃든 삶의 숨결, 그 안에 묻힌 이야기를 파내며 그 시대를 향해 걸어봅니다.

한줄을 뛰어넘어 길게 흐르는 이야기처럼, 그 시대 사람들의 웃음과 땀, 물소리가 지금 제 귀에 들려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100여 년 전 가리봉동으로 들어가볼까요.
2 . 1912년 가리봉동 토지의 구성과 규모
총 면적은 572필지, 1,951,132㎡.
지금으로 치면 59만 평대, 거의 축구장 800개쯤 되는 면적입니다.
모두의 삶터이자 땀이 머물렀던 그 땅을 세부 구성으로 나눠 보면, 그 안에 각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펼쳐집니다.
3 . 논과 밭, 그리고 삶의 중심이었던 땅
넓디넓은 땅에서 사람들은 곡식을 키웠습니다.
논: 342필지, 1,348,564㎡.
밭: 134필지, 263,541㎡.
논이 약 69%, 밭이 약 13%를 차지하며, 벼농사와 채소·곡물 재배가 일상 풍경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가족들이 함께 나란히 물을 대고, 삽을 들고, 하루를 흘린 풍경이 떠오릅니다.
4 . 집이 드물었던 시절, 대지와 사사지를 통해 본 생활상
집터는 많지 않았습니다.
대지: 38필지, 59,114㎡
사사지: 1필지, 85㎡
집이 곧 대지였고, 사사지는 사당이나 작은 제단·공간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움집과 초가가 드문드문, 사람들의 얼굴만큼 따뜻했던 ‘집’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5 . 임야와 잡종지, 활용되지 않은 땅의 이야기
임야(산지): 3필지, 2,961㎡
잡종지: 38필지, 262,748㎡
임야는 마을 뒤편의 숲, 잡종지는 간헐적 경작지·축사·도로 미포함지 등을 포함한 채 방치된 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덜 닿은 그 땅들은 마치 숨 고르는 구석 같았습니다.
6 . 연못과 지소,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흔적
연못(지소): 16필지, 14,115㎡
농업용 물 저장고이자, 마을 물의 보고였던 연못.
가물 때도, 물대 때도, 사람과 동물 모두 그곳에서 숨 돌렸습니다.
연못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물결 위로 퍼졌을 것만 같습니다.
7 . 성씨별 토지 소유, 누가 이 지역을 지배했나
땅을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당시 사회구조가 엿보입니다.
김씨 116필지
박씨 116필지
유씨 30필지
최씨 26필지
이씨 23필지
문씨 19필지
윤씨 19필지
양씨 17필지
홍씨 17필지
염씨 15필지
조씨 15필지
강씨 11필지
상위 성씨들이 땅을 더 많이 소유하며 당시의 위계와 영향력을 가늠하게 합니다.
같은 성씨끼리 이어진 공동 작업, 전통, 마을 네트워크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8 . 국유지의 존재, 나라가 소유했던 땅의 의미
국유지: 13필지
이 땅들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땅으로,
도로·공공 시설·관청 용도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시의 통치 시스템, 사회 질서, 중앙 통치권력의 영향이 펼쳐진 흔적입니다.
9 . 지금 이 시대, 문화재지표조사로 본 옛 가리봉동의 가치
이런 땅의 구조와 이용 정보는 단순히 통계가 아닙니다.
땅을 조사하면 당시 사람들의 삶, 생업, 전통, 공동체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문화재지표조사는 이런 공간에 대한 ‘지문을 찾는 일’입니다.
단순한 과거 복원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세계를 재구성하는 수단입니다.
10 . 서울에서 문화유적 발굴을 고민 중이라면?
가리봉동 같은 지역들을 대상으로 지표조사를 의뢰한다면, 어떤 절차로 진행될까요?
사전조사: 기록·지적도·초기 현황 파악
현지 답사: 현장 흔적·지표 물질 조사
시굴조사: 작은 시굴을 통해 문화층 존재 여부 판단
발굴조사: 실제 층위별 유물 발굴
보고서 작성 & 전파: 발굴 성과 홍보 & 확보
국제기준에 따라 현상 보존과 학술적 활용, 문화관광으로 연결됩니다.
11 . 성공적인 지표조사 사례: 산업단지 조성과의 조화
최근 서울 남부 산업단지에서도
문화재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까지 이어진 사례가 있었습니다.
조사 후, 출토 유물은 지역 전시관에 배치되어
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죠.
‘옛’과 ‘현재’가 함께 숨 쉬는 방식, 바로 이것입니다.
12 . 왜 지금, 우리가 과거를 파헤쳐야 하는가
정체성 복원: 사라져가는 마을 이야기를 붙잡습니다.
문화관광 가치: 관광 콘텐츠로 환원해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됩니다.
도시계획과 조화: 개발과 보존의 균형, 지속 가능한 도시 구축에 필수입니다.
특히 20·30대에게는
“과거의 밭논 위에 내가 서 있다”는 감각이
도시 삶의 새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13 . 결론: 땅 아래 묻힌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
1912년 가리봉동, 그 밭과 논, 연못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일상이고 전통입니다.
지금의 빌딩과 도로가 만들어진 것도,
그 위에 다시 이야기를 덧입을 수 있는 이유도
모두 땅 아래 한 겹씩 쌓인 삶 때문입니다.
지금 이 땅을 개발하기에 앞서, 지표조사를 통해
이전 시대의 숨소리를 듣고
그 땅 위에 서 있는 우리를 다시 연결할 때입니다.
이 글은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문화재지표조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왜 지표조사가 중요한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결과는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20·30대도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 썼습니다.
성공 사례와 실질적 절차를 곁들여,
“나도 이런 지역에서 시굴조사·발굴조사를 의뢰하고 싶다”는
선명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등장하는 모든 수치는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홈페이지 기반이며,
더 많은 정보는 아래 출처를 참고하세요.
글 출처: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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