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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동작구 상도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 2025년 5월 22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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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 그 골목 아래,사찰 터와 황금 논밭이 잠들어 있다

1912년 동작구 상도동 토지대장으로 읽는 잊혀진 풍경 |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 기초자료

상도동 고시촌 골목, 숭실대 캠퍼스, 빼곡한 빌라 단지.


우리가 아는 상도동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해.


1912년 그 자리에는 논이 137필지,


그리고 누군가의 기도가 머물던 사사지(寺社地)가 있었다.



불과 100년 전, 상도동은


흙냄새와 기도 소리가 공존하던 전원 마을이었다.


목차

  1. 상도동의 시간 여행, 1912년으로의 초대

  2. 황금빛 물결의 향연 — 137필지 논의 압도적 풍요

  3. 삶과 노동의 현장 — 198필지 밭의 생명력

  4. 삶의 중심지 — 32필지 집터가 품은 온기

  5. 묵묵히 지켜온 역사의 흔적 — 분묘와 사사지의 비밀

  6. 푸르름 속 쉼터 — 임야와 연못이 있던 자리

  7. 성씨가 말해주는 상도동 사람들의 이야기

  8.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가 주목하는 이유

  9. 오늘의 상도동에서 과거를 마주하다



01 — 상도동의 시간 여행, 1912년으로의 초대

상도동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숭실대학교, 상도역 주변의 빼곡한 빌라와 원룸들, 고시원과 공부하는 청년들의 동네. 동작구의 조용하지만 바쁜 일상이 흐르는 그 거리. 그런데 그 익숙한 골목 아래, 100년 전의 상도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의 기록에 따르면, 1912년의 동작구 상도동은 총 373필지, 1,149,416㎡의 규모를 가진 마을이었다. 114만 제곱미터가 넘는 이 넓은 땅의 대부분은 논과 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한 가지 특별한 요소가 있었다. 바로 사사지(寺社地), 즉 사찰이나 신사가 들어섰던 흔적을 가진 땅이다. 상도동은 단순한 농촌 마을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도와 신앙이 함께 숨 쉬던 공간이기도 했다.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관점에서 이 사사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찰 터는 건물지, 기와 조각, 불교 관련 유물 등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은 구역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1912년의 상도동을 천천히 걸어보자.

총 필지

373필지

1912년 기준

총 면적

1,149,416㎡

약 34만 8천 평

논(답)

137필지

748,148㎡

밭(전)

198필지

344,801㎡


02 — 황금빛 물결의 향연, 137필지 논의 압도적 풍요

1912년 상도동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논의 압도적인 규모다. 137필지, 748,148㎡. 전체 면적의 무려 65%가 논이었다. 지금의 상도동에서 이 숫자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숭실대 캠퍼스와 그 주변 주택가 전체를 덮는 규모의 논이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다른 세계였는지 가늠이 된다.

상도동의 논이 이토록 넓을 수 있었던 데는 지형적 이유가 있었다. 관악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 상도동 일대를 촉촉하게 적셔주었고, 완만한 구릉과 평지가 어우러진 지형은 논농사에 적합했다. 봄이면 주민들이 함께 모내기를 하고, 여름이면 초록빛 논이 마을을 가득 채웠다. 가을이면 황금빛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은 낫을 들고 수확에 나섰다. 그 계절의 리듬이 상도동 사람들의 삶 전체를 지배했다.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논 지대는 특별한 관심 구역이다. 논은 수분이 풍부한 환경 덕에 유기물 보존율이 높고, 지층이 뚜렷이 구분되어 시대별 문화층을 분석하기 좋다. 특히 관악산 자락의 물이 모여드는 저지대 논 구역은 과거 생활 유물이 쓸려 내려와 집적되는 지점이 될 수 있다. 137필지라는 방대한 논 면적은 상도동이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 중 하나다.


03 — 삶과 노동의 현장, 198필지 밭의 생명력

논이 상도동의 주요 경관이었다면, 밭은 그 사이사이를 채우며 사람들의 밥상을 직접 책임지던 공간이었다. 198필지, 344,801㎡에 달하는 밭은 전체 면적의 약 30%를 차지했다. 논보다 필지 수에서 앞섰다는 것은, 상도동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작물을 키우며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고추, 배추, 무, 파, 마늘.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상도동 밭을 채웠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잡초를 뽑고, 아버지는 논과 밭을 오가며 하루를 보냈다. 수확한 작물은 가족의 식탁을 채우고, 남은 것은 이웃과 나누었다. 상도동 198필지의 밭은 단순한 경작지가 아니라, 이 마을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던 나눔의 공간이기도 했다.

밭 지대는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다층적인 유물층이 확인되는 구역이다. 매년 경작으로 표토가 뒤집히지만, 그 아래 일정 깊이에는 이전 시대의 생활 흔적이 보존되는 경우가 많다. 토기 조각, 철제 농기구, 씨앗류 등이 상도동 밭 지대의 지층에서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04 — 삶의 중심지, 32필지 집터가 품은 온기

광활한 논과 밭 사이에 사람들이 실제로 살던 집터가 있었다. 32필지, 34,591㎡의 대지다. 지금의 빽빽한 빌라와 원룸들에 비하면 아주 드문드문 자리 잡은 규모지만, 그 안에서 수십 가구의 삶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들판을 배경으로 서 있고, 마당에는 장독대가 줄지어 서 있었을 것이다.

저녁이면 이웃 집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루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던 사람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다 어머니의 부름에 집으로 달려가던 그 풍경. 지금의 상도동 좁은 골목 어딘가에 그 온기가 아직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집터는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가장 집중적인 유물 출토가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온돌 흔적, 기와 조각, 생활 도구들이 그 집에서 살았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05 — 묵묵히 지켜온 역사의 흔적, 분묘와 사사지의 비밀

상도동 이야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있다. 바로 분묘지와 사사지다. 분묘지는 조상의 무덤이 있던 자리로, 1912년 상도동에는 12,661㎡ 규모의 분묘지가 있었다. 조상에 대한 예와 효를 중시하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무덤은 단순한 매장 공간이 아니었다. 봄가을 성묘, 제삿날 가족 모임의 구심점이자,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와 이어지는 거룩한 장소였다.

그리고 사사지. 4,036㎡에 달하는 이 특별한 땅은 과거 사찰이나 신사가 들어섰던 자리다. 지금은 그 흔적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상도동 어딘가에 한때 불상이 모셔지고 스님들이 독경하던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마을의 역사적 깊이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농사의 풍년을 빌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간구했다.

사사지(寺社地)란?

사찰이나 신사가 들어섰던 터, 혹은 그 부속 토지를 의미한다.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사사지는 건물지 흔적, 기와 조각, 불교 관련 금속 유물, 도자기 공양 용기 등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은 특별 관리 구역으로 분류된다. 상도동의 4,036㎡ 사사지는 발굴 기관들이 주목하는 핵심 지점이다.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사사지는 언제나 특별한 기대감을 품은 구역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발굴 현장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와 천문시계가 출토된 것처럼, 사찰 관련 터에서는 예상치 못한 역사적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상도동의 사사지가 품고 있을 이야기는 아직 땅 아래에서 잠자고 있다.


06 — 푸르름 속 쉼터, 임야와 연못이 있던 자리

상도동에는 일과 기도 외에도,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던 자연의 공간이 있었다. 임야 4,952㎡와 연못 224㎡다. 작은 규모지만 이 두 공간이 1912년 상도동 사람들에게 가졌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임야는 땔감을 구하고 약초를 캐는 생활 공간이었고, 더운 여름이면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였다.

그리고 224㎡의 연못. 지금의 상도동에서 연못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100년 전 이 작은 연못은 마을의 풍경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물가에서 풀잎으로 배를 접어 띄우던 그 연못.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거나, 빨래를 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물을 바라보던 일상의 쉼터였을 것이다. 지금은 건물 아래 사라졌지만, 그 연못이 있던 자리의 지층에는 지금도 그 시절의 퇴적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07 — 성씨가 말해주는 상도동 사람들의 이야기

1912년의 상도동은 실로 다양한 성씨들이 어우러진 공동체였다. 토지대장에 기록된 성씨들을 보면 이 마을이 얼마나 풍성한 인적 구성을 갖추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이씨가 107필지로 가장 많은 땅을 보유하며 마을의 중심 역할을 했고, 신씨 47필지, 고씨 45필지, 조씨 32필지, 유씨 27필지, 박씨 19필지, 최씨 17필지, 김씨 16필지, 백씨와 정씨가 각각 10필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10개 이상의 성씨가 공존했다는 것은 상도동이 특정 씨족이 독점하지 않고 다양한 가문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열린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이씨 107필지의 중심축 아래, 신씨와 고씨가 견고한 뒷받침을 했고, 그 외 여러 성씨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마을을 함께 만들어갔다. 백씨와 정씨처럼 소규모 토지를 가진 가문도 당당히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1912년 상도동 성씨별 토지 소유 현황

이씨107필지

신씨47필지

고씨45필지

조씨32필지

유씨27필지

박씨·최씨·김씨각 16~19필지

백씨·정씨각 10필지

이 다양한 성씨들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여러 가문이 공존하는 마을에는 각 씨족의 제사 공간, 문중 창고, 집단 주거지가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상도동의 373필지에 걸쳐 분포한 이 성씨들의 땅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었는지를 분석하면, 발굴조사의 핵심 구역을 사전에 좁혀나갈 수 있다.

107필지의 이씨, 47필지의 신씨, 45필지의 고씨. 10개 성씨가 함께 논을 갈고 밭을 일구며 만들어낸 그 마을이, 지금 우리가 매일 오가는 상도동이다.


08 —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가 주목하는 이유

상도동은 동작구라는 위치적 특성 때문에 문화재 발굴 관점에서 흥미로운 지역이다. 관악산 자락에서 이어지는 구릉지와 평지가 교차하는 지형, 풍부한 수원(水源), 오랜 농경지와 사사지의 복합적 분포. 이런 조건들이 맞물린 지역은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유존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분류된다.

국가유산청 규정에 따라 건축이나 토지 형질 변경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거쳐야 한다. 지표조사에서 매장 유산의 유존 가능성이 확인되면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발굴조사 순으로 단계가 진행된다. 소규모 발굴조사의 경우 2023년부터 국비 지원이 가능해졌다.



특히 상도동의 사사지 4,036㎡는 발굴조사 기관들이 주목해야 할 핵심 구역이다. 사찰 관련 터에서는 건물지 기초석, 기와 조각, 청동 불구(佛具), 도자기 공양 용기 등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시내 사사지 발굴 사례를 보면,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층이 확인된 경우도 있어 상도동 사사지의 잠재적 역사적 가치는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09 — 오늘의 상도동에서 과거를 마주하다

이렇게 1912년의 상도동을 한 바퀴 돌아왔다. 373필지 1,149,416㎡의 땅 위에서 우리는 황금빛 논을 수확하던 이씨 가문을 만났고, 밭을 일구던 신씨와 고씨를 만났다. 사찰 터에서 기도를 올리던 마을 사람들을, 분묘 앞에서 조상에게 절하던 후손들을, 연못가에서 장난치던 아이들을.

그 모든 이야기가 지금 우리 발밑에 잠들어 있다. 숭실대 캠퍼스 어딘가에, 상도역 주변 골목 어딘가에, 고시원 건물 지하 어딘가에. 100년 전 사람들의 기도 소리와 논 가는 소리, 이웃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 땅에 켜켜이 쌓여 있다.

다음에 상도동 골목을 걸을 때, 혹은 숭실대 캠퍼스를 지날 때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이 땅이 어떤 사람들의 기도와 땀으로 이루어진 곳인지. 그 질문 하나가 우리를 10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이 마을의 진짜 이야기와 이어준다.



사사지에서 기도하던 그 사람들,


137필지 논에서 벼를 심던 이씨와 신씨,


연못가에서 놀던 아이들.



그 모든 삶이 지금 상도동 땅 아래에 잠들어 있고,


우리가 걷는 이 골목은 그 기억 위에 서 있다.



상도동을 지나는 오늘의 당신에게,


이 땅이 품은 100년의 기도가 닿기를.



과거를 기억하는 발걸음만이


이 도시를 살아있는 역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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