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동작구 사당동, 땅속에 묻힌 이야기 – 서울 문화유산 발굴이 밝혀낸 113년 전의 기록
- 2025년 10월 2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6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 동작구 지역조사 · 문화재 지표조사
당신이 오늘 걷고 있는 그 길 아래, 113년 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 1912년 사당동 700필지, 강씨·이씨의 논밭과 프랑스인의 그림자
사당역 4번 출구를 나와 걷다 보면 빽빽한 주택가가 펼쳐져. 그런데 113년 전 이 자리는 달랐어. 논 293필지, 밭 331필지, 그리고 임야가 어우러진 고요한 마을이었어. 이씨 144필지, 강씨 114필지, 정씨 88필지. 그리고 방배동에 이어 또 등장한 프랑스인 19필지. 사당동과 방배동이 이웃한 이유만이 아닌 것 같아. 프랑스 선교사들이 왜 이 언덕 일대를 거점으로 삼았는지, 이 글이 말해줄 거야.
목차
첫 삽을 뜨던 순간 — 땅 아래서 들려온 목소리
1912년 사당동의 풍경 — 논, 밭, 산, 그리고 마을
사당동을 이뤘던 사람들 — 성씨로 본 토지 소유의 흔적
낯선 이름, 프랑스인의 땅 — 제국과 교류의 그림자
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 그리고 오늘의 서울
발굴조사원이 전한 현장의 온도 — 한 삽의 무게
유물발굴 성공 사례로 본 서울의 문화유산 복원
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 — 기억, 그리고 감동의 결
프롤로그첫 삽을 뜨던 순간 — 땅 아래서 들려온 목소리

1912년의 서울은 지금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인간의 손길이 깊게 닿아 있던 도시였어. 사당동 일대의 발굴조사가 처음 시작된 건 오래된 지도 한 장과 몇 줄의 기록에서였어. 700필지, 1,849,327제곱미터. 숫자만 봐도 어마어마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숨결이 녹아 있었어.
유적발굴 현장에서 삽이 흙을 가를 때마다 들려오는 딱 하는 소리. 그건 단단한 돌이 아니라 과거의 신호야. 문화재 발굴조사원들은 그렇게 한 삽 한 삽을 뜨며 과거로 내려가. 그들이 찾은 건 단순한 유물발굴의 결과가 아니라 도시의 뿌리야.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www.seoulheritage.org)가 사당동의 기록을 다시 꺼내 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
11912년 사당동의 풍경 — 논, 밭, 산, 그리고 마을

당시 사당동의 풍경은 평화로웠어. 넓은 들판과 산이 맞닿은 곳에 논과 밭이 촘촘히 자리했어. 논이 293필지 1,037,201제곱미터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어. 이는 단순한 농업 지역이 아니라 서울의 식량 기반을 지탱한 중심지였다는 뜻이야. 이곳에서 자란 곡식은 한양 도성 안까지 실려 들어갔어.
700
총 필지 수
1,849,327
총 면적(제곱미터)
331
밭 필지(최다)
293
논 필지
지목 구분 | 필지 수 | 면적(제곱미터) | 비고 |
논 | 293필지 | 1,037,201 | 서울 식량 기반 |
밭 | 331필지 | 484,868 | 가장 많은 필지 |
임야 | 기타 | 176,552 | 마을의 방패 |
대지 | 33필지 | 61,537 | 농업 중심 생활공간 |
서울 남부 농경지 필지 수 비교
서초동
1,179필지
사당동
700필지
방배동
651필지
잠원동
142필지
대지는 단 33필지 61,537제곱미터에 불과했어. 즉, 사당동은 주거보다 농업 중심의 생활공간이었어. 오늘날의 빽빽한 주택가와 비교하면 그 시절의 사당동은 하늘이 더 넓고 바람이 더 깊게 불던 마을이었어.
2사당동을 이뤘던 사람들 — 성씨로 본 토지 소유의 흔적
사당동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땅이었어. 기록에 따르면 이씨가 144필지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했어. 그 뒤를 강씨 114필지, 정씨 88필지, 김씨 76필지, 홍씨 43필지가 이었어.
이씨
144필지
강씨
114필지
정씨
88필지
김씨
76필지
홍씨
43필지
프랑스인
19필지
선교 거점 추정
강씨 114필지 — 이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강씨
서초동 방배동에서는 이씨·박씨·허씨가 주로 등장했어. 그런데 사당동에서는 강씨가 114필지로 2위야. 진주 강씨, 신천 강씨 등 남부 지역에 뿌리를 둔 강씨 집안이 동작구 일대에 집중 분포했을 가능성을 보여줘.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통해 이들 마을의 중심이 어디였는지가 점차 밝혀지고 있어. 이것이 바로 문화재 발굴의 묘미야. 단순히 유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을 찾는 일이거든.
3낯선 이름, 프랑스인의 땅 — 제국과 교류의 그림자

흥미롭게도, 사당동에도 외국인의 이름이 등장해. 프랑스인이 19필지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거야. 방배동 편에서 프랑스인 31필지를 다뤘었는데, 이번엔 이웃 사당동에서도 프랑스인 19필지가 나왔어. 우연이 아니야.
방배동·사당동 연속 등장하는 프랑스인 — 서울 남부 선교 벨트
방배동 31필지, 사당동 19필지. 합산하면 50필지. 이 두 이웃 마을에서 프랑스인 토지가 연속으로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 남부 한강 이남 구릉지를 전략적으로 선택했어. 방배동 성당에서 사당동까지 이어지는 언덕길은 선교사들의 순례 경로이자 생활 반경이었을 거야. 1912년은 일제강점기였지만 프랑스는 조선과 별도 조약 관계를 유지하며 종교·외교 활동을 이어갔어. 그 거점이 바로 이 두 동네였던 거야.
1912년이라면 일제강점기의 초입이야. 서울의 외국인 토지 소유는 매우 드문 일이었어. 이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녀. 사당동의 토지 구조는 이미 그 시절부터 국제적이었던 셈이야.
4문화재 발굴과 지표조사, 그리고 오늘의 서울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캐내는 일이 아니야.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의 재개발, 도로 확장, 건축 공사 속에서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이는 과거를 지키는 마지막 방패이자 미래를 위한 데이터 축적이야.
특히 사당동처럼 오래된 마을 구조를 가진 지역에서는 지표조사를 통해 건물 아래 묻힌 생활층과 도로 흔적이 재확인돼. 이는 건설 과정에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문화자산이야. 700필지라는 광활한 농경지대가 지금의 빽빽한 주택가로 바뀌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흔적이 사라졌을지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기록하는 것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와.
5발굴조사원이 전한 현장의 온도 — 한 삽의 무게

한 발굴조사원이 이렇게 말했어. 우리가 하는 일은 역사를 깨우는 일입니다.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너진 지층 속에서 작은 조각 하나를 찾기 위해 하루를 보내. 그 조각 하나가 서울의 역사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야.
문화재 발굴작업은 고된 체력과 세밀한 감각을 동시에 요구해. 현장에서 그들의 손끝은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더듬어. 사당동의 논밭 지층에서 나오는 흙의 냄새, 경작층과 생활층이 바뀌는 색의 변화. 발굴조사원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통해 시대를 읽어내. 그 경계 위에 우리가 서 있어.
6유물발굴 성공 사례로 본 서울의 문화유산 복원
성공 사례 01 — 광화문광장 조선시대 도로 흔적
광화문광장 재정비 과정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도로 흔적. 왕의 행차길이 지하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 이 발굴 결과는 광화문광장 설계에 직접 반영됐어.
성공 사례 02 — 종로 일대 한양도성 잔재
종로 일대에서 한양도성의 잔재가 발굴됐어. 이 구간은 현재 서울 도성 역사 탐방로로 연결되어 시민들이 직접 역사를 걸으며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됐어.
성공 사례 03 — 신길동 선사시대 토기층 발굴
신길동 유적발굴에서 드러난 선사시대 토기층은 서울이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라는 걸 증명했어. 이 발굴은 한강 남부 선사 문화권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됐어.
사당동의 조사 또한 앞으로 이러한 성과로 이어질 거야. 한 필지의 흔적이, 한 사람의 이름이, 서울의 또 다른 시간을 열어줄 거야.
에필로그우리가 지켜야 할 이유 — 기억, 그리고 감동의 결

사당동의 700필지는 단순한 토지 데이터가 아니야. 그 안에는 이름이 있고 땀과 눈물이 있어. 이씨, 강씨, 정씨,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삶이 지금의 도로, 골목, 건물 속에 녹아 있어. 문화재 발굴은 과거를 캐내는 일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야.
우리가 지키는 것은 돌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씨 144필지, 강씨 114필지, 정씨 88필지.그들이 논을 갈고 밭을 일구던 그 땅에프랑스 선교사가 19필지를 가꾸고 있었어.언젠가 사당동의 또 다른 삽자루 아래서한 점의 유물이 빛을 발할 거야.그 순간, 우리는 과거와 다시 연결돼.그리고 깨닫게 돼.우리가 지키는 건 돌이 아니야.사람이야.이 일에 참여하는 모든 발굴조사원의 손끝에서서울의 기억은 매일 새롭게 깨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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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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