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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구로구 천왕동의 역사와 지표조사, 문화재 발굴조사

  • 2025년 7월 1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2일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 아래,100년 전엔 논물이 출렁였다.

1912년 구로구 천왕동 — 256필지, 66만㎡ 땅이 품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문화재 지표조사가 되살리는 잊혀진 기억


목차

1.한눈에 보는 1912년 구로구 천왕동의 풍경

2.논밭과 임야, 그리고 잡종지 — 땅이 들려주는 시대의 이야기

3.집과 무덤, 삶과 죽음의 흔적

4.천왕동에 살았던 사람들 — 땅과 성씨로 본 역사

5.왜 지금 이 이야기가 중요한가

6.문화유산 보존의 첫걸음,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7.서울 문화재 시굴조사와 발굴조사, 어떻게 의뢰할까

8.성공적인 지표조사 사례 — 천왕동이 증명하다

9.당신의 땅에도 숨겨진 역사가 있다

10.마무리 —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지킬 수 있다


1. 한눈에 보는 1912년 구로구 천왕동의 풍경



1912년, 구로구 천왕동. 지금은 지하철 7호선이 지나고,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선 이 동네가 당시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총 256필지, 약 66만 제곱미터. 서울 도심 한 귀퉁이가 이 정도 면적이라면 지금의 감각으로는 거대한 농경지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총 면적

660,000㎡

256필지 — 서울 도심 속 광활한 농경지대

논 (전체 1위)

336,000㎡

113필지, 전체의 약 51%

112필지

논과 합산 시 전체 면적의 약 80%

대지·분묘·잡종지

84,070㎡

삶과 죽음이 공존하던 공간

논이 113필지, 약 33만 6천 제곱미터였고 밭이 112필지였다. 이 둘만 합쳐도 천왕동 전체 면적의 80% 가까이를 채웠다. 나머지는 임야 2,961㎡, 잡종지 67,729㎡, 대지 14,780㎡ 정도였다. 사람이 실제 집을 짓고 살던 대지는 고작 13필지에 불과했다. 오늘날 이 동네 아파트 단지 하나의 면적에도 못 미치는 주거 공간 위에서, 수십 가구가 논밭을 일구며 살았던 것이다.


2. 논밭과 임야, 그리고 잡종지 — 땅이 들려주는 시대의 이야기

넓은 논이 햇볕에 반짝이던 풍경을 상상해보자. 이른 새벽, 이슬이 채 마르기 전에 논두렁을 걷는 농부의 발자국. 밭에서는 호미를 든 손이 고된 노동 속에서도 리듬을 탔다. 산자락에는 나무가 울창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천왕동의 풍경도 색을 달리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잡종지다. 14필지, 약 6만 7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땅들은 용도가 딱 잘라 정해지지 않은 공간이었다. 마을 공동 창고였을 수도 있고, 임시 거주 공간이나 나무 저장소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이던 마당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잡종지는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특히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문헌이나 지도만으로는 그 쓰임새를 알 수 없고, 실제 현장을 발로 뛰며 확인해야 비로소 진짜 역사가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3. 집과 무덤, 삶과 죽음의 흔적



13필지의 대지. 단 13개의 집터 위에서 천왕동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졌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저녁이면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았다. 그 집터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지금도 땅속 어딘가에 온돌 구조물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묘지. 단 한 필지, 1,560㎡지만 이 숫자가 담고 있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무덤은 단순히 한 사람이 죽었다는 표식이 아니다. 특정 시대, 특정 가문, 특정 지역 문화가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증거다. 묘지 하나가 발굴되어 해당 지역 전체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사례는 고고학의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 천왕동의 그 1,560㎡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아직 아무도 꺼내보지 않았다.


4. 천왕동에 살았던 사람들 — 땅과 성씨로 본 역사

최씨

55필지

한씨

50필지

김씨

35필지

배씨

22필지

이씨

22필지

최씨 55필지, 한씨 50필지, 김씨 35필지, 배씨와 이씨가 각각 22필지. 이 외에도 안씨, 노씨, 조씨, 피씨, 하씨 등 여러 성씨들이 이 마을에 터를 잡았다. 단순한 이름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이 데이터는 사실 당시 천왕동의 사회 구조와 권력 지형을 보여주는 귀한 기록이다.

가장 많은 땅을 가진 최씨가 마을에서 어떤 위상이었는지, 한씨와 최씨 사이에 혼인 관계가 있었는지, 배씨와 이씨는 같은 마을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이런 질문들의 답이 땅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유물 하나, 문서 조각 하나가 이 관계망 전체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래서 발굴이 필요하다.


5. 왜 지금 이 이야기가 중요한가

지금 우리는 빠르게 도시화된 세상에 산다. 눈에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 아스팔트, 유리 건물뿐이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수백 년 전의 층위가 쌓여 있다. 천왕동처럼 농경 문화가 깊게 박힌 동네일수록, 땅속 어딘가에 우리가 미처 꺼내보지 못한 역사가 잠자고 있다.

더 급박한 문제가 있다. 바로 재개발이다. 서울 어느 동네든 재개발 계획이 세워지면 삽부터 들어간다. 지표조사 없이 굴착이 시작되는 순간, 1912년의 기억은 산산조각 난다. 천왕동 최씨 집안의 대청마루 흔적도, 한씨 가문의 분묘도, 배씨 집안이 쓰던 청자 그릇도 콘크리트 아래 영원히 묻히게 된다. 이게 지금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다.


6. 문화유산 보존의 첫걸음, 문화재 지표조사란 무엇인가



문화재 지표조사는 개발 행위가 시작되기 전에 해당 부지의 역사적·고고학적 가치를 사전에 확인하는 절차다.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에는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쉽게 말하면, 삽을 들이붓기 전에 이 땅 아래에 무언가가 잠들어 있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다.

지표조사는 문헌 자료 검토에서 시작해 현장 답사, 지표 채집 순으로 이어진다. 조사원들이 직접 발로 걸으며 땅 위에 노출된 유구나 유물의 흔적을 살피고, 지역의 역사 기록과 비교해 종합 판단을 내린다. 이 단계에서 유물 존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표본조사(전체 면적의 2% 이내)와 시굴조사(10% 이내)로 단계가 올라간다. 그리고 시굴조사에서 유적이 확인되면 비로소 정밀 발굴조사로 이어진다.

지표조사 → 표본조사(2% 이내) → 시굴조사(10% 이내) → 정밀 발굴조사.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결과에 따라 진행 여부가 결정된다. 소규모 건축의 경우 국비 지원을 통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국가유산청 협업포털(e-minwon.go.kr)에서 신청 가능하다.


7. 서울 문화재 시굴조사와 발굴조사, 어떻게 의뢰할까



서울에서 땅을 개발하거나 건물을 지을 계획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해당 구청 문화재 담당 부서에 문의하는 것이다. 부지 면적과 건축 용도에 따라 지표조사 의무 여부가 결정되고, 필요하다면 문화재청에 등록된 전문 조사기관에 연결해준다.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seoulheritage.org)처럼 서울 지역에 특화된 기관은 고고학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지표조사부터 보고서 작성, 국가유산청 허가 취득까지 전 과정을 일괄 담당한다. 절차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경험 많은 전문기관과 함께하면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 소규모 건물의 경우 한국문화재재단을 통해 국비 지원을 받아 비용 부담을 크게 낮출 수도 있다. 먼저 알아보고 움직이는 것이 시간과 비용 모두 아끼는 길이다.


8. 성공적인 지표조사 사례 — 천왕동이 증명하다



천왕동 일대 신축 공사가 계획된 부지에서 사전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을 때, 아무도 뭔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서울 외곽의 땅이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달랐다. 조선시대 주거지 흔적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나왔고, 고인돌과 유사한 형태의 석재 배치도 발견됐다.

이 결과가 알려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사 일정이 조정되고, 문화재청의 정밀 검토가 이어졌다. 이 일대가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냥 평범한 땅"이 하루아침에 역사의 현장이 된 것이다. 만약 지표조사 없이 굴착기가 먼저 들어갔다면 이 모든 것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조사 하나가 역사를 지켰다.


9. 당신의 땅에도 숨겨진 역사가 있다

서울에 땅이 있는가. 혹은 서울 어딘가에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질문을 한 번쯤 던져보길 바란다. 그 땅 아래, 과연 아무것도 없을까. 천왕동의 최씨 55필지가 그랬듯, 당신의 땅 역시 한때 누군가의 삶이 깃든 공간이었다.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당신의 개발 계획을 막는 절차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와 마주할 특별한 기회이고, 당신의 땅이 가진 더 깊은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지표조사를 통해 유물이 발견된 부지는 문화재 활용 공간으로 재탄생해 지역 브랜드와 부동산 가치 모두를 높인 사례가 실제로 있다. 역사가 자산이 되는 시대다.


10. 마무리 —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지킬 수 있다



1912년 천왕동 토지조사부 기록은 우연히 살아남은 서류가 아니다. 당시 누군가가 256필지 하나하나를 정성껏 기록했기에 지금 우리가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최씨의 55필지, 한씨의 50필지, 분묘지의 1,560㎡, 잡종지의 67,729㎡. 그 숫자들 속에 사람이 있고, 삶이 있고, 역사가 있다.

문화재는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뿌리다. 우리가 지금 이 땅을 파기 전에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그 고개 숙임의 실천이다. 서울 어딘가의 땅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첫 번째 행동이 삽이 아닌 조사여야 한다는 것. 그게 이 도시를, 이 역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100년 전 천왕동의 논에서 씨앗을 심던 손이 있었다. 그 손의 기억을 꺼내는 것이 오늘 우리의 일이다.

문화재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 의뢰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 seoulheritage.org


국가유산청 협업포털 → e-minwon.go.kr


소규모 국비 지원 발굴 → 한국문화재재단 연계


구로구 관할 문화재 담당 → 구청 문화관광과 문의

"흙 한 줌이 역사 한 페이지다.그 페이지를 덮기 전에, 먼저 읽어라.천왕동이, 강남이, 서울 전체가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 seoulheritage.org | 국가유산청 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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