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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헤이그로 떠난 밀사와 111년 뒤 열린 핫라인 — 외교의 두 얼굴
HISTORY OF TODAY · 역사속 오늘 4월 20일 헤이그로 떠난 밀사, 그리고 무너진 핫라인 이전의 침묵 이준 헤이그 특사 파견(1907)과 남북정상 핫라인 개통(2018), 111년의 시차 1907년 4월 20일, 고종의 밀사 이준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떠났습니다. 대한제국의 외교적 목소리를 세계에 전하려는 마지막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11년 뒤인 2018년 4월 20일,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이 개통되며 두 정상이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습니다.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했던 시대와, 전화선 하나로 정상 간 대화가 가능해진 시대 — 4월 20일에 겹친 외교의 두 풍경을 살펴봅니다. 📑 목차 1. 한국사·세계사 사건 한눈에 보기 2. 핵심 사건 깊이 읽기 4選 3. 스토리텔링 – 1907년 4월 20일, 헤이그로 떠나는 밀사 4. 한 줄 인용 요약 5. 수업·블로그 활용 아이디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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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독립협회가 신문을 만들고 헤이그 밀사가 숨을 거두었다
HISTORY OF TODAY · 3월 2일 독립협회가 신문을 만들고, 헤이그 밀사가 숨을 거두었다 이승만·양홍묵 경성신문 창간, 헤이그 밀사 이상설 사망, 광해군 사르후 전투, 안중근 단지동맹, 호주제 폐지 1898년 3월 2일, 독립협회의 이승만과 양홍묵이 《경성신문》을 창간했습니다. 대한황성신문의 전신으로 한국인이 만든 민간 신문이었습니다. 19년 뒤인 1917년 같은 날, 헤이그 밀사 이상설이 연해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타지에서 눈을 감은 이상설은 유언으로 "내 뼈를 고국 땅에 묻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문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려 했던 날과, 목소리를 빼앗긴 채 이국에서 숨을 거둔 날이 같습니다. 📑 목차 한국사 속 3월 2일 —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세계사 속 3월 2일 — 알렉산드르 2세 농노 해방령, 콩코드 첫 비행 깊이 읽기 ① 광해군 사르후 전투와 강홍립 투항 (1619) 깊이 읽기 ② 경성신문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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