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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의사(醫師)가 서고 의사(義士)가 총을 쐈다 — 한국사 총정리
HISTORY OF TODAY · 3월 28일 의사(醫師)가 서고, 의사(義士)가 총을 쐈다 관립 의학교 설립, 의열단 김익상의 의거, 추기경 김수환 서품,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1899년 3월 28일, 지석영이 이끄는 관립 의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근대식 의료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3년 뒤인 1922년 같은 날, 의열단원 김익상이 상하이 황포탄에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했습니다. 병을 고치는 의사(醫師)와, 의로움으로 총을 든 의사(義士)가 같은 날짜에 기억됩니다. 3월 28일, 그 이름들의 이야기입니다. 📌 역사속 오늘 3월 28일, 의사(醫師)가 서고 의사(義士)가 총을 쐈다 — 한국사 총정리 [오늘의 역사] 3월 28일 — 관립 의학교 설립, 의열단 의거, 추기경 서품 지석영의 의학교에서 김익상의 총까지, 3월 28일의 기록 이자겸의 난부터 스리마일 원전 사고까지, 3월 28일 한국사·세계사 총정리 수능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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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김익상이 일본군 대장을 저격하고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 날
HISTORY OF TODAY · 2월 6일 의열단 김익상이 일본군 대장을 저격하고,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 날 김익상 저격 의거, 영국 30세 이상 여성 참정권, 집적회로 특허, 뉴질랜드 독립, 한국계 하인스 워드 MVP 1922년 2월 6일, 의열단원 김익상이 상해에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저격했습니다.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무장 독립 투쟁의 결연함을 보여준 의거였습니다. 30년 뒤인 1952년 같은 날,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했습니다. 절박한 저항의 총소리와, 새로운 여왕의 즉위가 같은 2월 6일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목차 한국사 속 2월 6일 —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세계사 속 2월 6일 — 영국 여성 참정권, 집적회로 특허, 뉴질랜드 독립, 엘리자베스 2세 즉위 깊이 읽기 ① 의열단 김익상 저격 의거 (1922) 깊이 읽기 ② 미소 공동위원회 설치 합의 (1946) 깊이 읽기 ③ 영국 30세 이상 여성 참정권 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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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오늘의 역사 — '대한'이라는 이름이 태어난 날 (대한제국 국호 결정)
역사속 오늘 · ON THIS DAY IN HISTORY 10월 11일 양력 10월 11일 · 음력 9월 1일 (2026년 기준) "이름을 짓는 날, 이름을 지키는 날" 1897년 이날 '대한(大韓)'이라는 이름이 태어났다. 1938년 이날 나라 잃은 청년들이 조선의용대라는 이름을 걸고 총을 들었고, 1996년 이날 대한민국은 OECD에 이름을 올렸다. 10월 11일은 '나라의 이름'이 지어지고, 지켜지고, 증명된 날이다. '대한민국'의 '대한' — 이 두 글자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아시나요? 바로 오늘, 10월 11일입니다. 1897년 10월 11일, 고종은 신하들과 마주 앉아 새 나라의 이름을 논의했습니다. 그날 결정된 두 글자 '대한(大韓)'은 이후 대한제국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으로 129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의 달력을 더 넘겨보면, 이순신이 진도 앞바다에서 왜선을 격파한 날이자,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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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에서 부대로 — 10월 10일 역사속 오늘 총정리
역사속 오늘 · 10월 10일 의(義)로 죽은 날,의(義)가 태어난 날 1928년 10월 10일 조명하 의사가, 1932년 10월 10일 이봉창 의사가 일제의 형장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리고 1938년 10월 10일, 김원봉은 중국 한커우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했습니다. 딱 10년 사이 — 같은 날짜 위에서 의열 투쟁의 죽음과 탄생이 교차합니다. 목숨을 내려놓은 사람들과, 그 자리에서 총을 들어 올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양력 10월 10일 · 1721년 기준 음력 8월 20일 · 오늘의 한자 義(옳을 의) 달력의 같은 칸에서 세 개의 이름이 만납니다. 1928년 10월 10일, 대만에서 일왕의 장인을 처단한 조명하 의사가 순국했습니다. 4년 뒤 같은 날인 1932년 10월 10일,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6년 뒤인 1938년 10월 10일 — 김원봉이 중국 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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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사과가 출판된 날, 한국 청년이 최루탄에 쓰러졌다 — 7월 5일의 역설
역사속 오늘 7월 5일, 사과나무와 총성이 공존한 날 뉴턴의 만유인력·헤이그 특사·이한열 사망·민족혁명당 — 과학과 저항이 교차한 하루 도입부 1687년 7월 5일, 아이작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판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시작된 사유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완성된 날이다. 정확히 300년 뒤인 1987년 같은 날, 연세대학교 앞 거리에서 이한열(당시 21세)이 끝내 눈을 감았다. 민주화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 파편에 맞아 27일을 투병하다 숨진 것이다. 사과가 중력을 발견하게 했고, 최루탄이 민주주의를 앞당겼다. 7월 5일은 세상의 법칙을 찾아낸 과학자와 세상의 부당함에 맞선 사람들이 함께 기록된 날이다. 목차 한국 전근대사 주요 사건 표 한국 근현대사 주요 사건 표 세계사 주요 사건 표 핵심 사건 4개 심층 분석 스토리텔링 — 이한열, 1987년 여름의 청년 인용용 요약 박스 수업·블로그 활용 문구 5개 관련 키워드·해시태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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