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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주성동, 1912년의 땅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목차


  1. 100년 전 서울, 주성동의 얼굴을 상상해보자

  2. 37채의 집, 그리고 2기의 무덤이 전하는 삶과 죽음

  3. 땅의 용도, 땅의 주인

  4. 사라진 성씨들, 남겨진 지명들

  5.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6. 문화유산 발굴, 땅 아래 숨겨진 진실을 찾는 여정

  7. 서울 지역 지표조사·시굴조사의 오늘

  8. 진짜 성공 사례 : 발굴이 바꾼 도시계획

  9. 당신의 땅에도 역사가 숨 쉬고 있다

  10. 마무리하며 – 이제 우리가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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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그곳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금의 서울 용산구 주성동, 수많은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선 이 땅에

113년 전엔 몇 채의 집이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단 37채의 집이 전부였습니다.


그 옆엔 두 기의 무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조용한 산과 넓은 밭, 그리고 단 한 필지의 마을 공동 땅이 있었습니다.

한 눈에 그려지는 시골 마을 풍경 같지 않나요?


하지만 이 소박한 마을은

일제강점기의 시작점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1. 100년 전 서울, 주성동의 얼굴을 상상해보자


1912년, 서울은 아직 ‘경성’이라 불리던 시절.

용산은 지금처럼 군부대와 외국 대사관, 고급 아파트들이 있던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주성동만 해도 전체 면적이 62필지, 약 59,487㎡.

요즘 기준으로 보면 축구장 여섯 개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동네였습니다.


그 안에 있었던 건,

37필지의 대지(집터), 2필지의 분묘지(무덤), 1필지의 사사지(사당터),

2필지의 임야(산), 20필지의 전(밭).


그 풍경은 지금의 용산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죠.




2. 37채의 집, 그리고 2기의 무덤이 전하는 삶과 죽음


1912년 당시, 이 마을엔 약 13,785㎡의 대지에 집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대부분 초가집이거나 기와집 한 채로 구성된 소규모 거주지였을 것입니다.


반면, 2필지 2,168㎡ 규모의 분묘지가 있다는 건

이 동네 사람들의 삶이 이곳에서 끝났고,

그 죽음조차도 그 땅에 깊게 남아 있었다는 걸 말해줍니다.


마치 가족의 연이 끊기지 않도록 조상 묘를 곁에 두고 살던 우리네 정서처럼요.




3. 땅의 용도, 땅의 주인


놀라운 사실은 이 마을 대부분의 땅이 밭이었다는 점입니다.

무려 30,238㎡,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경작지였어요.


서울 한복판이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 있지만,

그 시절엔 ‘땅’은 곧 ‘생존’이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땅엔 다양한 주인들이 있었습니다.

김씨가 17필지, 이씨가 12필지를 소유했고,

그 외에도 몇몇 성씨들이 땅을 나누어 갖고 살았습니다.




4. 사라진 성씨들, 남겨진 지명들


지금 주성동 거리에서 ‘김씨 댁’이나 ‘이씨네 밭’을 찾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토지대장을 들여다보면 분명 존재했던 사람들이죠.


그들은 이 땅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고, 조상을 모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땅에서, 지도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는 중요합니다.

그들의 흔적을 다시 땅에서 꺼내주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5.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바로 동척,

즉 동양척식주식회사였습니다.


이 회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땅을 헐값에 수탈하고,

거기서 이윤을 뽑아내던 조직이었죠.


1912년 주성동에도 2필지의 땅이 동척 소유였습니다.

그 면적은 작을지 몰라도, 의미는 절대 작지 않습니다.

이곳마저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




6. 문화유산 발굴, 땅 아래 숨겨진 진실을 찾는 여정


서울 어디를 파도 문화재가 나온다는 말, 괜한 말이 아닙니다.


주성동처럼 겉보기엔 흔한 동네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백 년 전의 흔적이 숨어 있죠.


이런 조사에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바로 지표조사 → 시굴조사 → 발굴조사입니다.


  • 지표조사는 눈에 보이는 흔적을 중심으로 조사합니다.

  • 시굴조사는 일부만 파보는 표본 조사.

  • 발굴조사는 실제로 전면 파내는 작업이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과거가 되살아납니다.




7. 서울 지역 지표조사·시굴조사의 오늘


서울시 문화재 조사 전문기관인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연구원 같은 곳에서는

이런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시 재개발, 도로 확장, 신축공사 전에는 반드시

문화재 조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점점 더 그 수요가 늘고 있죠.


특히 용산처럼 개발 압력이 높고, 역사적인 유산이 많은 지역일수록

지표조사는 필수 중의 필수입니다.




8. 진짜 성공 사례 : 발굴이 바꾼 도시계획


실제 사례 하나 소개할게요.


서울시 모 지역에서 재개발 전 지표조사를 실시하던 중

조선 초기의 가옥터와 우물, 생활도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이 조사를 통해

그 지역의 일부가 문화유산 보호구역으로 전환됐고,

전체 도시계획도 일부 수정되었죠.


누군가는 “그 땅 때문에 일이 늦어졌다”고 불평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서울 한복판에서 조상의 흔적을 지켜냈다”며 감동했습니다.




9. 당신의 땅에도 역사가 숨 쉬고 있다


혹시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혹은 개발하려는 그 땅에도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모릅니다.


  • 그 밭은 조선시대 어떤 이의 생계를 책임졌을까요?

  • 그 무덤은 어느 집안의 조상이었을까요?

  • 그 사당은 어떤 인물을 기리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확인하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영영 땅 속에 묻혀버릴지도 모릅니다.




10. 마무리하며 –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지금 서울의 땅은 그저 비싼 부동산으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 어쩌면 천 년의 시간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시간을 깨우는 일.

그게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할 기관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연구원,

당신의 땅에 숨은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끌어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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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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