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용산구 이태원동에 묻힌 땅의 기억을 파헤치다
- 서울 HI
- 9월 5일
- 3분 분량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드러난 놀라운 사실들
목차
1. 이태원의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
2. 1912년, 이태원동의 숨겨진 지형
3. 논, 밭, 무덤까지… 잊힌 땅의 쓰임새
4. 누가 이 땅을 가졌는가: 성씨별 소유현황
5. 일본인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6. 왜 이 자료가 지금 중요한가
7. 서울 문화재 지표조사의 중요성과 실제 사례
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문화유산의 가치
9. 서울시 문화유산 조사, 어디에 맡겨야 할까?
10. 마무리: 땅은 기억한다, 우리는 그것을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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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태원, 지금은 세계의 거리지만, 100년 전에는 누군가의 논이었고 밭이었으며 무덤이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화려한 네온과 다양한 국적의 언어가 뒤섞인 이 거리의 과거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태원의 땅에는 무려 460필지, 총 700,049㎡에 이르는 땅의 기억이 남아 있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전국 토지를 조사하면서 남긴 기록 속 이태원동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도시의 성장 이면에 숨겨진 문화유산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그것은 서울시가 지표조사를 통해 밝히는 **‘땅의 역사’**이며, 문화유산 발굴의 출발점이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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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의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
1912년 당시 이태원동의 토지 사용 내역을 들여다보면 마치 시간의 층을 파헤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밭이 260필지, 무려 563,949㎡.
이태원의 땅 절반 이상이 밭이었다.
대지는 171필지 77,253㎡로, 주거지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논은 단 6필지, 8,542㎡.
당시 이 지역은 논보다는 밭으로 활용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게다가 놀라운 점은 분묘지, 즉 무덤이 19필지, 32,730㎡나 된다는 것이다.
이 땅 위에는 조용히 잠든 조상들의 흔적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보통 ‘도시’하면 고층 빌딩과 도로만을 떠올리지만, 이 기록은 그 땅 아래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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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땅을 가졌는가: 성씨별 소유현황
그 시절, 이태원에 가장 많은 땅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가장 많은 필지를 소유한 성씨는 이씨로 76필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김씨(69필지), 정씨(37필지), 박씨(23필지) 등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양씨, 노씨, 장씨, 주씨 같은 성씨들도 여러 필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이태원이 특정 씨족의 터전이 아닌, 다양한 집안이 모여 살았던 다층적 구조의 마을이었음을 시사한다.
그 다양성은 지금의 글로벌 타운 이태원의 성격과도 어딘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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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림자
그러나 이 기록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인 소유 토지가 43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가 36필지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조선의 토지를 빼앗고 개발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기관이다.
이들이 이태원에도 손을 뻗쳤다는 건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유산 침탈의 시작이었다.
이들 필지는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명분으로 넘어갔을까?
지금 이 정보를 바탕으로 발굴조사나 지표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과정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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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자료가 지금 중요한가
이 기록은 단지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재 보호와 조사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다.
문화재 지표조사란, 개발 예정 지역에서 문화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 조사다.
이런 조사는 그냥 ‘형식적’으로 진행되어선 안 된다.
이태원의 사례처럼 땅 아래에 수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곳은 개발이 아닌 보존의 대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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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재 지표조사의 실제 사례: 종로구 A구역 시굴조사 이야기
2021년, 종로구의 한 개발 예정 부지에서 지표조사 중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면서 시굴조사로 전환되었다.
조사 결과, 해당 지역은 고려~조선 초기까지의 도자기 가마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개발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고, 문화재 보존을 전제로 한 재설계가 진행됐다.
이처럼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는 도시 개발과 문화유산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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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문화유산의 가치
문화유산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정서, 풍습이 담긴 살아 있는 기록이다.
이태원의 지표조사는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특히 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서울에서는, 단 하나의 기록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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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유산 조사, 어디에 맡겨야 할까?
정확하고 정밀한 문화유산 조사를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을 찾아야 한다.
서울에서는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처럼 공공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기관이 최적의 선택이다.
• 서울 전 지역 지표조사, 시굴조사, 발굴조사 가능
• 허가·보고·보존 등 문화재청 절차 일괄 대행
• 지역사 조사 및 전시 콘텐츠 제작도 가능
개발을 앞두고 있다면, 먼저 이태원의 기록을 떠올려야 한다.
지금의 당신 땅도, 과거에는 누군가의 터전이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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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땅은 기억한다, 우리는 그것을 되살려야 한다
서울은 새로운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기억의 도시다.
지금의 이태원도, 무언가를 허물고 새롭게 세운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죽음, 애환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그 땅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리는 지표조사를 하고 발굴조사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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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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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문화유산 발굴 조사 https://www.seoulherita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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