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동대문구 제기동, 그 땅에 숨겨진 이야기
- 2025년 4월 22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4일
서울 문화유산 발굴조사문화재 발굴문화재 지표조사제기동 역사동대문구 문화유산
지금 동대문구 그 빌딩 아래, 100년 전엔 벼가 출렁이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1912년 제기동의 땅 이야기
잠깐, 이 한 문장만 읽고 멈춰보세요.
1912년 제기동, 274필지 708,403㎡의 이 땅에서 누군가 아침마다 논으로 나섰습니다.
김씨가 벼를 돌보고, 이씨가 밭을 매고, 조씨 할머니가 저녁밥을 짓던 그 자리가
지금 당신이 지나치는 그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 있습니다.
그 이야기,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목차
1.1912년 제기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2.논 — 마을의 심장, 생명의 논두렁
3.밭 — 식탁을 채운 땅, 희망을 키운 흙
4.집과 산 — 사람들이 뿌리내린 터전
5.김씨, 이씨, 조씨 — 이 땅을 지킨 사람들의 이름
6.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 땅속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
7.성공 사례 — 기록이 역사를 살린 순간들
8.제기동이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말

1. 1912년 제기동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동대문구 제기동. 지금은 경동시장과 한약 골목으로 이름난 서울의 오래된 동네입니다. 약재 냄새가 골목을 타고 흐르고,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가 이른 아침부터 거리를 채웁니다. 하지만 딱 113년 전, 이곳의 풍경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1912년, 제기동은 274필지, 708,403㎡의 광활한 땅이었습니다. 면적으로 보면 축구장 약 100개를 합쳐놓은 크기입니다. 그 넓은 땅의 대부분이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멀리에는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고, 조용한 언덕 어딘가에는 조상들의 무덤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기록은 서울문화유산 발굴조사 기관 seoulheritage.org가 서울 25개 구 전체의 1912년 역사 지적 데이터를 하나씩 정리하는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그 숫자 뒤에는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땀과 꿈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숫자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274
총 필지 수
708,403
총 면적 (㎡)
약 100개
축구장 환산 크기
113년
땅속에 잠든 시간
2. 논 — 마을의 심장, 생명의 논두렁
1912년 제기동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것은 논이었습니다. 71필지, 419,644㎡. 전체 면적의 절반을 훌쩍 넘는 이 논이 제기동의 심장이었습니다. 지금의 동대문구 어딘가에 이렇게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게 1912년의 현실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제기동의 논에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들이 허리를 굽히고 모를 심으며 한 해의 농사를 시작했겠죠. 여름 장마가 지나면 논은 초록빛으로 가득 찼고, 가을이 되면 황금빛 벼 이삭이 바람에 출렁였습니다. 그 수확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며 마을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논은 단순한 농경지가 아니었습니다. 마을의 중심이었고,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생명줄이었습니다. 가뭄이 오면 온 마을이 함께 물을 끌어오고, 병충해가 번지면 서로 손을 보태며 논을 지켰습니다. 419,644㎡의 이 논에서 흘린 땀방울 하나하나가 지금의 동대문구를 있게 한 토대였습니다.

3. 밭 — 식탁을 채운 땅, 희망을 키운 흙
제기동에는 논 못지않게 넓은 밭이 있었습니다. 106필지, 237,544㎡. 지금의 동대문구에 이만한 밭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이 밭에서 고추, 배추, 무, 콩, 보리 같은 온갖 작물이 계절마다 바뀌며 자랐습니다.
밭일은 논농사보다 더 부지런함이 필요했습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병든 잎을 솎아내고, 수확하고, 다시 다음 작물을 준비하는 순환이 쉬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밭에서 갓 뽑아온 무로 김치를 담그고, 가을이면 배추를 절여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일이 제기동 여인들의 연례행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밭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억압의 시대에도, 땅을 갈고 씨앗을 심는 행위 자체가 내일을 믿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수확이 있는 한, 내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제기동의 밭은 먹을거리를 키운 것만이 아니라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함께 키웠습니다.
1912년 제기동 토지 구성 상세 요약
논 71필지 (419,644㎡) · 밭 106필지 (237,544㎡)
집터 89필지 (29,246㎡) · 산 8필지 (21,967㎡)
총 274필지 · 합계 708,403㎡ (축구장 약 100개 규모)
4. 집과 산 — 사람들이 뿌리내린 터전
논과 밭이 생존을 책임졌다면, 집과 산은 삶의 온기를 품은 공간이었습니다. 1912년 제기동에는 89필지, 29,246㎡의 대지가 있었습니다. 그 집터 위에 초가집과 기와집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습니다.
집 — 89필지, 29,246㎡
89채의 집이라고 단순하게 보면 안 됩니다. 그 집 하나하나에 가족이 있었습니다. 저녁이면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마당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아버지는 논에서 돌아와 첫 숟가락을 뜨며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손주들에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겠죠. 그 89채의 집에서 매일 반복된 그 평범한 일상이, 제기동이라는 마을을 살아있게 했습니다.
산 — 8필지, 21,967㎡
제기동 뒤편에는 8필지, 21,967㎡의 임야가 있었습니다. 이 산은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 방식으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겨울이면 땔감을 구하러 산을 올랐고, 봄이면 약초와 산나물을 캐러 다녔습니다. 동네 어귀에서 볼 수 있는 산의 능선은 마을의 든든한 울타리였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숨바꼭질하고 뛰어노는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게는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 쉼터였으며, 마을 전체에는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수호자였습니다.

5. 김씨, 이씨, 조씨 — 이 땅을 지킨 사람들의 이름
1912년 제기동의 토지 기록에는 이 땅을 일군 사람들의 성씨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김씨가 76필지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했고, 이씨가 25필지, 조씨와 홍씨가 각각 11필지, 한씨가 10필지로 뒤를 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이 마을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76필지를 소유한 김씨 집안. 제기동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가졌다는 건 그만큼 많은 책임도 졌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농번기엔 이웃에게 농기구를 빌려주고, 흉년이 오면 곳간을 열어 나눴겠죠. 25필지의 이씨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그 밭을 자식에게 또 물려주기 위해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났을 것입니다. 조씨와 홍씨, 한씨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 함께 손을 보태며 공동체를 지탱했겠죠.
이 성씨들은 기록 속의 글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묻힌 실제 사람들입니다. 제기동의 논두렁을 걷고, 밭고랑을 일구고, 집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눈빛들이 지금도 이 기록 안에 살아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예의입니다.

6. 문화재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 땅속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
그럼 이 기록이 지금 우리에게 왜 중요할까요. 113년 전의 토지 통계가 오늘날 서울의 도시 개발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사실 이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서울에서 건물을 신축하거나 지하를 굴착하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 법적으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문화재 지표조사입니다. 해당 부지의 지표면을 꼼꼼히 살펴 유물이나 유구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이 조사는 모든 발굴의 첫 관문입니다.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 시굴조사, 표본조사, 그리고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이어집니다.
이때 1912년의 토지 기록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됩니다. 제기동의 경우, 논이 71필지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리 아래 수백 년에 걸친 경작층이 남아있을 가능성을 알려줍니다. 89필지의 집터 아래에는 조선시대 생활용품이나 건물 기초가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정보 없이 굴착기를 들이대면, 수백 년의 역사가 흙먼지가 되어 사라질 수 있습니다.
seoulheritage.org가 제기동을 포함해 서울 전역의 1912년 기록을 하나씩 정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문화재 발굴 기관과 지자체, 개발 사업자가 함께 활용할 때 비로소 과거와 현재가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게 해주는 살아있는 지도입니다.
문화재 조사 4단계 — 순서가 곧 역사 보호다
지표조사 — 지표면 관찰로 유물·유구 흔적 파악. 모든 조사의 시작점.
시굴조사 — 소규모 굴착으로 지층 구조와 유물 유무 확인.
표본조사 — 구역 내 유물 분포를 체계적으로 파악.
본발굴조사 — 전면 발굴로 유적 기록 및 보존 방안 확정.
7. 성공 사례 — 기록이 역사를 살린 순간들
실제 현장에서 이 과정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보면, 기록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 1 — 서교동 재개발 현장
홍대 인근 서교동 재개발 공사 전, 연구진이 1912년 토지 기록을 먼저 검토해 집터와 논이 겹치던 지점을 특정했습니다. 시굴조사를 먼저 실시하자 조선시대 건물지와 전기 도자기, 삼국시대 토기까지 연속으로 출토되었습니다. 기록이 삽의 방향을 정한 결과, 귀중한 문화유산이 온전히 세상에 나왔습니다.
성공 사례 2 — 구로동 공원 조성 사업
구로구 구로동의 공원 조성 과정에서 1912년과 1920년대 토지 기록을 비교 분석해 과거 연못과 창고 자리임을 확인했습니다. 시굴조사에서 유구가 그대로 드러났고, 개발 사업자·지자체·문화재 발굴 기관이 협력해 유구를 보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 그 공원에는 100년 전 연못의 흔적이 공공 예술 작품으로 되살아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 3 — 행촌동 주거 재개발
종로구 행촌동 재개발 현장에서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를 단계별로 착실히 진행한 결과, 조선시대 주거 유구가 연속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우물 하나, 담장 기초 돌 하나, 도자기 파편 하나가 모여 하나의 시대를 복원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단계적 조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모범으로 지금도 현장에서 인용됩니다.
삽을 들기 전에, 기록을 먼저 펼쳐야 하는 이유
세 사례 모두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공사 전에 기록을 확인하고,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충분히 거친 뒤 발굴에 착수했다는 것. 이 순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수백 년의 역사가 하루 만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1912년 제기동 기록도 바로 그 방패막이가 될 수 있습니다.

8. 제기동이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말
1912년 제기동의 김씨, 이씨, 조씨는 자신들의 이름이 113년 뒤에도 누군가에게 읽힐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냥 살았습니다. 해가 뜨면 논으로 나가고, 비가 오면 밭을 지키고, 저녁이면 가족과 밥을 먹으며 하루를 닫았습니다. 그 평범하고 묵묵한 하루하루가 쌓여 제기동이 되었고, 동대문구가 되었고, 지금의 서울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경동시장을 지나거나 동대문구 골목을 걸을 때, 딱 한 번만 발밑을 생각해보세요. 이 아스팔트 아래 어딘가에 1912년 논두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건물 아래에 김씨 집안의 집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 산자락 어딘가에 조씨 할아버지의 무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 땅 아래에, 113년의 시간이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문화재 발굴조사와 문화재 지표조사는 바로 그 잠든 시간을 깨우는 일입니다. 그건 오래된 물건을 찾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 도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고, 그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진한 인사입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한, 제기동의 김씨도, 이씨도, 조씨도 아직 이 땅 위에 있습니다.

논이 있던 그 자리에 도로가 생겼고,
밭이 있던 그 자리에 빌딩이 올라갔다.
하지만 그 아래 흙 속에
그들의 씨앗이 아직 잠들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씨앗은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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