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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노원구 하계동이 들려주는 땅의 기억, 그리고 오늘 우리가 문화재 발굴을 의뢰해야 하는 이유

  • 2025년 12월 2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4일

문화재 지표조사 · 문화재 발굴조사 · 서울 노원구 하계동 역사 · 문화재 발굴기관 · 유적발굴단 · 발굴조사원


지금 당신이 사는 이 땅 아래에도, 아파트를 짓는 그 부지 아래에도, 아주 많은 역사가 숨어 있다. 정답은 분명하다. "네, 아주 많이 숨어 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가 빼곡한 이 동네가 1912년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논이 펼쳐지고, 밭이 이어지고, 이씨·김씨·전씨가 오랜 세월 이 땅을 일궈온 곳이었다. 총 353필지 1,163,291㎡. 이 광대한 숫자 안에 사라진 들판과 사라진 사람들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은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의 1912년 토지 기록을 바탕으로, 하계동의 땅이 문화재 지표조사·발굴조사에서 왜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 형태로 풀어낸다. 발굴조사원의 하루, 유적발굴단의 실제 작업, 그리고 이 기록이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까지 함께 따라가 보자.


목차

1하계동이 건네는 첫 번째 속삭임

21912년 토지 조사의 숨겨진 맥락

3성씨 지도를 펼쳐보면 드러나는 또 다른 이야기

4동양척식주식회사의 흔적이 말해주는 것

5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필요한 순간

6발굴조사원의 하루와 유적발굴단의 실제 작업

7성공 사례로 보는 서울지역 발굴의 가치

8하계동에서 배우는 내 땅의 미래

9마무리, 땅 아래 잠든 시간에게 보내는 고백


353

총 필지 수

1,163,291㎡

총 면적

158

논 필지

154

밭 필지

127

이씨 필지

11

동양척식 소유


1. 하계동이 건네는 첫 번째 속삭임



처음 이 숫자들을 마주했을 때 마치 땅이 직접 말을 거는 것 같았다. 1912년 노원구 하계동, 353필지 1,163,291㎡. 숫자는 건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숨결이 촘촘히 스며 있다. 지금의 빽빽한 아파트 단지와 대형 상업시설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 그 기록 안에서 선명하게 살아 움직인다.

누군가는 단순한 통계로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숫자들은 지금 우리가 문화재 발굴을 왜 해야 하는지, 왜 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는지, 왜 서울의 어느 현장에서든 땅을 파기 전에 역사를 먼저 마주해야 하는지를 소리 없이 일러준다. 이 글은 하계동의 오래된 기록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땅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기억을 안전하게 불러오는 과정이 바로 문화재 발굴 과정이고, 유물 발굴이며, 유적 발굴이고, 그 뒤에서 묵묵히 뛰는 발굴조사원과 유적발굴단의 노력이라는 것을 함께 알게 되는 여정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도, 아파트를 짓는 이 부지에도, 우리가 매일 걷는 도로 아래에도 이런 역사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고.


2. 1912년 토지 조사의 숨겨진 맥락



하계동의 땅은 당시 총 353필지였다. 그중 논이 158필지 764,773㎡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했다. 지금의 하계동을 걷다가 이 수치를 떠올리면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조용한 물길이 흐르고 계절마다 색이 변하는 들판이 펼쳐지던 그 풍경이,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기 때문이다. 밭은 154필지 332,011㎡, 집은 34필지 33,183㎡, 그리고 산이 7필지 33,322㎡였다.

이 숫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땅을 쓰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흔적이다.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면 무엇이 보일까. 예전 농경지였던 곳에서는 특정 토양층이, 고갯마루였던 자리에서는 길 흔적이, 주거지였던 터에서는 기와 조각이나 생활 용기 파편이 발견된다. 하계동도 마찬가지다. 당시 농경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향후 개발 과정에서 어떤 유구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핵심 기초 자료가 된다.

문화재 지표조사는 바로 이 첫 단추다. 땅의 층위를 읽고 과거 이용 흔적을 파악하고 필요한 경우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로 이어지는 과정의 출발점. 하계동처럼 광대한 농경지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은 지표조사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단서가 드러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58필지

764,773㎡

154필지

332,011㎡

대지(집)

34필지

33,183㎡

7필지

33,322㎡


3. 성씨 지도를 펼쳐보면 드러나는 또 다른 이야기



성씨별 토지 소유 기록을 펼치면 하계동이라는 마을의 사회 구조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씨 127필지. 김씨 42필지. 전씨 28필지. 박씨 22필지. 윤씨 14필지. 길씨와 한씨가 각각 10필지씩이었다. 이씨 집안 하나가 전체 353필지 중 127필지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하계동이라는 공동체에서 이씨 가문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땅의 중심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성씨 분포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지역의 구조를 말해준다. 어떤 집안이 오래 자리 잡았고 누가 이 땅을 관리해 왔는지, 공동체의 분위기는 어땠는지까지 상상할 수 있다.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특정 성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나 비석 파편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과거의 기록과 발굴에서 나온 물증이 연결되며 퍼즐이 맞춰진다. 유적 발굴이란 사실 이런 연결의 과정이다.

하계동의 성씨 기록은 발굴조사원이 현장에서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토층을 읽어야 할지를 미리 알려주는 고마운 데이터다. 이씨 127필지가 집중된 구역에서는 조선 후기 주거 유구나 가문과 관련된 공동 시설 흔적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토지 기록과 발굴조사가 연결되는 방식이다.

127

이씨 필지

42

김씨 필지

28

전씨 필지

22

박씨 필지

14

윤씨 필지

10

길씨 필지

10

한씨 필지

11

동양척식


4.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흔적이 말해주는 것

기록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이 바로 여기다. 하계동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토지가 11필지나 존재했다. 이 사실은 단순한 소유 관계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토지 정책과 경제 수탈 구조가 서울 외곽 농경 지역까지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단서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설립된 국책 기관으로, 이 회사의 이름이 하계동 토지대장에 올라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역사 유물이다.

지금 발굴 현장에서 이 시기의 토지 기록이 확인된다면 문화재발굴조사단은 더 정밀한 접근을 한다. 이 시기 토지는 조선인 삶의 변화뿐 아니라 경제·행정 제도까지 반영하기 때문이다. 동양척식 소유지가 있던 구역에서는 농지 수탈과 관련된 시설 흔적이나 일본식 경영 시설의 기초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 흔적 하나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살리는 열쇠가 된다.

법인 소유 토지 2필지의 존재도 주목해야 한다. 기업 또는 단체의 재산이었던 땅은 주거지와 다른 패턴의 유구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창고였는지, 작업장이었는지, 길목이었는지에 따라 출토되는 유물의 종류와 층위의 깊이가 크게 달라진다. 이런 기록이 없다면 발굴조사원은 어떤 시기의 어떤 흔적을 먼저 찾아야 하는지 특정하기 어렵다. 기록은 지표조사·시굴·발굴의 정확도를 높이는 가장 기본이자 강력한 힌트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11필지 + 법인 소유 2필지 = 총 13필지. 식민지기 토지 수탈 구조가 서울 외곽 농경 지역까지 직접 반영된 사례로,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식민지기 문화층 분석의 핵심 대상 구역이 된다.


5. 문화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필요한 순간



서울에서 건축이나 토목 설계를 시작할 때 왜 반드시 지표조사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땅을 조금이라도 파본 사람이라면 안다. 땅 속은 누군가 살았던 자리이고, 누군가 지나갔던 길이며, 누군가 묻어 놓은 시간이 쌓인 공간이다. 지표조사는 그 첫 번째 확인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던 유구의 가능성을 찾고, 필요하면 시굴조사를 진행하고, 거기서 더 깊은 흔적이 발견되면 본격적인 유적 발굴조사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발굴조사 장비들이 투입된다. GPS 스캐너, 토양 층위 분석 도구, 토양 체질망, 유구 측정기, 촬영 장비 등이 필수다. 발굴조사원의 경험과 장비의 정확도가 결합되어야 제대로 된 판단이 이루어진다.

하계동처럼 오래된 농경지 패턴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지역은 특히 시굴조사 단계에서 다양한 흔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논이 158필지나 됐다는 사실은 당시 물 관리 시설, 논두렁 흔적, 수로 구조물이 지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개발을 앞둔 지역일수록 지표조사를 서두르지 말고 오히려 충분히 진행해야 한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땅을 읽으면 사라질 뻔한 역사 몇 줄을 다시 구할 수 있다.


6. 발굴조사원의 하루와 유적발굴단의 실제 작업



발굴조사원의 하루는 단순히 흙을 파는 일이 아니다. 땅 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흔적을 해석하는 일에 가깝다. 삽을 뜨는 순간 함께 떠오르는 것은 과거의 시간이고, 솔로 유물을 닦는 순간 손끝에는 100년 전 혹은 1000년 전의 사람이 느꼈을 체온이 스며든다. 이 일을 오래 해온 조사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흥분되지 않는 날이 없다"고.

유물 하나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반복적이고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다. 유적발굴단은 토양층을 밀리미터 단위로 나누어 기록하고, 사진을 찍고, 도면을 그리고, 층위를 분석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보존을 전제로 진행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발굴은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유물 발굴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느린 속도가 있기에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손에 넣을 수 있다. 하계동처럼 158필지의 논과 154필지의 밭이 있었던 광대한 농경 지역에서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그 층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지 상상만 해도 숨이 빨라진다.


7. 성공 사례로 보는 서울지역 발굴의 가치

성공 사례 — 도심 재개발 현장의 뜻밖의 발견

서울 도심 재개발 현장에서 조선 후기 도자기 가마터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개발사는 일시적으로 당황했지만 이후 해당 지역의 역사성이 브랜드 가치로 전환되며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아파트 예정지에서 삼국시대 토광묘가 출토된 사례에서도 역사성과 현대 도시 디자인이 결합된 공간이 탄생했다. 발굴은 개발의 방해물이 아니라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이 사례들이 증명했다.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 참고)

서울 곳곳의 발굴조사가 축적될수록 이런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땅의 역사를 미리 알고 설계하는 도시와 모르고 짓는 도시 사이에는 결국 문화적 깊이의 차이가 생긴다. 하계동처럼 광대한 면적의 농경 지역이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그 기록을 충분히 남기는 일은 지금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선물이기도 하다.


8. 하계동에서 배우는 내 땅의 미래

1912년 하계동의 기록은 지금 우리가 서울에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왜 진행해야 하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과거의 이용 패턴을 알아야 현재의 문화재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의 도시를 안전하게 설계할 수 있다. 이 순서는 바꿀 수 없다.

서울에서 문화유적 시굴조사, 지표조사, 표본조사, 발굴조사를 의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금이 바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때다. 땅 속의 시간은 그냥 두면 사라진다. 기록되지 않은 순간은 영원히 발견되지 않는다. 언젠가 의뢰한 그 조사에서 나온 작은 토기 조각 하나가 한 시대의 이야기를 다시 불러올 수도 있다.

발굴조사 의뢰가 필요한 상황: 신축 공사 전 지표조사 / 재개발 부지 시굴조사 / 도로·지하 공사 전 표본조사 / 문화재 발굴조사 전반. 서울문화유산발굴조사(seoulheritage.org)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9. 마무리, 땅 아래 잠든 시간에게 보내는 고백



우리는 다들 너무 빠르게 살아간다. 하지만 땅은 그렇지 않다. 천천히, 묵묵히, 그 위를 지난 모든 사람의 흔적을 품어 온다. 1912년 하계동의 기록을 다시 펼쳐보며 느낀 것은 단 하나였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도 언젠가 다음 세대가 조사할 역사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씨 127필지, 논 158필지, 밭 154필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름이 토지대장에 올라 있던 11필지. 이 모든 숫자가 지금 우리 발 아래 어딘가에서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잠들어 있다. 그 잠을 깨우는 일이 문화재 발굴이고, 그 기억을 세상에 돌려주는 일이 발굴조사원과 유적발굴단이 매일 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남기는 선택이 중요하다. 한 번 파헤치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귀 기울이고 존중하고 기록하려는 태도. 이 태도가 서울을 지키고, 우리의 땅을 지키고, 결국 우리의 시간을 지키는 길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것에 감사하다. 이 글이 당신에게 땅의 목소리를 들을 용기를 조금이라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하계동의 들판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땅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가 걷는 길 위에는 늘 오래된 시간이 따라온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단지 우리가 다시 꺼내 읽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걸 발견하려는 마음 하나가, 도시 전체를 다르게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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